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송(巖松)숲길의 선물
나는 별 볼일이 없는 날엔 산행을 한다. 아파트를 나서면 곧장 안산초록숲길이나 인왕산둘레길로 들어서 두서너 시간 산행하면 심신이 가벼워진다. 자연을 가까이 하는 일상은 늘 신선한 기운과 지혜의 샘물을 마시는 삶이다. 울`부부가 산행이외에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는 생활이지만 여태 건강한 소이는 매일이다시피 하는 산속 숲길의 트레킹 덕일 테다.
인왕산,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등 서울근교의 산이 반시간쯤이면 숲길을 내주고, 더구나 그들 바위산들은 멋들어진 소나무와 공생을 하고 있어 눈 호강까지 선사한다. 아기자기하고 융숭한 산자락 숲을 소요하며 영육을 살찌우는 삶이 얼마나한 행운인가를 체득한 바다. 화강암바위산이 빚은 바위와 소나무의 공생!
기암괴석과 삐뚤빼뚤 휘어 굽이친 소나무와의 연애질이란 빼어난 풍경은 넘 매력적이어서 등산 중의 힘겨움을 그때그때 잊게 해준다. 소나무는 지구상 어디에서나 자생하는 사철나무로 사랑받는다. 곧고 굵게 자란 소나무는 속이 황적색을 띄어 황장목(黃腸木)이란 고급재목으로 왕실과 귀족들의 관재로 쓰였던 보호수였다.
황장목은 단단하여 오랜 세월에도 잘 썩지 안해 왕과 제후들은 꼭 황장목 곽(槨)을 사용했으며 자생지역을 금산(禁山)이란 표석을 세워 나라에서 보호했다. 하늘로 솟는 소나무의 비늘줄기를 승천하는 비룡으로 빗대어 “솟아오른 푸른 용이 하늘에 뜬 구름을 안고 있다(地聳蒼龍勢抱雲)”고 표현하여 군자의 절개를 의미하는 창송(蒼松)이라고도 했다.
서울근교 산들은 대게 바위산인지라 공생하는 소나무들은 꼬부랑노송들이다. 뿌리 내릴 곳 없어 하필 바위틈새일까 싶다가도 단단한 몸뚱이 쪼개서 뿌리박게 해준 바위의 심정을 헤아려보면 그들의 절실한 애정을 실감케 돼 공생공존을 이해하게 된다. 무료해서 죽을 지경인 바위가 소나무를 건사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즐거움 말이다.
소나무한테 잠시 머물다가는 바람과 구름과 온갖 새들이 전해주는 세상살이 얘기를 공유하려는 바위의 비장의 결단을 읽을 수 있다. 기꺼이 몸뚱일 갈라 뿌릴 내리게 하고 골수를 짜내어 영양보충을 시키는 바위와 소나무의 공존의 미학은 우리들에게 산상교훈일 것이다. 단단히 뿌릴 붙잡아준 채 골수 짜내어 주는 바위 덕에 소나무는 그나마 훼훼 휜 꼬부랑 일생이나마 생존함이라.
그렇게 휘고 굽은 못난(?) 몸매가 지금은 명품소나무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 소나무 없는 맹숭한 바위산을 누가 좋아할 손가? 우람하고 꼿꼿한 소나무가 아닌 삐뚤빼뚤 꼬부라진 소나무를 사람들은 공원이나 정원수로 모시는(?) 영광스런 세상이 된 게다. 바위와 소나무가 공생하는 아기자기한 계곡을 흐르는 물길을 동반하는 산길의 트레킹은 산 능선트레킹 못잖은 낭만을 선사한다.
바위와 돌멩이를 휘돌아 뛰어넘는 물소리는 고요한 골짝을 은밀하게 속삭이면서 우리들의 마음을 치유한다. 소나무가 뿜는 피톤치드를 호흡하며 물소리에 귀 기울이다보면 나(我)는 까마득히 잊혀 진다. 인왕산계곡, 북한산 계곡, 도봉산골짝, 관악산계곡은 산님들의 영육을 살찌우는 천혜의 산책숲길이다. 굳이 정상을 안 올라도 둘레길이 거미줄처럼 숲을 헤친다.
암송의 연애질이 질펀한 바위능선, 천태만상의 몸짓으로 어지럽기까지 한 트위스트`콘테스트 경연무대가 된 계곡, 골짝물가에 발가락 담그고 물소리에 취한 소나무들과 인사를 하는 산행은 열락의 순간이다. “솔바람 산골물이 속된 생각을 씻어준다(松風澗水洗塵襟)”는 구절이 정녕 내 마음을 읊었지 싶다. 솔잎사이를 지나는 바람소리와 울창한 송림을 빠져나가는 골짝물소리는 자연교향악으로 영감을 치유한다.
“소나무 푸르구나. 초목의 군자로다 (松兮靑兮 草木之君子)
눈서리 이겨내고 비 오고 이슬 내린다 해도 웃음을 숨긴다 (霜雪兮不腐 雨露兮不榮 不腐不榮兮)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변함이 없구나! 겨울, 여름 항상 푸르구나 (古冬夏靑靑! 靑兮松兮)
소나무에 달이 오르면 잎 사이로 금모래를 체질하고 바람불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月到兮節金, 風來兮鳴琴)”라고 사명당은 <청송사(靑松辭)>에서 예찬하고 있다.
사명당(四溟堂)이 예찬한 금수강산에서 태어나고, 그 명산을 무시로 찾아가 힐링하는 나는 행운아다. 세계 유수의 어느 나라 수도가 우리네 서울처럼 명산이 병풍처럼 휘둘고, 골짝을 도심으로 뻗쳐 허파노릇을 하는가! 국토의 70%가 산지인 나라에 소나무 울울창창하니 우린 모두가 복받은 셈이다. 인왕산 선바위골짝의 명품암송들 속에서 오후 한나절을 치유의 샘에 빠졌다. 2023.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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