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눈꽃 핀 경희궁(慶熙宮)
임인(壬寅)년 설은 간밤부터 내린 눈발로 하얀 설국 속에 여명을 텄다. 한 때는 호랑이의 아지트이기도 했던 경희궁이 검은 호랑이를 돋보이게 하려 밤새워 설국을 만듦인가! 모든 형체는 하얗게 소복한 채 설화만방 했다. 아직 여명 전이라 흩뿌리는 눈발 속에서 흑호(黑虎)가 궁궐 숲에서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어떤 발자국도 없는 설화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싱그러움과 두려움은 경외심을 일깨운다.
현판 글씨 ‘興化門’의 광채가 밤에도 주위를 훤히 비춘다 해서 야주개대궐(夜照峴大闕)’이라고도 하는 경희궁을 들어선다. 눈꽃단장으로 한껏 뽐내는 눈 나무사이로 하얀 보자기를 뒤집어쓴 궁궐마당이 펼쳐지고, 흰 보자기 끝에 매단 궁전이 수려한 자수화(刺繡畵)마냥 신비롭다. 드넓은 아얀 보자기에 최초의 발자국을 남긴다는 두려움은 야릇한 환희 앞에 사라진다. 숭전문(崇政門))을 들어선다. 숭전전을 향하는 어도(御道)는 사라지고 시늉뿐인 품계석이 그나마 어전임을 인도한다.
경희궁은 조선후기 왕의 피우(避寓)를 위한 이궁(離宮)으로 1617년(광해군9)에 흉궁(凶宮)이라고 꺼린 창덕궁 서쪽에 창건한 인경궁(仁慶宮)을 경덕궁이라 부르다가 영조 때 경희궁으로 개명했다. 광해는 경희궁을 세우고 편하게 누워보지도 못하고 인조반정의 빌미가 돼 쫓겨난다. 광해를 쫓아낸 인조도 엉덩이 붙인 새도 없이 이 괄(李适)의 난에 도망갔다. 인조의 반정공신에 삐진 이 괄이 1624년 3월11일 조선최정예군1만2천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파죽지세로 한양으로 처들어오고 있어서였다.
3월29일 한양에 입성한 이 괄은 기세 등등한 채 경복궁과 창덕궁을 불태우고 경희궁을 아지트 삼아 도성 건너편 안산(鞍山)에 진을 친 정부군 도원수 장만과 대치한다. 쪼잔한 왕 인조 탓에 수난과 질곡에 빠진 백성들은 도성안팍에서 이 괄의 반란군을 응원했다. 이 괄의 '하루천하'는 창덕궁과 경복궁도 불태워버렸다. 인조는 경복`창덕궁궐 복원을 위해 경희궁전각을 헐어 썼는데 광해가 세운 궁궐이어서 더욱 더 그랬지싶다. 허수아비왕 인조 탓에 죽어난 건 백성이었다. 우리들이 3월에 뽑는 대통령도 허수아비를 선택하는 우를 범해선 안될 텐데~?
영조는 재위 중 19년간 경희궁에 머무르며 '창덕궁엔 금까마귀가 빛나고 경희궁에선 옥토끼가 밝다'는 어필을 남겼을 만큼 경희궁을 사랑했다. 그런 영조가 사도세자의 비밀을 금언(禁言)시켰는데 정조가 1770년에 즉위하면서 그 일을 힐난하듯이 절규한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정조의 한 서린 절규가 숭정전처마끝 눈발을 흩날린다. 영조는 정조의 절규가 궁궐에서 맥놀림 하는 소릴 듣고 있을까? 숭정전 회랑의 빨강열주가 흔들리는 것 같다.
정조와 헌종이 숭정문(崇政門)에서 즉위하였고, 숙종이 회상전(會祥殿)에서 태어나 융복전(隆福殿)에서 승하했으며 영조도 경희궁서 승하했다. 광해가 1617년에 착공 1620년에 완성했을 때의 정전과 동궁 등의 전각이 1,500칸에 달했다. 그런 전각들이 1907년 일본 통감부 중학이 들어서면서 일제에 의해 궁궐은 파손되어 갔다. 숭정전은 1926년 일본사찰이었던 대화정 조계사(大和町 曹溪寺)로 옮겨 해방 후 동국대학교의 법당'정각원'으로 사용된다.
홍화문 역시 일본 사찰인 박문사로 옮겨저 산문으로 활용되다 그 자리에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정문이 되었다가 1988년 경희궁 복원 작업이 시작되면서 경희궁으로 다시 돌아온다. 경희궁은 그렇게 철저히 훼손되고 멸실되는 비극적인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지금도 복원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하다. 무릇 궁궐도 허수아비왕들의 실정 탓에 비극의 수난을 당하곤 한다. 오는 3월에 우리 앞에 나타날 대통령도 한쪽에 경도되지 않은 현명한 분이길 염원한다. 2022.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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