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육모정- 영봉 - 도선사 - 소귀천)
엊밤에 겨울하늘은 눈구름을 몰고 가다 기침 한 번 했을까? 깃털눈발을 풍금질 하여 길섶에 뿌려 놨다. 우이천변을 기웃대며 육모정공원지킴터를 통과한다. 육모정고개를 넘어 영봉을 밟고 하루재를 통과하여 도선사에 들렸다가 소귀천을 거치는 원점회귀산행을 할 참이다. 날씨는 싸하지만 등산하기 좋을 것 같아 북한산 영봉에서 멀리서나마 계묘년의 삼각산(三角山)을 품어볼 심산이다.
삼각산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봉의 세 봉우리를 이름인데, 인수봉의 옛 이름은 '부아악(負兒嶽)'이였다. 북한산이란 이름은 조선조 후기 한강이북에 있는 산이라 불리면서 한양[서울]의 진산(鎭山)이 됐다. 용덕사명찰을 달고 있는 거암의 골짝부터 벌거벗은 초목들이 눈꽃치장을 한 채 얼음길을 만들었다. 미끄러운 등산길은 만발한 눈꽃의 아름다움에 빠진 나의 관심 밖이 된 꼴이다. 스틱도 꺼내지 않고 눈꽃길을 헤친다.
높이5.12m의 용덕사마애불은 여성약사불로 십리쯤 떨어진 도선사의 남성약사불과 함께 부부약사불로 불린단다. 산신각은 용의 아가리형태의 자연동굴속에 뫼셨고, 그 앞의 바위를 여의주로 여겨 영험한 기도처로 회자된다. 하여 소원성취를 기도하는 신자들로 붐볐다. 음3월16일 마을사람들은 제주를 뽑아 삼각산에 산신제를 봉행하며 소원을 기원한 신성한 자리란다.
육모정고갯길부턴 설화의 세계가 펼쳐지고 대머리 인수봉이 흰 머리칼 몇 가닥을 심고 다가선다. 스틱을 꺼내고 아이젠을 신을까? 입맛을 다시다가도 바윗길 오르막이라 그냥 전진하는데 여간 조심스럽다. 사실 스틱과 아이젠은 편리 한만큼 가파른 바윗길에선 불편하기도 하다. 도봉산 오봉이 갸우뚱 고개를 내밀더니 쬠 있다가 밤새 수묵화로 변신한 자운봉, 만장봉, 신선대 등의 도봉산연봉들까지 자태를 뽐낸다.
뿐이랴, 수락산도 덩달아 강북 시가지를 휩쓸려는 듯이 스나미처럼 밀려오고, 그 기세가 심상찮다는 듯 인수봉이 삼각산편대를 이끌고 학익진을 편다. 영봉을 향하는 우이능선의 확 트인 전망은 한강이북의 산세들을 죄다 조망할 수 있어 산님들의 사랑을 받는다. 하얀 면사포를 깐 헬기장에서 기갈을 때운다. 대여섯 분의 산님들이 영봉쪽에서 나타났다. 반가웠다.
“아이젠 안 신어도 되겠습디까?” 그들의 신발을 주시하면서 내가 물었다.
“영봉까진 오르막이라 안 신어도 될 겁니다. 우린 내리막이라 한 짝씩 나눠신었어요.”아이젠을 왼쪽 발에 걸친 여성분이 멋쩍다는 듯, 아니 자랑하듯 발 들어 보이며 웃었다. 나도 환하게 미소 지었다. 산에서는 누구나 어린애처럼 순수해지나 싶다. 눈 덮인 헬기장에서 그들은 어린애들처럼 사진을 찍느라 수다를 떨곤 내 발길을 따라 사라졌다.
나도 동행 한 분쯤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오늘은 더 간절했다. 특히 겨울철 산행엔 길동무가 있어야 한다. 영봉 오르는 바위벼랑이 얼음길이다. 꽁꽁 언 얼음쇠파이프를 잡고 바위벼랑을 오르다 미끄러지길 두어 번 반목하다 시지푸스의 바윌 떠올렸다. 늙은 내겐 시지푸스의 불굴의 정신도, 기력도 짜잔하다. 미끄러지듯 내려와 아이젠을 착용한다. 바위얼음은 아이젠톱날에 부서지며 망가진다. 진즉 아이젠을 신었어야 했다.
