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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대관령 소나무숲길

대관령 소나무숲길 

노무현 전 대통령 쉼터의 산님들

 아침6시에 집을 나섰다. 7시에 사당역전에서 출발하는 <재경 광`전 향우회산악회>에 끼어 ‘대관령숲길’트레킹에 나설 참이다. 나는 며칠 전에 산악회를 노크함에 이어 실로 몇 년 만에 산악회를 통한 산행인가? 더구나 내 고향인 <광주`전남향우산악회>란데서 초행인 나는 설렘도 더해 사뭇 달뜬 기분이었다.

금바위 폭포

어제 뒤늦게 예약 후 연락받은 2호차에 탑승했다. 버스4대가 만석이란 데 혹여 지인이라도 있을까? 하고 신경 쓰이기도 했다. 전라도풍취가 몸에 밴 오십~칠십대 산님들이 주류를 이뤄 분위기는 금방 격의 없이 살가워졌다. 어디서 왔는지 주차장은 벌써 난장이 됐다. 코로나팬데믹은 딴세상 얘긴가 싶었다. 11시에 대관령 어흥리 주차장에서 소나무숲길에 들었다.

금강송숲길

좁은 산길에 200여명이 꼬리를 물고 늘어선 정황은 흡사 숲길을 헤쳐 오르는 구렁이 형상이라 할까? 그래 푸나무들도 심난해 외면하려는가. 숲은 미동도 않은 채 침묵하고 있다. 구름을 쫓아낸 햇살이 낙락장송을 뚫고 숲을 달랜다. 푸나무들은 뭉텅뭉텅 잘린 햇살 머금으며 숨 쉬느라 피톤치드를 한껏 내뿜고~!

▲삼포암폭포▼

신선한 피톤치드는 여울처럼 숲속을 번져 싱그러운 기운을 온 산에 뻗친다. 그래 바람 없는 날 무겁게 침묵하는 산세를 헤치며 산님들은 지치지 않고 기꺼이 오르나 싶다. 물의 노래가 점점 낭창해진다. 삼포암계곡의 물소리였다. 바위와 돌멩이를 뛰어넘는 물길은 폭포를 만들어 드센 물보라만큼 합창도 우렁차고 숲 바람도 시원하다.

▲솔숲교▼

몇 개의 폭포와 소(沼)에 홀려 골짝숲길을 헤쳤을까? 솔숲교를 건너 솔고개입구 가파른 덱계단을 오른다. 구절초 한 무리가 마중 나와 화사한 미소를 짓고있다. 대관령 가을이 성큼 발부리에서 채였다. 낙락장송들은 구름을 뚫고 파란하늘을 더 높이 떠받쳐 올리며 가을영접에 나섰다. 파란 가을이 소나무 끝에 매달린다.

키다리꺽다리 금강장송들이 떼로 몰려온다. 창공을 향해 팔방으로 네 활개 뻗쳐 우뚝 선 금강장송 앞에 서면 나의 왜소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겨우 100년을 살까말까 하는 인간이 욕심이란 귀신에 홀려 아등바등 힘겹게 살아가는 처연함을 산은 자성(自省)케 해준다. 진정한 산님이 된다는 건 쉽고도 어려운 일일 것 같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금강송만한 지도자가 지금 한 분이라도 있음 싶었다

숯가마터에 닿았다. 근대에 대관령장송들이 사람들을 위해 저 불구덩이 속에서 까맣게 태워져 한 줌의 재가 되면서 깊은 산촌사람들의 생계를 도맡았다. 대관령 소나무는 1922년부터 6년간 소나무씨를 직파해 싹을 키워 관리한지 100년이 됐단다. 아마 대관령 숯쟁이들은 볼 품 없고 요절한 나무들만 숯가마에 넣었을 테다. 야산의 늠름하게 잘 생긴놈은 재목으로 남벌하여 못생긴 놈이 장수해서다.

숯가마터와 펜션

2000년 ‘21세기를 위하여 보존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한 대회를 열고 ‘문화재 복원용 목재생산림’으로 대관령숲은 인정받았다.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인제 자작나무숲등과 함께 숲의 역사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얼마전 산불로 태백준령이 불바다가 됐을 때 용케도 이곳 대관령은 무사히 우릴 맞아 줌이라. 

