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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경복궁 & 창경궁의 설경 1

1) 경복궁의 설경

겨울은 신비하고 변덕스런 여인 같다. 소복단장한 단아한 순결미는 고고하기 이를 데 없어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조심스럽다. 숨소리만 가까이 해도 원형의 미가 훼손된다. 한낮에 쏟아지는 함박눈은 서울을 하얀 면사포를 씌우고 헤아릴 수 없을 꽃들로 치장을 했다. 엄동설한에 숨죽이며 눈 내리기를 고대하는 낭만족들은 축복이라도 받는 듯 눈밭으로 달려간다. 눈꽃 매니아들은 경복궁에 언제부터 모여들었는지 함박눈을 영접하느라 오두방정이다.

근정문은 왕의 즉위식이 열린 곳으로 국왕만이 사용할 수 있는 궁궐이었다. 세자도 즉위식 후 신하들을 대동하고 근정문에서 근정전으로 이동해 용상으로 올랐다

눈꽃 치렁치렁 매단 나목들 사이로 소복한 경복궁의 전각들이 신기루처럼 다가선다. 하얀 고궁의 아름다움과 멋은 사계절 중 함박눈 내리는 날이 최상일 것 같다. 그래 곱디고운 한복차림의 여인들이 함박눈과 허니문을 즐기느라 영하의 날씨를 잊나 싶고. 검정박석이 흰 이불을 덮어 눈부시고, 화마시름 덜은 근정전이 세발 달린 청동 정과 드므에도 눈을 소복이 담아 축배를 드나 싶다. 어찌 눈 내리는 겨울을 학수고대하지 않겠나!

