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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5) 지우펀의 홍등(紅燈) 기행

5) 지우펀의 홍등(紅燈) 기행

금 채굴 광산촌에 동원 된 수많은 광부들이 고된 노동의 일과를 마치고 술집을 찾았던 밤에 일제히 불을 켰던 홍등가, 그 불빛 속에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여위어 과부가 된 광부의 아내가 술집에서 따르는 눈물이 술잔을 채운다. 그런 광산촌의 역사의 뒤안길엔 애잔하고 암울한 얘기가 버섯처럼 피어났다. 지우펀에 살고 있던 임씨일가의 네 아들을 통해 대만 현대사의 격동과 혼란상을 그린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가 있다.

산골마을 지우펀
코로나팬데믹 엑서더스 행선지는 지우펀인 듯~!

1989년 제46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데 이어 ‘세계100대영화’ 중 하나로 선정돼 세계적인 히트로 유명세를 타서 지우펀은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로 거듭났다. 영화<비정성시>를 촬영한 ‘찻집 비정성시’는 가장 유명장소로 지우펀의 랜드마크가 돼 문전성시를 이룬다. 또한 만차를 맛보며 여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지우펀이다.

기념품 가게

비정성시 찻집골목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면 일본식 이메이 찻집이 있고, 중국식 찻집인 헤열루다방이 있다. 비단뱀처럼 가늘고 긴 꼬불꼬불한 골목이 허름한 단층 건물로 이어진 담장 어딘가로 사라지나 싶은데 5층 건물이 유난떨며 앞길을 막는다. 그 비좁은 계단을 올라서서 조망하는 지룽항의 원경은 한 폭의 묵화처럼 근사하다.

코로나 팬데믹 땐 어땠을까?

돌계단을 따라서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고만고만한 가게들은 다양한 먹거리와 기념품을 팔고 있다. 도대체 그냥 살라고 해도 도망갈까 싶은 산 언덕배기에 뭔 볼일이 있다고 이렇게 다닥다닥 궁뎅이를 붙였을까? 폐광됐어도 떠나질 않고 어깨쭉지 부비며 버틴 광부가족들의 애환과 뚝심이 상상을 절한다.

허접한 집들이 오랜 세월을 버틸 수가 있는 건 건물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어설까?

산중턱을 붉게 물들이는 그들의 애환 - 홍등의 조명은 환상적이리만치 낭만이 묻어난다. 은은한 불빛은 몽유에 빠질 것 같은 뿌연 불빛으로 연애하기 딱 좋은 골목길이어서 젊은 커플들로 성시를 이루는지 모르겠다. 가파르고 비좁은 비탈길을 퇴색하고 허름한 고가들이 담장을 친 구불구불 휜 길을 젊은이들은 미로 찾기 재미에 빠졌나?

지룽항

비좁고 가파른 계단을 관광객들은 포도시 비껴가는 맛(?)에 발을 내딛는지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다. 그 예사스럽지 않음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기이한 골목걷기가 마음을 땡기는 걸까? 문득 옛날 우리네 달동네모습을 여기에 차환하여 ‘시간 멈춤’에 들어서서 향수에 젖어보는 옛정취의 살가움을 느끼고 싶었다. 비켜서기도 버거운 인파덕에 영세가게들은 살아남는가 싶기도 하고.

▲비정성시 골목▼

지룽해안의 가파른 산골마을 지우펀(九份)은 청조 때 아홉 가구밖에 없어 한 사람이 도시로 내려와서 아홉 집 생필품을 공동구매하여 아홉 개로 나눠썼다고 해서 '九份', 즉 지우펀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니 그들의 끈끈한 공존의식이 감탄스럽다 할 것이다. 이곳 원주민들은 1430년대부터 이 곳에서 금이 난다는 걸 알았고, 그 후에 일본인과 네덜란드상인들도 금맥을 찾아냈었다.

