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와 버찌의 노스텔지어
6월이 태양의 계절 문을 열자마자, 울`가족이 부산에 여장을 풀자마자 해운대해수욕장이 개장됐다. 아침 일찍 달맞이 길 소요에 나섰다. 진초록벚나무가 아침햇살을 받아 싱그러운데 포도(鋪道)는 진보라 얼룩무늬수(繡)를 놓았다. 낙과한 버찌가 만든 봄날의 그림이다. 그런 그림은 뽕나무 밑은 더 진하고 난삽하다. 오디가 낙과하여 포도에 뭉개지며 그린 묵화(?)다. 그 묵화는 포도에서 직선을 이루기도 하는데 까닭은 비둘기들이 전선에 앉아 배설한 똥물자국인 것이다.
오디가 익는 이맘때는 비둘기들의 성찬(盛饌)파티가 열리는 계절이다. 자고로 없어서 못 먹는 오디는 도회지에선 매연과 먼지 그리고 방충제 살포로 사람들한텐 기피과일이 됐고, 가로수로 각광받는 벚나무버찌는 더더욱 외면 받는다. 재래시장엘 가면 오디를 파는 가게가 있는데 오염되지 않은 자연산일까? 하는 의구심 땜에 돌아서곤 한다. 내 어렸을 때 오디는 귀한 먹거리 중 최상품이었다. 집안이나 텃밭에 뽕나무가 있는 건 크나큰 기쁨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뽕나무아래로 쪼르르 달려가곤 했었고, 바람부는 날은 고개 떨어질 판이었다.
양잠이 성행하던 옛날, 뽕잎은 누에 먹이용으로 애용되고 오디는 맛있는 과일이었다. 어른들은 뽕잎만 상채기 내지 않으면 오디 따 먹는 걸 굳이 말리지 안했다. 당도가 높아 시큼 달콤한 오디를 한입 가득 넣고 씹는 맛이란 형언키 어려운 맛깔이었다. 오디를 따 먹다 손가락과 입가를 자주색칠 한 모습은 신나는 개구쟁이의 전형이었다. 갓길 오디나무 밑에 떨어진 오디로 포식하는 비둘기 떼를 보면서 내 어릴 때 오디서리의 흥분을 차환해 본다.
요즘은 야산에 산 벚나무가 많아 안산숲길을 트레킹하면서 씨알 작은 버찌를 따먹는데 시큼달콤한 맛은 오래도록 입안에 남아 즐거운 산행 맛을 배가시켜준다. 버찌는 씨알에 비해 과육이 적어선지 비둘기는 외면하는데 덩치가 더 작은 때까치가 따먹고 있어 의아했다. 때까지의 목구멍이 더 큰 걸까? 아님 비둘기떼거리의 위세에 밀려서 포도에 깔린 성찬에 낄 수가 없어서일까? 때까치는 낙과된 버찌를 주어먹기 보단 벚나무가지를 옮겨 다니며 잘 익을 걸 용케도 발견해 따먹고 있었다.
버찌와 오디도 며칠 지나면 사라질 테다. 비둘기나 때까치는 또 어떤 열매를 찾을까? 자연은 열매 하나도 허투루 버려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먹이가 아니면 씨앗으로 새싹을 움터 종(種)을 이어가고, 나머지는 식물의 영양소로 분해되어 자연을 풍성케 한다. 자연을 망가트리는 생명체는 오직 인간이지 싶은 거다. 자연의 혜택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자연을 사랑하는 일에 게으름피어선 안 되는 소이다. 오디 따 먹던 어릴적의 고향생각이 사무쳐왔다. 2022.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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