인수봉이 시지푸스처럼 겨울과 밀당한 하얀자국들을 보란 듯이 자랑하며 내 앞에 다가섰다. 백운대와 만경대가 응원을 하고 있었다. 하루재를 통과하곤 도선사로 향했다. 몇 해 전인가 찾았을 때도 겨울이었지 싶다. 도선국사가 전국을 유람하다 삼각산 앞에서 ‘산세가 절묘하고 풍경이 청수한 이곳에서 천년 후 말세 불법이 재흥하리라’ 예견하고 862년 사찰을 세웠던 곳이 저 아래 우이골짝이다.
도선국사는 경내에 우뚝 선 큰 바윌 절반으로 나눠 한쪽 면에 20여 척 높이의 관세음보살상을 새겼다. 근대에 청담(靑潭))스님이 주지로 임석하여 ‘불교정화는 단순히 비구와 대처 간의 싸움이 아니라 국민사상 개조운동’이라며 박정희정권을 설득, 평화염원(平和念願)에 입각한 불교중흥(再興)을 이룩하려고 수행불교(修行佛敎), 실천불교(實踐佛敎), 생활불교(生活佛敎) 기치를 들고 불국정토 기반을 닦았다.
또한 불교정화이념 홍보기관지로 탄생한 불교신문을 창간한다. 청담스님의 발워으로 도선사는 대찰다운 면모로 일신 항상 불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코로나팬데믹의 불안한 사회에서 해방구를 찾으려는 불자들일까? 사찰경내 불상을 뫼신 곳에 기도하는 신자들이 많다. 나는 청담스님 비와 입상이 있는 사리탑과 삼천지장보살상이 있는 언덕에 올랐다. 청담혼백 언덕배기다.
가파른 얼음계단이라선지 순례자가 뜸했다. 바람 한 결이 스쳐갈 때마다 삼천지장보살상 처마 끝의 풍경소리가 정적을 깨뜨리며 마음을 고요 속으로 침잠 시키는 거였다. 벤치에 앉아 한참을 풍경소리에 마음 가눴다. 도선사를 빠져나오다 마주친 일주석에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 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라고 쓰여진 산문(山門)을 보게 된다.
우이천을 따라오다 소귀천 합수지점에서 선운각방향으로 들어섰다. 노적봉과 만경대골짝을 흐르다 용암문을 통과하여 우이천과 합류하는 소귀천 계곡입구에 유명한 선운각이란 요정이 있었다. 1964년 4월15일 개업하여 제3공화국~제4공화국 시절의 대표적인 요정 '선운각'이 카페로 둔갑해 옛 영화를 되새김질 하고, 일부는 할렐루야 기도원으로 쓰이고 있다.
내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선운각의 기와지붕과 돌담장과 굴뚝의 유려한 한옥의 정취를 감상할 수가 있어서다. 고색창연한 돌담과 기와지붕위로 하늘병풍을 휘두른 삼각산연봉은 탄성을 연발케 한다. 더구나 소귀천계곡 돌바위를 건너뛰는 물소리와 골짝을 살랑대는 바람소리는 저절로 힐링의 순간에 푹 절이게 된다. 가상한 건 그런 소귀천골짝이 얼마나 완만한지~!
소귀천하류에 골바람 한파장이 골짝을 애무하듯 흐른다. 겨우내 시달렸던 고엽 몇 이파리가 골바람등을 타고 몇 바퀴 딍글다 빙하에 누웠다. 얼음이 풀리면 저놈은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나 어느 새싹의 이부자리로 재생할 것이다. 얼음장 밑을 흐르는 여린 물길의 전송 합창이 계절의 사잇길을 찬양하는~. 아! 속절없이 나잇살 더 먹는 찰나(?)인데 개 넋의 나는 들뜬 기분이다. 새해에도 나를 아는 모든 분들의 안녕을 염원한다. 기분 좋은 하루였다. 2023. 01. 17
'걸어가는 길 -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암송숲길의 선물 (0) | 2023.02.16 |
---|---|
인왕산 굿당골 (0) | 2023.02.06 |
아차산 대성암에서 (0) | 2022.10.22 |
용문산 (용문사- 가섭봉- 대장봉- 상원사) (0) | 2022.09.14 |
대관령 소나무숲길 (0) | 2022.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