향원정과 민속박물관(뒤)
홍례문(弘禮門).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은 1395년(태조4)에 건축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되고, 1867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이 중건했다.
▲국립고궁박물관▼
근정전과 회랑
근정전마당의 검은 색의 박석이 하얀 이불을 덮어 한결 멋있다. 울통불통한 박석을 깐 건 신하들이 고개를 숙이고 조심히 걸으라는 의미가 있다. 근정전 마당에는 관리들의 계급을 나타내는 24개의 품계(品階)석이 좌우로 있다. 품(品)은 1품부터 9품까지 정(正)과 종(從)으로 나눠진다.
반정세력에 떠밀려 왕이 된 인조의 논공행상에 뿔따구가 난 반정군 선봉장 이 괄(李适)은 난을 일으켜 근정전용상에 올라 '하루천하'를 했다. 서핵관(서인들의 핵심세력)의 등에 업혀 왕이 된 핫바지 인조는 ㅈ 빠지게 도망갔다 돌아와서 다시 정묘`병자호란에 도망다니기 바빳다. 무능한 왕은 백성들만 사지로 몰아넣고 국토를 황폐화시켰다. 오늘 날 우리가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역사적교훈이다.
사정전(思政殿)은 임금이 평상시에 거처하는 전각.
강녕전(康寧殿) ; 왕의 침전(寢殿)으로 정도전(鄭道傳)이 작명했다. 강녕은 오복(五福)의 하나이다. 1395년(태조4)에 창건되어 임난때 소실된 걸 1865년 경복궁 중건 때 재건했다
경성전( 慶成殿) ; 1395년 경복궁 창건 때 임금의 침전으로 건립됐다.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이 연침(延寢)이었고 경성전은 서소침(西小寢)이다
교태전 서쪽에 근정전지붕이 보인다
교태전(交泰殿)은 왕비의 침전으로궁궐 안 150여 채의 건물 중 젤 화려하다. 뒤뜰에 있는 아미산(峨嵋山)굴뚝 화단엔 아름다운 꽃무늬를 새긴 굴뚝이 있다
아미산(峨嵋山)굴뚝 ;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의 온돌연기가 나가는 굴뚝. 동식물의 무늬를 그려넣은 육각형의 굴뚝 4개는 고종4년(1867)에 세운 것이다
▲아미산굴뚝과 화계단은 교태전 뒤뜰의 휴식공간으로 왕비를 비롯한 궁중여인들의 산책코스이기도 했다▼
▲자경전십장생(慈慶殿十長生)굴뚝 ; 자경전의 뒷담 한 면을 화계로 만들고 거기 굴뚝에 십장생을 새겨 넣었다. 조선시대 궁궐 굴뚝 중 가장 아름답다(보물 제810호)▼
단청 처마선의 교차가 넘 멋지다
우물
경회루(慶會樓) ; 근정전 서편에 위치한 누각, 왕이 신하들과 연회를 베풀거나 사신을 접대하는 국가행사 건물, 가뭄이 들면 기우제도 지냈다
경회루 앞 마당과 연지
▲경회루2층전각▼
경회루의 바깥 돌기둥은 네모나고 안쪽 돌기둥은 둥근데 이는 땅은 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天圜地方)사상을 나타낸다. 전체기둥은 총48개로 바깥기둥24개 안쪽기둥이 24개로 이는 24개절과 24방을 의미한다
▲경회루 뒷마당과 연지▼
채만식의 소설 '미스터 방'의 등장인물인 방삼복이 해방정국에 미군장교 S소위를 서울 저잣거리를 안내하면서 경회루에 와서 짧은 어글리영어로 소개하기를 "킹 듀링크 와인 앤드 댄스 앤드 싱, 위드 댄서"라 지껄인다. "임금이 기생 끼고 춤추고 노래부르며 술먹고 놀았던 곳"이라고.
태조4년(1395) 경복궁 창건 때 연못을 파고 누각을 세웠으나 습한 지대로 건물이 기울자 태종12년(1412) 연못을 대규모로 준설해 동서128m, 남북 113m에 달하는 방지(方池)를 조성했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 박자청이 8개월 만에 경회루를 완공했다
네모난 인공연못과 둥근모양의 섬2개는 천원지방을 형상화 한 것임
연산군이 '흥청'이라는 기생들을 모아놓고 경회루에서 술잔치를 곧잘 벌렸는데 '흥청망청'이란 말의 유래가 됐다.
▲경회루 뒤 이승만대통령이 지은 정자 하향정(좌)▼
화재예방용으로 연못에 청동용 2마리를 넣었다고 기록됐는데 1997년 연못공사를 위해 연못 물을 뺐을 때 1마리가 발견되어 박물관에 전시됐다
여러곳에서 샘물이 솟아 물이 썩지 않으며 배수시설도 잘 되어 호우에도 물이 범람하지 않는다
금천의 소나무숲
경회루 연못주변에 담장을 둘러서 일반인들이 바라보지 못하게 했으나 일제가 훼손했다. 문화재청에서 2000년대에 북쪽과 동쪽담장을 복원했으나 서쪽과 남쪽담장은 관람객들의 관람편이 문제로 복원하지 않았다.
▲경회루 뒷 담장의 필관문은 이승만대통령의 별장 하향정과 통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옆의 금천에서 바라본 북악산▼
▲국립민속박물관 ; 고유한 민속자료를 수집보존 전시 내지 조사 연구를 위해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박물관이다. 박물관건물 터는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어진들을 봉안한 선원전, 그리고 경안당, 정훈당, 대향당 등 전각들이 있었던 곳으로 2030년까지 철거한단다.▼
웅장한 고궁박물관은 불원간 철거예정이란다, 오늘 같이 추운 날 박물관에 잠시 들려 어슬렁대며 추위를 피하는 휴식처로도 최상인데~!
혼례식
선비의 사랑방
꽃상여
불천위 제례상차림
민속박물관은 허우대는 독특하고 위엄이 있어 보이나 경복궁 복원공사로 불원간 철거예정이란다. 아까운데 말이다
제수합
양반가
연좌방앗간
농촌초가집
사당
제주 하루방과 석물들
향원정(香遠亭) ; 2층규모의 익공식(翼工式) 기와지붕으로, 정육각형 누각에 장대석(長臺石) 단을 모아 육모 돌기둥을 세웠다. 2층을 통나무 기둥으로 세우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4분합(四分閤)을, 공포는 내외일출목(內外一出目), 일출목의 행공첨차에 소로[小累]를 두었고, 외목도리(外目道里) 밑에 장설(長舌)을 받쳤다. 처마는 겹처마다
향원정은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연꽃을 사랑하는 논설) 가운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香遠益淸)라는 구절을 차용한 이름이다. 세조 때 경복궁 후원에 지은 정자가 취로정인데 향원정의 모태가 됐단다 (세조실록)
취향교는 고종과 명성황후가 건청궁에서 연못 가운데 향원정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정자 북쪽에 세운 다리다.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뒤 작년에 복원 공사를 했다. 정자내부 가장자리만 덥히는 도넛 모양의 온돌이 놓였었다.
건청궁 뒤로 북악산이 다가선다

