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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안산초록숲길의 봄의 서곡(序曲)

안산초록숲길의 봄의 서곡(序曲)

봉원사골짝에 있는 약수터가 쫄쫄 짜내는 물은 얼음이 되어 땅속으로 파고들다가 초록숲길 쉼터 웅덩이에서 찔끔찔끔 솟는다. 여린 햇볕이 기웃대는 초록숲길에 차가운 바람소리가 귓가를 스치는 고요가 팽배하다. 쉼터 웅덩이에 이르자 가녀린 불협화음이 점점 옥타브를 올리며 고요를 삼킨다. 웅덩이개구리들의 합창이란 걸 알아챈 나는 웅덩이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개구리알과 도롱뇽알(우무 줄)

 아니, 놈들이 먼저 나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옥타브를 낮추다 다시 고요를 즐긴다. 성깔 급한 놈들이 살 얼음장 밑에 알을 깐 후 나는 며칠간 발길을 끊었는데 그새 웅덩이는 천지개벽(?)한 거였다. 난 고양이처럼 숨죽이며 웅덩이에 접근하자 쥐죽은 듯 적막이 흐른다. 놈들이 내 그림자를 피해 숨느라 부산을 떨자 물색도 혼탁해진다. 도대체 몇 십 마리가 웅지를 틀었을까? 개구리알과 도롱뇽알 무더기가 웅덩이에 꽃다발마냥 부유한다.

 폰`카에 몇 컷 담은 나는 웅덩이에 장승그림자를 띄우고 투시한다. 이윽고 개구리밥에 숨었던 놈들이 기지개 펴듯 움찔하자 옆 놈이 파장을 일구고, 또 그 옆 놈과 옆의 옆 놈이 파장 따라 헤엄을 치고는 울음보를 열어 주파수를 높인다. 그놈이 지휘잔가? 모두가 따라 합창하면서 동시에 격렬한 사랑쟁탈전이 펼쳐지는 게 아닌가! 놈들의 짝짓기 전쟁에 웅덩이는 오케스트라무대가 됐다.

놈들의 합창은 절정으로 치닫고, 내가 보거나 말거나 사랑싸움은 원초적 광란의 파티가 됐다. 어제가 우수, 놈들이 잠자다 깨어난다는 경칩이 열흘도 더 남았는데 광란의 파티라니! 원초적 욕망에 겨울잠은 무덤일 테다. 늦잠자다 짝짓기 못하면 송장신세 아닌가? 참개구리나 금개구리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물웅덩이와 습지에서만 알을 낳는 멸종위기II급 지정받은 보호해야 할 야생생물이란다.

옛날 부여(扶餘)국 왕실에 금빛 개구리형상의 아이가 태어나자 이름을 금와(金蛙)라 짓고 태백산(太白山)남쪽에 사는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와 합궁하여 고구려시조인 주몽(朱蒙:동명왕)을 낳았다. 금개구린 우리들의 할머니인 셈이다. 또한 신라 선덕여왕 때 영묘사(靈廟寺)의 옥문지(玉門池)에서 개구리가 3~4일간 목 터지게 울었다. 왕이 이를 괴이하게 여겨 급히 군사를 여근곡(女根哭)에 보내니 마침 백제 군사들이 잠복하고 있어 토벌했다. 는 전설도 있다.

청개구리 수컷의 인두(咽頭) 부근에는 커다란 울음주머니가 있고, 암컷은 없단다. ‘말 안 듣는 놈을 청개구리 같다’고 하는데 옛날에 엄마가 시키는 일을 무조건 반대로 하는 아들청개구리가 있었다. 엄마청개구리가 죽으면서 아들에게 “엄마가 죽고 나면 강가에 묻어 다오”라고 유언을 했다. 홍수에 위험한 강가 보단 안전한 산에 묻히고 싶은 엄마는 아들의 꺼꾸로 심보를 꿰뚫어서였다.

근디 아들청개구리는 엄마의 유언만큼은 잘 들어 효도하려고 강가에 엄마를 묻었다. 아뿔사, 이젠 비만 오면 아들청개구리는 엄마무덤이 떠내려 갈까봐 강가에서 서럽게 운다. 비 오는 날 청개구리가 슬피 우는 까닭을 알만하다. 몸길이 2~4㎝의 청개구리는 썩은 고사목에서 겨울잠을 자고, 5월쯤에 웅덩이 속에 300~500개의 알을 낳는데 한 덩어리에 약 20개가 뭉쳐 있단다. 근디 2월 하순에 짝짓기라니?

피부로 숨을 쉬는 청개구리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예민하여 서식지 파괴는 멸종의 길인지라 놈들을 ‘환경의 지표’로 여긴다. 청개구리가 사라지는 환경오염은 벌과 곤충의 서식지를 파괴하여 꽃가루받이가 안 돼 식물의 75%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열매 없는 식물과 농작물은 멸종이 되어 인류의 종언을 최촉한다. 하여 아인슈타인은 “벌이 사라지면 인간은 그 후 4년 안에 멸종 한다”고 경고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개구리의 밥은 사실 그들의 은신처이다. 포식자들로부터 피하고 은폐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논에 사는 참개구리의 피부 무늬는 개구리밥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진화해 왔단다. 먹잇감 찾아 논에 온 여름 철새 백로가 시력이 우수하다고는 하지만, 물에 떠 있는 개구리밥에 숨어서 콧구멍만 내민 참개구리를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개구리알과 도롱뇽알을 용알[龍卵]이라 불러 경칩에 먹는 용알은 봄기운이 가득한 생명의 정기로 보신(保身)은 물론 신경통이나 속병, 요통(腰痛)에 효험이 좋아 만병통치약처럼 여긴다. 또한 감기나 기침에도 좋고 눈도 맑아지고 머리도 총명해진다고 했다. 초록숲길 웅덩이의 용알들이 지각없는 보신족의 손길에 남획될까 걱정된다. 낼부터 바짝 강추위가 온다는데 잘 버텨주기를 염원한다. 놈들이 있어 즐거운 하루였다.   2023.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