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카스텔로 스포르체스코(Sforzesco Castle)성
밀라노의 청명한 날씬 우리의 전형적인 가을하늘이다. 3일째인 오늘 늦은 오후에 우린 다시 취리히로 돌아가야 해 바쁘게 쏘다녀야한다. 갈 곳도 많고 볼 것도 많은데 쥬니와 아내는 궁뎅이가 무겁다. 아니다, 열흘이 넘은 여정에 몸살기 안 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호텔1층 카페에서 식사를 하고 20분쯤 어슬렁대면 닿을 스포르체스코 성을 향했다.
원형 분수못 뒤로 높은 적갈색담장 중앙에 필라레테 탑(Torre del Filarete, Filarete Tower)을 새워 학익진을 펼치고 있다. 그 탑문을 들어선다. 요새 아님 감옥 같은 건축물은 넓은 공원을 만들어 방문객이 주눅 들지 않고 평안을 얻게 한다. 도대체 이 방대한 요새는 어떤 용도였을까? 당시 영주인 갈레아초 비스콘티(Galeazzo Visconti)가 1447년에 축성을 했단다.
비스콘디의 아들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Filippo Maria Visconti)가 후손이 없자 프란체스코 스포르차(Francesco Sforza)와 결혼 이 영지를 개축수성 박물관으로 사용했단다. 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성 앞에서 똑 닮은꼴인 스위스루체른의 무제크성벽이 생각났다. 영주들이 자신의 왕국을 수호하기 위해 쌓은 난공불락성벽은 우리나라 한양도성과는 비교자체가 안 된다. 하긴 한양도성은 적의 침입에 제대로 방어 한 번 한적이 있었던가? 왕부터 도망가기 바빠서~.
문득 나폴레옹이 유럽 에스파냐원정에 들었을 때 이런 난공불락의 성을 함락할 수가 없자 성벽 둘레에 해자를 파고 모든 출입을 막아 고립작전을 폈던 지구전이 생각났다. 기아선상에서 자중지란에 빠진 영주는 마침내 투항하여 에스파냐를 정복했던 나폴레옹의 원정기가 떠올랐다. 나폴레옹은 이 스포르체스코 성도 함락하여 이탈리아왕국의 수도로 삼고 자신의 대관식을 가졌다.
무시무시한 성벽을 쌓느라 백성은 얼마나 죽어났고, 전쟁이 발발하면 이 성을 수호하느라 또 얼마나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까? 누구를 위한 죽음이었을까? 동서고금의 성벽들이 품고 있을 비극의 원인은 군주의 허황된 영욕 탓일 것이다. 성벽은 누구를 위한 경계선이고, 전쟁은 누구를 위한 상대방 죽이기 살육싸움인가? 그런 비극은 오늘날에도 지구촌 도처에서 발발하고 있다는 아이러니에, 아니 우리나라 네오콘들의 발광에 가슴이 철렁한다.
오늘날에도 지구상엔 도처에서 경계선을 긋고 전쟁놀이(?)를 즐기는 위정자들이 존재해 우릴 슬프게 한다. 우린 위험한 위정자들의 흑심(黑心)에 꼭두각시가 돼선 안 된다. 드넓은 스포르체스코 성안은 살육의 트라우마는 잊은 채 평온한 공원과 각종 박물관으로 애용되고 있었다. 성의 재축성에는 피렌체 도시 건설담당 브루넬리스키, 바티칸의 브라만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많은 예술가들이 참여했단다.
특히 미켈란젤로는 죽기 3일 전까지 〈론다니니 피에타>란 최후의 작품을 제작했다. 성 중앙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동상도 있다. 필라레테 탑은 움베르토 1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탑으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뒤를 이은 이탈리아왕국의 2대 국왕이다. 로마 판테온(Pantheon) 입구의 우측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의 무덤이, 그 건너편에는 움베르토 1세의 무덤이 있고 그 우측에 라파엘로의 무덤도 있다.
움베르토1세 얘기가 나오니까 얼핏 이탈리아가 낳은 천재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가 떠오른다. 에코는 밀라노 북쪽 피에몬테주 알레산드리아에서 1932년에 태어났다. 아마 움베르토1세 가문의 후예일 테다. 그는 토리노대학교에서 중세 철학과 문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여기 밀라노대학과 볼로냐대학교수로 활동했다. 불로냐대학은 세계최초의 대학으로 이탈리아의 자랑이다. 에코의 작품〈장미의 이름>,〈푸코의 진자>는 내가 읽으면서 난해에 애를 태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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