악세사리와 쵸코릿 가게도 재미가 짭짤했다

본격적인 채굴은 1890년대 청나라 때 철도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금가루를 발견하고, 인근 하천에서 매일 수 킬로그램에 달하는 사금이 발견되어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산골마을은 급변했다. 이후 일본군의 점령으로 금 채굴은 절정을 이뤄 지우펀은 일취월장 했다.

▲찻집, 우린 오룡차 한 잔을 공짜 서비스 받았다▼

 “지우펀은 내가 본 마을들 중 가장 이상하게 생긴 마을이다. 이토록 많은 가옥들이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몰려 지어진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떤 건물들은 다른 건물 위에 덧붙여진 것 같고, 어떤 건물들은 아예 들어갈 길도 없어 보인다. 모든 건물들이 위압적으로 서 있어, 마치 이웃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 같다. 좁은 수로가 마을 전체를 흐르며 물을 공급한다. 어느 수로는 문 바로 앞을 지나가기도 하고 심지어 가옥의 바닥 아래를 흘러지나가기도 한다.” 고 제임스 데이비드슨 미국 외교관은 기록했다.

▲땅거미와 동반한 지룽항의 불빛▼

그 당시 저우펀은 후지타 기업의 소유로 타이완 광산업에 진출한 최초의 일본계 기업이었다. 후지타는 이곳의 금광 산업으로 매월 몇 천 엔의 수입을 올렸단다. 지금의 건물들도 대게 일제시대 지어진 것들이다. 태평양전쟁 때 근처에 ‘진과스 포로수용소’가 만들어졌고, 동남아에서 끌려온 포로들을 금광에서 강제노역 시켰다. 종전 후 채산이 떨어진 금광은 사양길에 들어1971년엔 완전히 폐광되었다. 따라서 저우펀도 폐촌이 돼 잊혀진 산골마을이 됐었다.

마을중턱을 동서로 연결하는 길목의 버스정거장에서 지우펀 여행이 시작되고 세븐`일레븐 옆에 지산제 입구가 있다. 지산제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기념품가게와 음식점, 카페 등이 어께동무 하듯 버티면서 인파의 쓰나미에 목젖을 대고 있으며, 땅콩아이스크림, 샤오츠, 꼬치구이, 위위안 등의 먹거리가 발길을 붙든다. 하여 산중턱 고지대지만 역한 공기에 소음(騷音)속이라 어찌 살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안산 크기의 산등성이를 뒤덮은 지우펀 산동네, 옛날 서울의 산동네는 '저리가라' 였다

지우펀의 홍등가는 북경의 왕부정과 베트남의 호이안과 더불어 동남아의 이국적인 거리로 인구에 회자된다. 2시간여 동안 인파에 떠밀리다 다람쥐 채바퀴 돌 듯 아까 지나갔던 골목길이 나타났다. 짙은 회색구름이 지룽항을 휘덮다 상승하더니 빗발을 찔끔찔끔 샌다. 얼른 날머리 약속장소를 찾아 버스에 올랐다. 근디 난데없는 싸이렌소리가 요란하다. 불이 난 걸까? 아님 무슨 사고가 났던지 소방차가 꼬릴 이어 언덕길을 오른다.

지우펀에서 젤 높고 멋진 건물, 비정성시 촬영장소였다나?

오살 맞게 비좁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의 홍등가에 사고라도 나면 어찌 돌파구가 생길까? 문득 이태원참사가 떠올랐다. 지금 버스에 올라탄 게 행운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버스는 굼벵이처럼 산 비탈길을 기어내려 왔다. 싸이렌소리도 사라지고 그 후에 어떤 불상사도 들은바 없으니 기우였지 싶었다. 참 별나고 진귀한 여행 - 몬도가네식 탐험은 오래오래 내 뇌리에 똬리를 틀고 웅크리고 있을 것 같다.   2023. 02. 28

▲비정성시 촬영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