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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해운대 장지공원 원시 숲의 벚꽃

해운대 장지공원 원시 숲의 벚꽃

내가 해운대 장지근린공원을 알게 된 건 우연찮은 행운이었다. 작년 겨울 해운대에서 한 달간 머물 때 오피스텔 뒤창으로 빤히 보이는 장산 옥녀봉을 잇는 봉대산이 지척인 걸 알았다. 굳이 전철을 타고 장산역을 경유 시내를 20여 분간 에둘러 가야 하나 싶었다. 하여 봉대산 진입로를 찾다가 해운정사(海雲精舍)에 들어섰고 대웅전 뒤 사찰텃밭에서 나오는 스님을 만난 게 행운이었다.

어린이 학습장, 돌아오지 않는 어린이 대신 잡목과 낙엽만 무성했다

텃밭엔 곧장 장지근린공원으로 이어지는 산길들머리가 있었던 것이다. 높지 않은 허나 가파른 숲길을 오르면 봉대산줄기의 능선에 올라서는데 이윽고 높다란 철조망이 가로막아 당황케 한다. 그 철조망은 끝도 갓도 없는 군부대 울타리였다. 철조망으로 휘두른 자투리 야산이 해운정사와 해운대중`고등학교의 울타리 등으로 경계를 이뤄서 장지근린공원을 형성했단 걸 인터넷서핑으로 알았다.

사찰 뒤 텃밭에서 본 해운정사의 관음보궁
행운정사의 범종루

이름뿐인 장지공원은 안내 글도 들`날머리 길목도 없다. 공원산책길이 남북으로 길게 꼬불꼬불 이어진 셈인데 인적이 워낙 없어 옛 산길 그대로다. 하여 한 시간정도 숲길을 헤매도 마주치는 사람이 없어 적막한 원시 숲은 긴장감 속에 으스스하기까지 하다. 머리털 쭈빗 솟는 발길을 소스라치게 놀래 키는 건 느닷없이 숲에서 튀어나와 도망치는 고라니의 출현이다. 해운대도심 한 가운데 숲에 고라니가 서식하다니!

놈은 군부대 철조망과 도회의 담벼락 속에 갇힌 감옥(공원)살이 신세가 된 셈이라. 두 마리와 마주쳤는데 놈들은 어떻게 위리안치(?) 됐을가? 공원을 산책하다보면 나무새순이 무수히 잘려나간 걸 목도하게 된다. 특히 막대기를 꽂아놓은 듯한 팔손이의 처참한 몸꼴을 수없이 목격하는데 그 비밀은 고라니의 먹이 탓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가지와 팔뚝이 뭉텅뭉텅 잘린 팔손이의 수난사는 고라니의 겨울나기 희생의 증좌였다.

넝쿨식물 땜에 고사목이 됐을까? 고사목이 외로울까 봐 넝쿨식물이 붙박이 했을까?

고사목들 사이를 어지럽게 엉킨 넝쿨과 초록넝쿨식물로 몸뚱이를 휘감은 거목들이 자아내는 기이한 형상은 태곳적의 원시 숲 분위기를 상상케 한다. 더구나 오래전의 어린이들의 놀이동산 기구들이 숲 속에 방치돼 있고, 세월의 때를 덕지덕지 쌓은 앙증맞은 야외공연장은 옛날 공원에서 뛰놀던 누군가에게 아련한 기억의 파편들일 것이다. 그때의 소년소녀가 여길 찾아와 타임머신 열차를 타고 추억여행을 하는 기분을 상상해 봤다. 아니, 몇 사람이나 알아채고 찾아 올까?

옛 추억이 온전하게 숨 쉬는 장소에 잠시라도 머물 수가 있음은 복 받은 행운아다. 해운대빌딩 숲 속의 원시 숲 냄새가 물씬한 동산(공원)이 비밀스럽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아내와 나는 한 시간 반쯤 뭉그적대면서 옥녀봉을 잇는 등산로를 찾지 못하고 해운대고교 후문을 통해 시내로 들어섰다. 참으로 멋있고 옹골진 산책길의 장지공원이라. 

야외무대, 히어로도 관객도 오지 않는 야외무대는 세월의 때만 녹녹히 쌓였다
호랑이 발톱 같은 이파리라서 호랑가시나무라 부르는 남부해안에 자생하는 귀한 관상목

지금처럼 사람들의 관심이 적고 그래 찾는 이가 뜸했으면 좋겠단 엉큼한 생각을 해봤다. 탐방객이 많으면 고라니도 스트레스 땜에 생존이 위협받을 테고, 식생들도 온전할 수 없어 태곳적 분위기가 망가질 테다. 숲 속에서 발견 되는 고라니똥과 토끼똥 등은 그것만으로도 신비였다. 나를 피해 도망치다가 철조망에 막혀 뒤돌아보던 고라니의 겁먹은 눈망울이 선연하다. 도심 한 가운데에 원시림 같은 숲의 공원이 있다는 건 가히 천연기념물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거수 벚나무에게 꽃 한 다발을 피우기 위해 넝쿨식물은 겨우내 초록옷을 입혀 동사(凍死)를 면케 했을 터!

해운정사 홈페이지에 ‘장수산의 뒷모습은 거대한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고, 해운대에서 바라보는 앞모습은 새끼를 품고 있는 암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어 위대한 인물이 끊이지 않고 나올 터이며, 또한 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하고 앞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어 명당 중의 명당입니다.’라고 했다. 그 명당을 품어 안은 장지공원은 사라져가는 원시 숲을 이뤘다. 해운대에 머물 땐 꼭 찾아서 태곳적 분위기를 사랑하고 확인할 참이다.                        2022. 04. 08

공원서 조망한 해운대백사장의 마천루 숲, 왼편 끝에 LCT
해운대
▲사람때 묻지않은 원시 숲을 산책하며 나를 몽땅 내려놓은 채 숲의 정령들을 체감한다는 전율은 자연의 힐링을 절감케 한다▼
▲장산공원쪽 시가지가 가물가물하다▼
▲동백, 후박, 사슬레 피, 팔손이, 대나무, 소나무, 잣, 회양목, 쥐똥나무, 호랑가시 등의 상록수림이 한껏 태곳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팔손이의 수난사, 고라니는 겨울나기 먹이로 팔손이 잎을 택하여 그 많은 팔손이는 모가지와 팔목이 잘라나갔다
▲초록치마를 휘두른 거목들은 하얀꽃다발을 흔들며 창공의 봄 햇살을 탐한다▼
팔손이 잎으 닮은 호랑가시 잎이 무성한 건 가시 땜이라 개체수가 적어도 멸종되지 않은 채 크리스마스 트리로 각광을 받는다
군부대철조망, 불청객인 나를 피하려 도망치다 철조망가시에 털 한 웅큼을 찍혀버렸다. 사진 한 컷 욕심 낸 내가 죽일 놈?
해운대란 도회 숲에 갇혀버린 장지공원은 위리안치(?) 된 고라니의 신락원이 아니기를 염원해 본다
뜬금없이 나타난 초지언덕엔 나물거리 몇 가지도 자생하고 있었는데 벌써 채집꾼의 손길에 상처투성이가 됐다
해운정사 다보탑과 관음보궁 앞에서의 짝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