봉황들의 잔칫날
임인년(壬寅年)이 스무날쯤 남은 토욜 한 낯, 봉황들이 봉천동 더블미트에 모여들었다. 가물가물해지는 고향의 내음, 애틋한 그리움 저편의 낯설지 않는 얼굴들 속에서 고향소릴 듣고 고향의 정취에 취하고 싶은 귀소본능(歸巢本能)의 발동일 것이다. 봉황마을[봉동鳳洞]이 고향인 울들은 모두가 한 가족이라 처음 만나도 서먹하지 않는 유대감은 한 뿌리의 한 속이여서일 테다. 하여 처음 만나도 이심전심은 그리운 향수의 공감대를 이룬다.
고향에의 향수, 되돌아가고 싶은 귀소본능의 간절함을 삭혀야하는 응어리를 우리는 고향사람들을 만나서 해소하나 싶다. 고향사람 - 봉황가족의 숨결에서 향수를 공감한다. 그렇게 고향은 우리들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위무하는 애정의 기운을 느끼게 하나 싶다. 고향은 어머니의 품이다. 나는 오늘 봉황들의 온기와 애정을 감지하며 애절한 향수를 달래고 있었다. 오늘의 잔치에선 초면인 식구들 대여섯 명이 환대를 받았다.
서로 이름만 들었을지도 모른 채 살아오다 처음으로 대면한 기쁨은 앞으로 전개될 한 식구로써의 유대감이 줄 희열의 시작일 뿐이다. 행운의 첫 발길이다. 선후배들 각자 살아온 나름의 희로애락의 삶의 여정은 서로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의 역정이고 그 긴 여정의 역사는 서로에게 귀감이 될 수가 있는 값진 선물이어서다. 그 긴 삶의 여정을 공유하는 식구들의 가슴은 뭉클할 수밖에 없으리라.
서로가 달리 살아온 여정에서 걸러낸 삶의 지혜로 봉황식구들은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한다. 그래설까? 양금인 맞은 편 영선이와 인사를 나누며 “징하게 반갑네야”라고 ‘징하디 징한’ 속내를 까발려 보였단 생각이 들었다. ‘징하다’는 말은 말할 수 없이 끈끈한 유대감을 고향사람들이 표현한 사투리지 싶다. 나도 ‘할배가 창시 없다’는 소릴 들을까봐 말 안했지만 오늘 첨 온 젊은 후배봉황들이 ‘징하게 좋았다’라고 실토하고 싶었다. 젊은 봉황무리에 끼면 나도 젊어질 테다.
가고 싶어도 하 멀어서 못가는 고향! 오늘 봉황들과 어울려 잔치음식을 먹으며 노스텔지어를 달랬다. 봉황마을 한 사람을 만남은 고향 한 번 가는 거다. 만나면 고향의 이야기로 애틋함을 달랠 수가 있어서다. 고향의 냄새와 음영과 속살을 공감하는 땜이다. 그런 만남 속에 고향은 잊혀지지 않고 봉황의 뿌리역사도 살아난다. 난 부러 신촌역에서 내려 연세백양로와 안산자락길을 걸으며 오늘 즐거웠던 봉황잔칫날을 되새김질했다. 봉황들아! 신년엔 더더욱 파릇파릇한 기운으로 만나자. 2022. 12. 10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국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것이 차마 꿈엔들 잊이리아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며
비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엹은 졸음에 겨워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듣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꿈엔들 잊힐리아
전설 바람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줍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시인 정지용의 <향수>
# <2022년12월10일> 봉황잔칫날의(봉천역 더블미트식당) 얼굴들 23명(강부덕총무님 제공)
강성광.성님.선혜.민순.미자.승화.명구.용남.차원.영선.덕금.양금.양원.대화.영애.성태.성환.명남.성종.부덕. 첨 온 봉황(강면원 류종중.이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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