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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2022 추석 어느 날

2022 추석 어느 날

▲카페 바오밥나무▼

추석전날 이른 아침, 아내의 재촉 속에 나는 물에 불린 쌀과 냉동 쑥 한 뭉치를 해동하여 백팩에 넣어 단골 떡 방앗간을 찾았다. 아뿔싸! 방앗간정문에 철재셔터가 내려져 있잖은가? 추석대목에 떡 빚을 사람들이 줄 서 기다려야 할 방앗간 앞에 나 혼자뿐이다. 휴대폰을 꺼내 간판에 적힌 전화호출을 하니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전화멘트가 울린다. 불경기에 문 닫은 걸까?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근처의 마땅한 떡 방앗간이 생각날 리 없다. 되돌아서 발걸음을 떼는데 방앗간건물 1층 화단 화초 숲에 가려진 집전화번호가 눈에 띄였다.

▲추석 다음날 안산 초록숲길 싸릿나무골에서 조망한 북한산▼
안산자락길에 만발한 꽃무릇

신호음이 한참 뜬 후에 아주머님이 전활 받았다. 좀만 기다려달라는 소리엔 선잠에서 막 깨어난 음색이 묻어났다. 이윽고 아직 세숫물기가 마르지 않은 얼굴의 아주머님이 인사를 하며 셔터를 올렸다. “미안해요. 어제 밤 새벽까지 떡방아 찧느라 늦게 잠들었어요.” “아뇨, 근데 왜 이리 손님이 없어요? 나는 불경기에 문 닫았나싶어 걱정했습니다.” “지금은 떡을 파는 전문소매집 외엔 떡방아 찧는 손님 없어 오늘은 한가해요.” 미안하고 당황한 건 나였다. 새벽까지 일하고 늦잠 들었을 아주머니의 꿀잠을 내가 깨웠으니 민망했다.

40대 후반일 아주머니와 나는 년 중 몇 번은 방앗간에서 뵈온지라 낯익힌 사이다. 쌀과 쑥을 꺼내는 아주머니를 향해 나는 소금과 당분을 첨가해달라는 아내의 당부말을 전했다.

“예, 이번엔 좀 많네요. 송편과 쑥개떡 만드시게요?”라고 아주머니가 묻는다. 가정집 송편 빚을 양치곤 많고, 가끔 쑥개떡 빚을 떡가루 빻으러 오는 나를 쳐다보면서다. 등산을 좋아하는 내가 산행할 때 쑥개떡을 점심대용 한다는 사실도 아주머니는 익히 알고 있음이다. 암튼 빻은 떡가루를 짊어지고 방앗간을 나오면서 셔터를 다시 내리는 아주머니와 ‘추석 잘 쇠세요.’라고 서로 이구동성 인살 했다.

▲광화문 D타워 이태리식당에서의 추석 뒤뒷날 점심 파스타▼

단순함과 편리성추구의 세상에 어느 가정집이 떡가루 빻아 송편 빚는 불편을 감수하겠는가? 핵가족에 1만원어치면 충분할 송편을 말이다. 명절 전날 떡방아 찧느라 방앗간 앞에 줄서 차례 기다리는 풍정은 옛날 얘기다. 아내는 지금도 그 풍경 속에 머문 채 나를 채근했던 거였다. 하긴 명절 때나 평상시에 떡 방앗간을 찾는 일은 내 몫이었으니 아내의 방앗간풍경은 몇 십 년 전에서 서성대고 있음이라. 그런 구태의연함을 나나 아내는 결단코 싫지가 않다.

▲D타워 이태리식당에서 점심에 곁들인 와인과 치즈센드위치▼

집밥을 애용하는 울`부부는 먹거리 대부분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그게 깔끔하고 영양가 높다고 나름 합리화하면서다. 그런 불편함을 아내는 귀찮게 여기기보단 즐기는 편이고 나는 추임새를 보탠다. 손수 빚은 음식을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즐거움을 아내는 뿌듯한 행복감에 젖어 희열하는 셈이다. 아내의 바지런함은 지인들 자타가 인정한다. 바지런하지 않고선 그런 수고로움을 고생으로 여길게 뻔하다. 나는 아내의 바지런함을 격려하고 사랑한다. 그래 아내의 요리 뒤치다꺼리를 기꺼이 하는 조수노릇을 즐긴다.

D타워 식당가 에스컬레이트는 1F~5F까지 직선연결이다

오늘도 나는 빻아온 쑥떡가루를 반죽한다. 식구들은 내가 ‘반죽의 달인’이라고 말풍선 띄우는데, 만두나 칼국수 만들 때 밀가루반죽은 나의 몫이 된지 수십 년째라 그럴 만하다. 송편용 쑥떡가루에 약간의 소다와 설탕과 올리브유를 첨가하여 약간 된반죽을 한다. 그 반죽덩어리에서 탁구공 만하게 떼어낸 덩이를 주물러 간장종지처럼 늘려서 고명을 넣고 빚은 송편도 절반 이상은 나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송편을 아내가 찜 솥에 넣어 익혀내자마자 후후 불면서 식혀 한 입 베어 먹는 맛깔은 형언할 수가 없다.

▲홍대 앞 카페 바오밥나무에서 추석연휴 마지막 밤을 보냈다▼

금년에 둘째가 늦게 합석 송편 빚기를 공유했다.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같이하면서 수다스런 입담과 웃음까지 양념으로 보태지는 송편시식자리는 행복만땅 자리가 된다. ‘송편’이라는 이름은 찜솥에 송편을 놓으면서 두릎마다 솔잎을 깔고 찌는데 소나무[송松]와 떡[병餠]에서 '송병'이란 단어가 송편으로 변음됐을 테다. 반달송편을 먹고 더 성장하여 보름달처럼 완숙해지라는 기원이 담겨진 송편은, 푸른 소나무처럼 청정하고 근기가 강인해지는 음식이란 함의가 깃들었단다. 새쌀로 빚은 송편은 옛날 참으로 귀한 음식이었지 싶다. 

추석이 (음)8월15일 이었던 건 신라 유리왕때 추석을 ‘가배’ 또는 ‘가운데’라 불러진 소이였다. 그당시 (음)7월16일~8월14일까지 신라여자들을 두 편으로 나눠서 왕녀 한 분을 리더로 삼아 양편이 길쌈과 적마시합을 밤낮으로 벌렸다. 한 달간의 경연에서 진편이 8월15일에 음주를 마련하여 춤과 놀이를 벌린 축제가 추석의 효시다. 밤낮으로 벌린 경연에서 남녀들은 또한 얼마나 연애질을 했을꼬? 당시 신라사회상은 성차별 없고, 근친상간도 허용되는 프리섹스가 만연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라는 한가위예찬은 풍성한 추수로 빚은 햇음식과 프리섹스향연 땜이었는지도 모른다. 풍성한 음식과 자유섹스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인데 추석은 얼마나 좋은 핑계거린가! 그런 자유분방이 조그만 나라 신라를 의기투합시키고 화랑정신으로 승화돼 삼국통일이란 기개의 싹이 됐지 싶기도 하다. 내일은 막내가 합류하면 추석맞이 행복은 보름달마냥일 테다. 둘짼 일정 짜느라 전화통이 불난다.                                 2022. 09 추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