고향의 옛집을 재현한 초가엔 때 켜켜이 묻은 살림살이가 더 살가웠다

숯쟁이들의 숯가마터는 팬션과 초가집으로 환골탈퇴하여 관광객들에게 서비스업으로 직업도 바꿨지 싶다. 세 칸짜리 초가집엔 옛 살림살이들이 고즈넉하게 자리한 채 툇마루에 걸터앉는 탐방객들을 노스텔지어로 차환시킨다. 아궁이에 불지피고 있는 아주머니가 내 어릴적 고향의 어머님을 오버랩시켜주고~!  풋풋한 솔바람이 코끝을 간질거리는 치유의 숲! 툇마루에서 심호흡한다.

주인 잃은 물래방아

주인 없는 물레방아도 세월의 물길에 닳고 뜯긴 상처자국을 훈장처럼 덕지덕지 달고 휴식에 들었다. 놈은 언제 물길 철철 뿜어내며 옛날처럼 연좌방아 찧는 재생의 날개짓 할런가? 물레방아는 지난날의 수고로음을 위무하려는 물의 노래가 자장가처럼 들릴테다. 소프라노 매미가 목청껏 뽑는 아리아는 잔잔한 합주곡이 됐다. 자연의 합창을 경청하며 금강송정길을 걷는다.

금강송정자에 올라 배낭을 벗고 해갈한다.  야생화 숲길은 여름철 폭염을 피하느라 죄다 꽃망울을 감췄다. 노무연 전 대통령이 잠시 쉬워갔다는 쉼터를 향하는 소나무숲길은 장송(長松)들의 콘테스트장이다. 내 발걸음도 신바람이 난다. 워낙 서두른 탓에 내가 선두그룹이 됐능가? 보성출신 산님 네 분이 숯가마터에 닿았다는 후미의 일행분과 전화로 점심자리 물색에 설왕설래다. 아직 정오가 한참 후인데? 나는 그냥 앞서 나갔다.  

▲금강송정▼

인간의 역사는 걷기의 연장선이다. 움직이는 행동 -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행위가 삶이고 곧 역사라. 걸어가야 하는 곳은 기후와 지형에 따라 천태만상을 품으며 부단히 전진해야 되는 게 인생인지라 도중에 포기해선 소기의 행복을 안을 수 없으리라. 오늘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참으로 근사해 기쁨 만끽할 수 있지 싶었다. 파아란 하늘이 솔잎 사이로 쏟아진다. 

▲대관령소나무숲길 - 유토피아가 이런 델까!▼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 소나무숲길을 걸었을 테다. 어쩜 노대통령이 밟은 발자국위에 지금 내 발길을 포개는지도 모른다. 노대통령은 이 숲길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상큼한 피톤치드에 취하면서 정사(政事)란 실타래를 풀 길을 사색하느라 잠시 묵상했을지 모른다. 그의 뒤태를 상상해 봤다.

▲대통령쉼터의 필자와 노 전 대통령의 여기 쉼터에서의 해갈 사진▼

숲길의 산책은 기분이 좋아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미래를 향하는 걸음걸이가 활기차고, 나아가 진취적인 사유의 능력을 배가시킨단다. 노대통령의 사유와 이상은 너무 순수하고 고매(高邁)하여 탈이었을까? 노대통령이 발걸음 멈춰버린 새벽 부엉이바위숲길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그때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때도 드물었다.

풍욕대의 소나무

풍욕대에 닿았다. 깊은 골짝을 곤두박질하는 물소리에 우거진 초록이파리가 떨고 있다. 그 미세한 파장이 숲 바람이 되어 계곡을 울린다. 매미와 풀벌레들의 합창단이 산골을 순간 오케스트라전당으로 만들었다. 우쭐해진 나는 나를 위해 벌린 자연의 오페라연주에 슬며시 빠져들었다. 햇살이 숲 사이를 기웃되며 춤춘다. 산속 숲이 주는 기쁨을 만끽한다. 기분 째지게 좋다.

선자령을 휘돌아 오는 계곡물길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노천명의  시<사슴>-

금강송표피가 햇빛에 반사되어 승천하려는 용의 비늘처럼 눈부셨다

 이화여대를 나온 노천명은 미인이었다. 모윤숙과 최정희 세 시인은 단짝이었는데 친일운동도 어깨동무했던 불온한 시대가 낳은 갈대였다. 허나 청년들에게 가미가제가 되라고 읊은 노천명의 시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려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다면 귀한 부르심을 입었을 것을~" 이라고 읊은 <님의 부르심을 받고>는 우리를 통곡케 한다. 오호, 통재라!

