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 하얏트 서울의 여름밤
처서(處暑)가 문 밖에까지 왔으니 여름이 앙탈 부릴만하다. 며칠 전에 율을 통해 J회장의 초정전갈을 받았다. 주말에 저녁식사를 하잔다. 담 주말로 약속하면 좋았을 텐데 출장예정이라 앞당겼단다. 아내생일을 기억한 배려일 터라 ‘말씀’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오후3시, 율을 따라 파크 하얏트 서울 F24로비에서 체크인 하고 F16스위트룸에 입실했다. 원더풀! 이런 호사를 금년에 또 차지했다.
응접실 티`테이블에 과일과 와인 한 병에 편지 한 통이 꽂혀 있었다. 제너럴 매니저 Andrew Ashdown님의 ‘찾아주셔서 고맙다’는 내용의 영문편지였는데 실상은 J회장한테 띄운 편지일 테다. 찡한 마무리 문장'Kamsahamnida!'가 오래 기억 될 것이다. 엷은 커튼을 올리자 코엑스 몰이, 마천루들이 통`유리창을 뚫고 밀려들었다. 파란 하늘이 구름떼를 쫓아내고 햇살세례를 퍼붓는다. 아! 이 무슨 호사인가! 울`부부는 어안이 벙벙한 채 감격해했다. 울`부부는 매년 J회장으로부터 이런 감격스런 대접을 받아오곤 한다.
오후5시 F2코너스톤`룸 별실에 J회장, 율, 울`부부가 착석했다. 지배인과 소믈리에가 호텔측에서 마련한 케익`커팅을 거들고 모두 축가(祝歌)를 합창하곤 샴페인을 터뜨렸다. 이런 호사스럽고 단출한 생일축하를 울`부부는 J회장과 율의 배려로 매년 해오는지라 행복감 달아날까 아깝다 . 이런 감동 그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울`부부는 뿌듯해 한다. 특히 아내는 J회장께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적시곤 한 적이 어림할 수도 없겠다.
인연이란 게 참 신묘(神妙)하다. 벽안(碧眼)의 사내 J회장이 순수한국인 꼰대인 울`부부와 흉금 털며 파안대소할 만큼 절친(切親)이 됐다는, 아니 가족 같다는 사실이 얼른 믿기지 않는다. 영어회화가 절벽인 울`부부와 패밀리가 됨은 J회장의 배려와 성심의 발로였다. 가교역할을 한 율의 노력이 절대적이지만 아내의 순수한 포용이 J회장의 심금을 울렸지 싶은 게다. 아내의 겸손에 J회장은 항상 “어머님은 충분한 자격이 있고, 저는 약소한 성의로 오히려 기쁨을 맛본다.”라고 겸양을 떤다.
J회장은 아내에게 따님을 훌륭하게 키워주셔서 자신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역설하곤 했다. 그의 말속엔 율이 뇌막염으로 한 달간 입원치료하며 첫돌을 맞은 기억을 소환하는 데서 연유됐지 싶었다. 46년 전 갓난애의 뇌막염은 치사율이 50%이상 이였고, 치료 예후도 장애아 될 확률도 50%쯤 됐던 난치병이었다. 24시간을 주사기를 꽂아 관에 약물을 주입해 치료를 해야 하는 갓난애는 혈관이 약해 2주일쯤 후엔 온 몸에 주사바늘 꽂을 데를 찾다 못해 손과 발목을 깊숙이 절개하여 혈관을 찾아내야 했었다.
아내는 무의식상태인 애가 뒤척이다 혹여 주사바늘이 잘 못 될까봐 24시간을 뜬눈으로 지켜보는 간병인 생활을 해야 했다. 더구나 아내는 당시에 입덧을 하던 참이었고 나는 멍청하고 무심해 아내의 그런 고충을 상상도 못한 채, 돈벌이에 올인 한다고 알량떨고 있었으니 아내의 고통은 상상을 절한다. 진해에 살던 우린 입원치료 중인 마산 파티마병원이 원거리여서 나는 사나흘간격으로 병원엘 갔었다. 설상가상으로 소아과전문의 정00박사는 돌 안의 갓난이의 뇌막염치료 임상경험이 없어 텍스트치료 하다 실수한 사실을 고백 용서를 구했다.
뇌막염은 보통 2주간 집중치료면 퇴원하기 마련이라 율한테도 2주간치료 후 호전되어 퇴원시켜줬다. 다만 이삼일 지켜보다 좀 이상 있음 곧장 다시 오라는 당부를 하면서였다. 근데 하룻밤을 겨우 보내고 우린 다신 병원에 재 입원시켜야 했다. 완치 안 된 상태로 퇴원하여 말짱 도루목이 되버렸다. 퇴원 시 골수액을 뽑아 뇌막염병균수치를 확인했어야 함인데 갓난애의 고통을 생각해 생략했다고 정박사는 후회하며 용서를 구했다. 환자에게 새우등을 만들어 등뼈에 주사바늘을 꽂아 한 방울씩 골수를 뽑아내어 병균수치를 확인해야 하는 절차를 부러 생략했던 결과였다. 그 상황은 지금도 오싹해 진다.
그래서 2주일간의 투병생활을 더 하게 됨이었다. 무의식상태의 갓난애의 고충은 알바 없지만 아내의 반복된 고통과 심려는 언어도단이었을 테다. 나는 아내의 그때의 통철한 아픔을 한 참 후에 인지했다. 암튼 다시 2주일간의 치료 후 퇴원한 율은 이상 없이 성장했다. 혹시 후유증이 발생할까봐 아내의 노심초사는 율이 고교생일 때까지 응어리로 남았었단다. 천행으로 율은 E대비서학과를 졸업, 외국회사에 근무 중에 글로벌금융투자사M에 스카웃 됐다. M사의 J회장은 동남아시장개척의 첫발을 한국에서 디뎠고, 율은 비서실에서 그를 25년간을 보좌함이라.
J회장은 한국에서 성공하여 동남아시장까지 개척 아시아총괄회장이 됐다. 그의 성공의 비결은 율의 보좌덕이라 역설한다. 그래 울`부부와 대면소통하기 시작하여 끈끈한 패밀리가 됐음을 또 하나의 행운이라고 자찬하며 그런 모든 걸 공유하고 싶다며 살갑게 대하는 거였다. 오늘 5시간의 만찬도 J회장의 그런 배려와 열정의 소산이다. M사와 J회장의 성공엔 율을 무탈하게 키운 아내의 숨겨진 내공이 밑바탕이었단 걸 회억하는 자리였지 싶었다. 그는 진실남이며 순수한 휴머니스트다. 자상한 성격의 그는 유머러스하며 싱어송라이터이다.
절약이 몸에 밴 소탈한 생활을 즐기는 J회장은 불우이웃을 돕는 일과 유일한 낭비(?)인 애주(愛酒)에 쓰는 비용은 아끼질 않는다. J회장이 이방인으로써 한국문화의 애환을 공감`공유하려는 비상구로 울`집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가 함께하는 자리는 언제나 파안대소 흐뭇한 소확행의 시간이라. J회장은 추석 후에 울`부부를 위해 대단한 스케줄을 마련했다고 율이 귀띔해 줬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 모두가 이 상태로만 시간을 붙들었으면 좋겠다고 과욕을 부려본다. 5시간이 그렇게 훌쩍 흘러갔다. 쾌적한 스위트룸에 두터운 커튼을 내렸다. 2022. 0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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