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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누님의 졸수연(卒壽宴)

누님의 졸수연(卒壽宴)

쪽빛하늘에 가을 햇살이 따사롭다. 울긋불긋 색의 향연을 펼치는 중량천변의 가을풍정은 졸수를 맞은 누님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제 만추에 발 디디는 감회이실까? 울`부부는 누님의 졸수연(卒壽宴)을 찾아 가을나들이에 나섰다. 어쩜 엄마 같았던 누님이 어느덧 구순(九旬)이라니, 아니다 속알머리 없는 내가 칠땡이지 않는가! 세월 참 덧없다.

세 딸의 삼배 -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를 염하면서

90세를 졸수(卒壽)라 한단다. 卒의 약자 卆을 파자하면 九十이 됨에서 유래함이다. 구순생일은 100세를 바라본다는 뜻에서 망백(望百)이라고도 한다. 누님은 다리가 불편하셔 거동에 지장이 있을 뿐 식사도 잘하시고 총기도 밝으신데, 뭣보다도 낙관적인 성품이 건강유지의 비결이지 싶다. 영특하신 누님께서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찾아뵙는 나의 문안인사에 눈시울 붉히며 반색하시면 나는 쥐구멍에라도 기어들고 싶었다.

누님은 행복은 세 딸의 효심을 공유함일 테다

열세 살 터울이니 누님의 등허리는 내 침대였을 테다. 독자(獨子)인 나는 내리사랑만 받고 자라 베풀 줄을 모르는 에고이스트였지 싶다. 또한 엄마 같던 누님을 잘 찾아뵙지 안했던 건 누님의 삶이 곤궁해 보여서이기도 했다. 부담스런 동생이기 싫어서였다면 궁색한 합리화일까? 암튼 누님이 불러도 대답만 했던, 그래 소원해진 감정은 못난 나의 불충이라 늘 맘에 걸렸다.

미사리 한채당(韓彩堂)에서 졸수연상 앞에 정좌한 누님은 곱디 고왔다. 자식들이 정성껏 마련한 연회장에서 망백을 기원하니, 미소번진 밝은 안색은 오늘의 주인공임을 맘껏 즐기시나 싶어 분위기 좋았다. 본시 누님은 빼어난 미인이셨다. 뿐이랴, 영특하시고 쾌활하시며 사교성도 좋으셔 어디 어느 자리던 돋보인 팔방미인 - 탈랜트이셨다. 누님이 반세기만 늦게 태어나셨으면 지금 어찌하고 계실까? 상상이 안 된다.

누님의 노래에 감동치 않을 사람 있을까? 가요는 물론 초등 때(일제) 배운 일본어 창가를 녹음기 틀어놓듯~! 그 총명함에 경탄한다

누님께선 참사람 현모양처이셨다. 가난을 멍에처럼 달고 사시면서도 티내지 않고 긍정의 삶을 사셨다. 그렇게 내가 말할 수 있는 소이는 단 한 번도 자형님을 경원하시는 말씀 들은 적이 없어서다. 오늘도 노래 한 곡 부르시곤 누군가의 물음에 서슴없이 ‘송병우씨를 사랑한다’고 실토하셨다. 사별하신지 몇 년째인데, 아니 미남도 아니고 능력도 지지리 없던 서방님을 사부곡(思夫曲) 부르는 누님은 진정 특별한 여인일 것이다.

그래 졸수를 맞는 누님께선 복 받아 효성 지극한 딸 셋을 두셨지 싶다. 딸들의 성심에 누님은 오늘 곱게 주름진 안색으로 졸수를 맞으시고 망백을 향해 희열의 발길 내디디셨지 싶다. 나도 딸만 셋인데 누님처럼 곱게 졸수연을 맞을 수가 있을까? 어림없지 싶다. 우선 난 협량이고 자기위주 삶이라 불만족의 일상탈출이 버겁다. 욕심꾸러기인 땜이다. 누님, 망백하시면서 저를 끌어주세요. 축하드립니다.               2022. 10. 30

# 오늘 졸수연의 기획과 총감독은 큰애가, 빈틈새 없는 준비는 둘째가, 무대장식과 데코레이션은 막내가 했지 싶었다. 너희들이 있어 누님의 행복이, 친족들이 담소하며 희열에 웃음꽃 피웠지 싶어 고맙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같이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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