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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10) 취리히의 두 교포 외교관(?)

10) 취리히의 두 교포 외교관(?)

사흘간의 밀라노 맛보기를 접고 울`식구는 다시 취리히에 돌아왔다. 아내가 마치 친정에 온 기분 같은 편안함이 긴장감을 녹인다고 심호흡을 한다. 온갖 지구촌 사람들이 모여 떠들썩한 도떼기시장처럼 산만한 밀라노를 떠나 조용하고 정갈한 취리히의 정취가 마음의 안정을 기한 탓일 테다. 

여장을 풀어놓고 간 파크하얏트호텔의 우리 방은 그대로였다. ‘첨탑의 도시’라 할 만큼 성당과 교회가 많은 취리히는 고풍스런 석조건물에 예술적인 문양을 조각하여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런 고딕풍의 정갈하고 깔끔한 건물들이 늘어서있고, 노천카페의 손님들의 여유와 은회색 색감은 길손에게 평온한 분위기에 젖게 한다.

반호프 슈트라세(Bahnhof strasse)는 중앙역에서 취리히호수 뷔르클리 광장까지의 1,3km에 이르는 대로를 말한다. 명품샵과 백화점, 은행과 고급식당들이 즐비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유명세의 거리다. 우린 융프라우와 지기와 밀라노여행 때마다 호텔에서 중앙역까지 산보하듯 걸었다. 윈도우에 진열된 세계유명 브랜드의 상품들을 훑으며 고풍스런 분위기를 즐긴다는 즐거움이 쏠쏠해서였다.

고철덩이 트램이 덜컹대며 고도를 달리는 풍정 또한 이색적이다. 5층높이의 석조건물들이 스카이라인을 만든 구시가지에 하늘을 찌르는 첨탑들이 우뚝 솟은 리마트강변을 한 블록 떨어져 공존하여 산책코스로도 각광을 받는다. 언덕위의 린덴호프(Lindenhof)소공원은 시민들이 가장 아끼는 뷰 일 것이다.

▲순교자의 무덤, 그로스뮌스터교회는 취리히의 수호성인인 펠릭스(Felix)와 레굴라(Regula)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스위스4대 기도교회 중 하나다▼

 도도히 흐르는 리마트강 양편의 그로스 뮌스터와 프라우 뮌스터는 취리히의 상징적 건물이다. 린덴호프공원에서 조망하는 조락하는 단풍속의 초가을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성벽에 기대 짙어지는 리마트강변에 데칼코마니 가을빛을 띄워 흐르는 풍정은 일상에 찌든 감정이 순화에 드는 힐링의 순간이 된다.

▲교포 여사장님의 한식당 '미소가(Misoga)의 민화 등 한국적인 소품들로 꾸민 실내▼
미소가 한식당 주소 ; Drahtzugstr.5  8008 Zurich 044 422 99 90 www.misoga.ch
미소가의 전병과 야채사라다

취리히사람들은 이 자연을 사랑하고 공유하는 심성에 온화해지나 싶었다. 착해 보였다. 그래 단정하고 친절하지 싶다. 우린 접때 한식당 미소가(Misoga)에서 식사를 하면서 김 여사장님과 취리히체류 마지막 날쯤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김 여사장이 한식을 취리히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일에 명운을 걸고 정성을 쏟아 반석에 앉힌 식당이었다.

미소가의 두부`김치찌개
미소가 점심 때의 한 컷
미소가 돼지족발
미소가 샌드위치와 계란프라이
미소가 여사장의 서빙

밀라노에서 돌아오면서 우린 미소가의 한식단이 몹시 그리웠다. 서양식에 눅눅해진 입맛을 김치 맛으로 개운하게 씻어내고 싶었다. 취리히체류 마지막 날 정오 예약시간에 미소가에 들어섰다. 김사장님이 팔 벌려 환대한다. 열흘 전 첫 대면 때 전라도사투리가 빌미가 되어 김사장은 아내와 포옹을 해버렸었다.

