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날 안산초록숲길의 합창
요즘은 삼복더윌 피한다고 등산은 포기하고 안산초록숲길 트레킹으로 산행을 즐긴다. 두 서너 시간 초록숲길을 걷다보면 땀으로 멱을 감고, 귀가하여 흠뻑 젖은 몸뚱일 샤워하며 냉수삼매경에 드는 시원함은 여름철만이 주는 선물이다. 더구나 열대야에 잠 설친 날의 산행 후 냉수삼매경에 이은 깜박 쪽잠은 뜨건 여름의 보약이기도하다. 요즘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전에 안산(鞍山)초록숲길 트레킹에 든다.
혹서 탓인지 산책객들도 뜸해졌다. 엊그제 울`나라로 북상하다 소멸된 태풍여진에 할퀸 초록이파리들이 때 아닌 낙엽이 되어 무수히 숲길에 깔렸다. 그렇게 생명을 앗긴 상처투성이 잎들을 위무하려는지 바람 한 점 없는 숲속은 열섬현상이 팽배하다. 울창한 메타쉐콰이어숲을 가르는 데크길에 들어서자 여린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옥타브도, 울림도 커져 초록숲을 울리는 합창이 됐다. 개구리들의 아리아가 불협화음으로 숲속을 흐르는 거였다.
이 뜨거운 날에 개구리들의 뜨거운 합창(?)은 구애의 세레나데일 것이다. 태풍여진에 습한 숲웅덩이에 물이 고여 짝짓기의 무대가 돼 수컷들은 목청껏 소리 높여 암컷을 유혹하고 있는 거였다. 그렇게 수컷이 열창을 하면 근처의 다른 수컷이 뒤질세라 연쇄반응을 일으켜 질펀한 사랑의 콘테스트장이 된다. 알고 보면 치열한 생존경쟁 - 짝짓기의 각축장인 것이다.
웅덩이속의 개구리들이 벌리는 사랑의 콘테스트를 보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짝짓기의 혈투는 처절하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하다. 지보다 덩치 큰 수컷이 두 서너 마리씩 달라붙어 치도곤을 치는데도 고스란히 감내하는 암컷의 수태본능은 숙연하기까지 하다. 어떤 종(種)의 개구리는 알 내지 부화된 새끼를 등에 업고 다니다 성체가 되면 이소시키는데 그런 모성애는 개구리가 지구상에서 3억년을 살아남은 생존의 비기(秘技)일 테다. 인간의 역사는 새발의 피다.
개구리 같은 양서류(兩棲類)는 물과 뭍을 떠나선 생존이 불가능한 생명체다. 애초에 바다가 서식지인 개구리가 어쩌다 육지로 올라와 활동하다보니 생존이 더 용이해 땅과 바다를 전전하다 웅덩이 옆에 정착했을 테다. 놈들은 환경에 적응하는 DNA가 특출하기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알래스카 툰드라지역에 서식하는 개구리는 몸속에 부동액을 개발하여 신체의 65%가 냉동된 상태로 한 달여 동안 버틸 수 있단다.
봄이 와 해동(解凍)할 때다 싶으면 하루 만에 활동을 한다. 그런가하면 호주의 사막에 서식하는 개구리들은 비 오는 날엔 방광에 물을 가득 채우고 모래흙 속으로 90cm까지 파고 들어가 비가 올 때까지 건기를 보낸다. 호주의 어떤 사막은 건기가 2~3년간 지속되기도 하는데 놈들은 3년까지는 견디어낸다니 생명력은 지구상의 어떤 동물보다 빼어나고, 환경적응력도 우수해 무려 6000여종의 개구리로 세분화됐단다.
봄날 안산자락길에선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두꺼비)들이 웅덩이를 찾아 하산하는 개구리들의 엑서더스를 종종 목격한다. 놈들은 골짝에서 내려와 수로(水路)를 통과해야 하는데, 수로에 빠진 놈들은 탈출구가 없어 죽음의 기로에서 기진맥진하기 일쑤다. 운 좋은 놈은 용케 탈출을 하지만 우왕좌왕 엉킨 놈들은 지나가는 산님들의 구조의 손길에 의지하기도 한다. 서대문구청은 수로 탈출구 만들어야 함인데 수년동안 나 몰라 하고 있다.
시민들 위해 안산자락길 조성 하면서 갓길에 만든 수로가 애먼 개구리들에게 지옥길 만들어 준 꼴이 됐다. 산골짝에서 지금 사랑의 세레나데를 열창하는 개구리들이 겨울에 동면하다 봄철에 하산하다 마주칠 지옥길 - 안산자락길의 수로에는 지금도 개구리를 위한 탈출구는 어디에도 안 보인다. 지금 서대문구청에서 안산자락길 '너와 집' 골짝 정비공사가 한창인데 개구리탈출구부터 만드시라. 개구리들의 환경적응능력이 뛰어나다고 방치하는 어리석은 행정이 안산자락길, 초록숲길의 치부로 입소문 날까싶다. 2022.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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