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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아차산 대성암에서

아차산 대성암에서

대성암 종각

아차산(阿且山)은 채바퀴 일상에서 무료하다싶고 한나절 짬이 나면 얼른 찾아가고픈 산이다. 서울도심에서 반시간쯤이면 닿을 수 있고, 가파르지도, 높지도 않은 바위산은 소나무를 비롯한 식생(植生)이 좋아 짬짬이 쉬기도 좋다. 뿐이랴, 서울도심과 서울을 휘두른 산세의 준령들을 파노라마 감상할 수 있어서다.

낙타능선

청명한 오후 찌뿌대대한 몸뚱이 비빌 곳 생각하다 불현 듯 아차산 생각이 나서 전철에 올랐다. 환승 없이 반시간이면 그의 품을 파고들어 뭉갤 수 있어서였다. 구부정한 소나무들 제 멋대로 춤추는 계단을 오르다가 고구려정 빤히 보이는 난타능선바위 등에서 가을햇살 탐닉하는 산님들이 하 많아 멈칫했다. 나처럼 찌뿌대대해 왔을까? 추색(秋色) 번지는 가을영접꾼들일까?

롯데월드타워
고구려정

삼삼오오 얘기꽃 피우나 싶은 게 영추(迎秋)꾼들인가 싶었다. 난간에 산님들 앉힌 고구려정을 외면하고 낙타능선을 오른다. 바윌 달군 햇살이 내 이마에서 땀을 짜낸다. 아차산은 백제가 도읍한 후 신라와 고구려가 호시탐탐 노려 각축전을 벌린 곳으로 유명한데, 내가 솔깃했던 일화는 명종 때 점쟁이 홍계관의 억울한 죽음이다. 명종임금은 그가 점을 잘 친다는 소문을 듣고 불렀다.

홍계관 앞에 생뚱맞게 궤짝 하나를 내놓고 궤짝 속에 쥐가 몇 마리 들어있냐? 고 물었다. 그가 머뭇대며 대답을 않자 뿔따구 난 명종은 그에게 사형을 명한다. 홍계관이 사형장에 끌려간 후 궤짝속의 배불뚝이 쥐를 죽여 배를 가르니 새끼를 밴 암쥐였다. 명종은 ‘아차’신음하며 사형중지를 명했다.

하지만 이미 사형을 집행한 뒤였다. 하여 사형집행 장소 위쪽의 이산을 후세사람들은 ‘아차산’이라 불렀다. 억울하게 죽은 홍계관은 ‘아차산’이란 산 이름 남긴 셈인가? 명색이 임금인 명종은 요새 회자되는 공정도 상식도 없는 짓으로 ‘쪽팔린 왕’이 됐다. 낙타능선갈비뼈대를 워커힐 쪽으로 내려서면 대성암 대웅전이 괴이한 바위에 등짝을 기대고 있다.

그 바위동굴 앞에 신라 때 의상대사가 움막을 짓고 수도(修道)를 했는데 대사의 가르침을 받으러 많은 중생들이 모여들었다. 수도처 뒤 동굴 바위구멍에서 쌀이 나와 포도시 연명을 하던 차, 누군가가 더 많은 쌀이 나오게 하려고 바위구멍을 크게 뚫었다. 그러자 쌀뜨물과 불에 탄 쌀이 며칠간 나오다가 끊겨버렸다. 그동안 하늘에서 내린 천공미(天共米)가 인간의 무분별한 욕심에 사라진 거였다.

한강과 하남시

대성암엔 쌀 대신 가을빛이 풍성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햇빛 포식하는 초목이 색동옷으로 갈아입고 뜸해진 탐방객을 맞이하고 있다. 노랗게 물드는 느티나무 어깨사이로 밀려드는 한강과 하남시가지와 검단산이 한 폭의 묵화가 됐다. 아차산은 발길을 잠시 멈추고 아무데서나 고개를 들면 멋진 산수화가 펼쳐진다. 대웅전 뒤 천공미가 나왔던 쌀바위구멍은 가려 놨다.

쌀바위

" 고개 고개 넘어 호젓은 하다마는

풀섶 바위서리 빨간 딸기 패랭이꽃

가다가 다가도 보며 휘휘한 줄 모르겠다

쌀바위구멍은 가림막을 쳤다

묵은 기와쪽이 발 끝에 부딪치고

성을 고인 돌은 검은 버섯 돋어나고

성긋이 벌어진 틈엔 다람쥐나 넘나든다

그리운 옛날 자취 물어도 알 이 없고

벌건 메 검은 바위 파란 물 하얀 모래

맑고도 고운 그 모양 눈에 모여 어린다 "

가람 이병기선생의 <아차산(阿且山)>을 옮겨봤다.                          2022. 10. 20

하남시 뒤로 검단산준령이 내닫는다
고려촌(좌)과 얼굴바위(우)
고구려정에서 조망한 강남일대. 관악산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