▲프라우민스터 시계탑의 성 베드로교회▼

완도태생인 아내와 이웃 해남이 고향인 여사장은 순식간에 전라도사투리로 마음을 열고 흉금을 터는 처지가 돼버렸었다. 가수 하춘화와 닮아 보인 여사장은 당차고 바지런하고 지혜로운 지성파 여성이었다. 여사장은 스위스유학파로 졸업 후 이태리서 직장생활을 하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스위스에 정착하여 한식에 대한 자부심을 심고 싶은 사명감을 품었단다.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의 동상, 독일의 작센족을 정복하여 기독교로 개종시켜 서유럽을 통일하여 교황 레오 3세로부터 '로마인의 수호자' 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가 탄 말이  취리히의 수호성인인 펠릭스와 레굴라의 무덤이 있는 그로스민스터 앞에서 무릎을 꿇자 거기에 기념비를 세웠다

 그래 시작한 한식단으로 30여년을 취리히시민들에게 한식 고유의 맛깔 심어주기에 혼신 했단다. 초창기 어려움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지만 지금은 취리히시민들의 유명식당이 됐다. 찾아오는 손님들의 말과 표정에서 살가움이 느껴졌다. 배추는 독일산을, 고춧가루 등의 양념류는 한국산을 직수입하여 한식단을 꾸리는데 감수를 철저이 한다고 했다.

▲853년 건설된 프라우 뮌스터(Fraumünster)는 수녀원으로 이용되었지만, 종교개혁가 츠빙글리의 활동으로 현재는 교회가 되었다. 글고 마크 샤갈(Marc Chagall)의 스테인드글라스 대문으로 더 유명해졌는데 그 그림 속에서 샤갈의 얼굴을 찾을 수 있단다.▼

불고기에 얹는 고명 내지 장식용 부추꽃대는 타이산을 항공직수입할 정도로 애정과 심혈을 쏟는다. 여사장의 깐깐함과 바지런함은 미소가 성공의 바로미터지 싶다. 몸에 밴 친절과 청결은 벽에 건 몇 점의 한국민화와 더불어 민간외교의 모범일 것 같았다. 한식단을 취리히 고급주택가에 차려 성공한 의지의 그녀는 훌륭한 외교관이었다.

쿤스트하우스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그녀와 종업원들은 전문외교관 뺨칠 훌륭한 외교사절이었다. 우리는 두 번째 찾았지만 그때마다 예약손님이 차례서고 있었다. 불고기, 김치, 두부찌개, 김치찌개는 서울의 어느 식당도 범접하지 못할 맛깔이 있었다. 와인 한 잔씩 기우리면서 우스개 비슷이 뱉는 패러독스 - ‘쪽팔린다는 사람 정말 쪽팔리는 건 교포들이다’라고 한숨지었다.

▲그로스 뮌스터(Grossmünster)교회는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492년에 만든 정면의 두 개의 목탑이 화재로 불타 복원됐고, 뒤쪽의 청동첨탑은 그대로여서 행운의 탑이라 한다. 184개의 계단을 올라 첨탑정상에서 취리히 시내전경과 아름다운호수를 볼 수 있다.▼

이역멀리 스위스에서 한식을 매개로 한국인의 자긍심을 심느라 삼십여 년을 고군분투하고 있는 교포여성이 국내 위정자들의 쪽팔리는 외교행태에 정작 쪽팔리는 건 교포들이라고 한숨지었다. 진정한 민간외교인 앞에서 무안했다. 그녀의 아버님은 지금도 해남에 살고 계신단다. 금 년 말에 짬 내어 귀국하면 서울서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땐 아내와 여사장의 포옹은 더 의스러질 것이다.

국내의 고위 공직자들이 해외출장 중 짬 내서 교포들의 생활터전을 방문 대화를 해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저녁식사는 또 한 분의 싱어송 교포식당 ‘악가락가’에서 코러스로 향수에 젖어보자고 예약했다. 취리히를 떠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진솔한 교포들의 삶의 모습을 공감하고 싶었다. 진하디 진한 감동을 선물 안겨주는 교포님들!

