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느낌~ 그 여적

금낭화에서 익스팅크투스를 생각하다

금낭화에서 익스팅크투스를 생각하다

금낭화

행주산성 봄나들이에 나섰다. 벚꽃이 떠난 자리에 연둣빛이파리가 움트고 살랑대는 봄바람에 부나비 된 꽃잎이 신작로를 하얗게 뒤덮은 4월의 싱그러운 주말은 상춘객들로 붐빈다. 2년여의 코로나19팬데믹에서 탈출하는 시민들로 교외산야는 엑서더스인파로 꼬리를 이었다. 통일로를 달리는 바이커들의 질주도 신바람이 나고~.

익스팅크루스

산촌 돌담울타리 사이로 삐죽 빠져나온 금낭화가 화사하기 그지없다. 비단 복주머니모양에 금빛꽃가루가 들어있다 하여 주머니 낭(囊)자를 써서 금낭화라 부른다. 아니 여인의 치마 속에 넣고 다니는 주머니 같대서 ‘며느리주머니’라고도, 또는 여인의 붉은 입술에 붙은 하얀 밥풀모양이라 ‘밥풀꽃’이라고도 한다.

‘며느리주머니’나 ‘밥풀꽃’이란 별명은 금낭화의 애달픈 꽃말사연에서 기인됐지 싶다. 옛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총각이 있었다. 나이 찬 총각이 드뎌 장가를 들었는데 살림살이가 가난하여 신랑은 아내와 어머님과 떨어져 뒷산 너머 마을로 머슴살이를 떠나야 했다. 아들을 며느리에게 뺏겼다고 삐진 어머니는 며느리시집살이를 고되게 시켰지만 착한 아내는 인내하며 극진히 시어머니를 봉양했다.

익스팅크루스의 꽃망울과 개화

그러던 어느 날은 밥을 지으며 뜸 들이느라 밥알 몇 알을 집어먹다 시어머니 눈에 띄었다. 시어머니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대뜸 어른보다 먼저 밥을 퍼먹는 불효녀라 호통 치면서 밀쳐 넘어뜨렸다. 그렇게 실신한 며느리는 온갖 구박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아들이 애통해 하며 아내를 마을 뒷산에 묻었는데 그 묘역에서 피어난 꽃이 빨간 입술에 하얀 밥풀이 묻혀있는 모양이라 하여 ‘며느리밥풀꽃’이라 했단다.

예쁜 금낭화의 애절한 꽃말의 사연이다. 초롱불처럼 줄줄이 매단 화사한 금낭화에도, 그 주위 갓길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민들레가 지천인데도 벌`나비는 안 보인다. 꽃들한테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다. 벌`나비 없는 꽃과 식물의 운명도 비극적일 것이다. 수분(受粉)이 안 돼 멸종(滅種)에 이르는 식물세계는 인류의 종언일 수도 있다. 얼마 전엔 지구상에서 사라져 ‘멸종’이란 학명이 붙은 꽃이 40여 년만에 발견되어 메스컴을 장식했다.

센티넬라능선의 폭포근처의 익스팅크투스

얼핏 금낭화 비슷한 꽃인데 남미 에콰도르 안데스산맥 서부 센티넬라능선의 폭포근처에서 ‘카스테란투스 익스팅크투스(Gasteranthus extinctus)란 꽃이 지난 15일 발견됐단다. 에콰도르정부가 울창한 숲을 마구잡이로 개간하여 농지로 만들면서 열대우림이 97% 이상 사라지면서 없어진 꽃이었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지상주의와 에너지 낭비 탓이다. 익스팅크투스가 살아남은 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장태의 숲이었다.

봄의 향기 물씬한 라일락

이 화사하고 따뜻한 봄날에 야생화들은 자연의 소중함을 통감케 한 시그널이다. 꽃 없는 무미건조한 세상을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나아가 수분의 매파인 벌`나비가 없는 세상의 종말은 에콰도르의 익스팅크루스를 연상케 한다. 꽃의 학명이기도 한 익스팅크루스는 멸종을 뜻한다. 코로나19도 지구온난화란 인간의 우매한 개발주의가 야기한 결과로 지구의 종말을 예상케 하는 현상일 수 있단다. 자연의 존귀함을 절감케 하는 리트머스시험의 날들이 코로나19였지 싶다. 자연은 인간의 손길을 사양한다.                2022. 04. 23

고비
도토리나무 새싹과 변이암(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