쉼터

생뚱맞게 노천명의 시를 꺼낸 것은 내가 지금 '노루목이'를 찾아가는 땜이다. 노루도 모가지가 길기론 사슴 못잖아 내가 시인이면 노루를 제목삼아 시 한 수를 읊고 싶은데, 노루란 놈이 알량한 나의 시를 읽다가 그 긴 모가지마저 빠져서 죽을까 봐 생략했다. 산형세가 노루목 같이 잘룩하다고 '노루목이'이라 했단디 창창 우거진 푸나무골짝에선 노루목의 '노'자도 가늠이 안 된다.

한쉼터 밴치에 앉아 파란하늘에 뿌리를 내리박고 우람한 몸뚱일 숲에 처박은 거구 금강송을 촌철살인하려 들었다. 참으로 잘 생긴 귀골이라. 놈은 쫌만 상처나도 곧 진액을 짜내 자가치료한다. 병충해를 막는 송진은 소나무가 장수할 수 있는 명약이다. 일제는 그 송진마저 전쟁에 쓰려고 온 강산의 소나무는 마구잡이 상처내어 송진채취를 했었다. 

숲속의 집

대관령소나무는 그런 상처의 트라우마가 안 보여 다행이다. 저리 늠름한 금강송을 보면서 인간의 수명이, 한계가 얼마나 초라함인가를 생각해 본다. 인간은 숲의 일원이다. 죽으면 초목의 영양제라도 됨 좋으련만 화장한 후 공해찌거기로 남기 십상이라. 그래 살아있는 오늘 자연을 사랑할 지어다. 초막철교를 건넌다.

금바위폭포
산림문화휴양관

숲 바람을 일으키는 굉음의 금바위폭포 앞에 섰다. 높이17m 거암을 딍굴면서 튀어 오르는 물길은 깊은 소에서 용트림을 한다. 옛날 대관령중턱에서 캐낸 금덩이를 여기 바위위에서 빻고 갈아 순금만을 채취할 때, 금가루가 폭포에 떨어지면서 폭포수가 번쩍번쩍 빛나 ‘금바위폭포’라 불렀단다. 혹여 저 깊은 소 바닥에 지금 금가루가 뭉쳐있을지도 모른다.

금바위폭포

산림휴양관은 최상의 힐링처가 될 성싶었다. 오늘 같이 많은 산님들이 산골짝을 후비는데도 휴양관만은 죽은 듯 고요하다. 휴양소를 지나가는 손님은 오직 숲 바람과 물의 노래와 풀벌레의 합창이 전부인 자연뿐이었다. 며칠 간 자연의 오케스트라에 취해 만신창이 심보를 환장(換腸)했음 싶었다. 반시간여를 얼쩡대며 심포니연주 속에 빠져들었다.

휴양림을 나와 삼포암계곡 물길을 따라 하산한다. 갓길에 가이드라인을 설치하여 골짝물가에 내려설 수가 없는데 하류로 내려올수록 알탕족들이 눈에 띈다. 입맛만 몇 번인가 다시다가 나도 공범자가 되기로 했다. 족욕(足浴)의 맛은 산님들의 별미일 것이다. 진종일 혹사시킨 발에 대한 예의라나! 알탕맛 못 본 산행은 절반의 행복이라고 어느 산님이 호연지게(?) 일갈했다. 

가이드 라인 아래 금단의 지역 삼포암폭포 앞에 섰다. 아침엔 구렁이형상의 인파로 엄두도 못 낸 범법행위다. 선자령을 훑고 휘돈 청정물길은 삼단바위를 굴러떨어지느라 죽을판 살판 요동친다. 틔어오르는 물방울은 구슬이 되고 산화돼 골짝을 뒤흔들었다. 폭포는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환장 정화시켜주는 마력에 빠져들게 한다. 폭포처럼 살 수 있으면 그도 행복한 인생일 테다. 

▲삼포암폭포▼

200여 명의 고향사람들 속에 끼어 든 오늘 대관령 소나무숲 트레킹은 피곤을 모르는 풋풋한 산책길이었다. 더구나  인심도, 배품도, 친절도 구수하고 풍요스런 전라도의 풍미 그대로여서 나는 오랜만에 고향의 품에 든 기분이었다. 좋은 사람들, 언제 또 뵙는 날까지 건강 챙기시길 염해 봤다. 딱 하나, 버스에서의 흥취만 절재했으면 더 좋았을 걸~!          2022. 08. 28 

황태전골(?)로 저녁식사를 제공한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