취리히 시가지를 거닐다보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두 분 교포님들이 학업 후 눌러앉게 한 마력의 도시란 걸 이해할 수 있었다. 근검절약과 정갈하고 배려하는 이웃으로 살아가기 생활이 아름다운 공동체의 사회가 됐지 싶었다. 별다른 생산 공장 없는 나라가 살기 좋은 풍요의 사회를 일군 건 절약과 환경보호가 몸에 밴 삶일 터였다. 일회용품 사용은 어디에서든 눈에 띄질 안했다.

밴 호프거리와 성당을 답사하고 오후 6시에 약속했던 ‘악가락가’에 들어섰다. 대머리사장님이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맞아준다. 3일간의 밀라노여행담을 반주삼다가 밀라노 스칼라극장에서의 오페라무대에 설 꿈을 꿨던 사장의 청춘을 소환하기도 했다. 오늘도 그는 향수(鄕愁)눈물 짤끔거리게 할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다시 찾아줘 고맙다면서 그는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 막 오픈한 가게는 우릴 뒤따라온 커플손님 뿐인데 대머리사장은 울`식구를 위해 ‘얼굴’을 헌정(!)하겠단다. 그가 마이크를 잡았다. 옥이 구르는 듯한 미성(美聲)의 테너는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을 열창하는 거였다. 울`식구 세 명과 커플손님까지 다섯 명의 코러스무대가 됐다. 아직 홀이 빈 상태라 목청껏 향수를 달랬다. 눈시울을 적시면서~!

싱어송 테너 뮤지션이기도 한 대머리사장의 한식당 '악가락가'

늙어빠진 아내와 나는 누굴 그리면서 눈물 훔쳤을까? 그리운 사람의 눈,코,입의 얼굴을 그리며 토한 노랫가락은 돌아가신 부모님얼굴이었다. 명곡 <얼굴>을 작곡한 신귀복선생은 중학교음악선생이었다. 교무회의 중 교장주재회의가 길어져 무료해진 동료교사 심봉석이 첫사랑을 떠올리며 낙서를 했다. 그걸 지켜 본 신귀복은 즉석에서 멜로디를 써서 작곡했것다. <얼굴>의 탄생순간이라!

한식당 '악가락가'의 대머리 사장은 테너 싱어 송이다. 식당안 간이 무대에서 열창 중이다
떡볶기와 녹두전병
불고기와 비빕밥
디져트
대머리사장의 열창을 경청하는 손님들
▲린덴호프는 구시가지 언덕 위에 있는 작은 공원으로 기원전 로마인들이 정착해 4세기까지 요새였다. 구시가와 그로스 뮌스터, 리마트 강, 취리히 호수 등을 조망할 수 있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린덴호프는 선사 시대, 로마 시대, 중세 시대의 모습이 성벽에 남아있는 역사적인 공원이다. 겨울야경이 더없이 좋은 장소란다▼
어느 저택 울타리의 모과나무와 마주치면서 잠시 잊혔던 향수에 젓었었다
▲취리히호수변의 수 많은 인파들 주변의 쓰레기통이 한군데도 넘치지 않는 사실에 난 놀랐다. 일회용물건 사용을 안해서다. 자원낭비에 환경오염의 주범을 왜 우린 방치 내지 즐겨사용 하는 걸까? 자원빈국의 우리가 말이다. 위정자들부터 썩은 관행 탓일까?&nbsp;▼
알프스의 만년설경이 눈앞에 펼처진다
취리히호수변 산책길을 트레킹하다보면 호수 밑바닥의 춤추는 수초가 보인다. 헬수 없을 보트가 정박해 있고, 휴식하는 시민들이 웅성대도 부유물 하나 없이 맑다. 우리가 그들보다 못 배워서일까?&nbsp; 아니다. 고관대작들부터 정신상태가 거지같아서 일테다. 지위 높은 자는 범법행위를 해도 미꾸라지처럼 빠저나가는 구멍이 있다는 도덕적해이가 만연해서일 것이다. 누굴 보고 배우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