 건청궁(乾淸宮)은 ‘하늘이 맑다’는 의미로 고종이 부친 흥선 대원군의 간섭에서 벗어나 친정을 표명하며 고종과 명성황후의 거처로 사용하면서 외교관 접대의 장소로 활용한 궁이다. 장안당(長安堂), 곤녕합(坤寧閤), 복수당(福綏堂), 서재 관문각이 있다. 1887년 1~3월중에 우리나라 최초로 전기가 가설 불을 밝힌 장소였다. 에디슨 램프사의 총지배인 프란시스 업튼이 1887년 4월 18일 사장 에디슨에게 보낸 업무연락서엔 건청궁의 전등시설은 에디슨제품의 동양판촉을 위한 시범케이스 였다면서 동양에서는 유일한 시설이라고 보고했다. 중국이나 일본보다 2년 앞선 쾌거였다.

장안당(長安堂)은 왕의 거처다. 장안당 현판 오른쪽 상단의 어필(御筆)은 고종. 고종은 여기서 미국, 영국, 러시아 등의 공사를 접견하면서 정치적인 현안을 처리했다.
곤녕합(坤寧閤)은 왕비의 거처로 장안당의 동편에 있다. 곤녕합에 딸린 남쪽 누각 옥호루는 옥 호리병을 뜻한다. 옥호빙(玉壺氷.옥병 안의 얼음)의 줄인 말인데 깨끗한 마음을 표현 한 말이다. 1895년(고종32년) 음력 8월20일(양력 10월8일) 일본인에 의해 명성황후는 시해 당한다. 45세의 짧고 한 많은 비극의 사건 - 을미사변(乙未事變)이다. 곤녕합은 1909년경 일제에 의해 완전히 헐렸다.
청일전쟁(1895년2월)에 승리한 일본의 침략야욕에 대항키 위해 왕실은 러시아와 협력 일본을 국내에서 철수시키려 했다. 이에 분통이 난 일본은 10월8일 새벽에 일본장교가 불량배들을 끌고 건청궁에 침입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왕비의 시신은 건청궁 동쪽 언덕 녹산자락에서 불태워 매장했다. 후에 왕실에선 유골을 수거하여 경운궁에 안치하는 국장을 치뤘다
명성황후가 일본폭도에 시해당한 후 시신을 불태운 건청궁 동쪽 녹산자락이 이 솔밭 뒤가 아닐까? 아래 계단은 자선단 기단과 주춧돌을 모아놓은 곳이다. 자선당은 세자와 세자빈의 처소인데 일제때 헐어 일본에 세워 '조선관'이란 간판을 달고 미술관으로 사용하다 관동대지진 때 완전 파손 됐다. 그  폐허에서 기자재를 수거하여 들여와 미복원상태로 놔둔 곳이다
집옥재(集玉齋) ; 1888년 고종이 창덕궁에서 거처를 옮기면 이전했다. 정면의 월대(月臺) 중앙계단에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서수상(瑞獸像)을 새겼다. 고종은 이곳에 선대 어진(御眞)을 봉안하고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는 장소로도 이용하였다. 중국풍의 최신 서양식 건물이다
집옥재 왼쪽에 팔우정, 오른쪽에 협길당이다. 원래는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으나 고종이 여기로 이전했다
▲장고(醬庫) ; 궁중 연회나 제례‧수라상에 쓰이던 장(醬)을 보관하던 곳. 장꼬마마(醬庫媽媽)라 불리던 주방상궁이 장독대 옆에 있는 집에서 간장을 관리했다. 장고는 2005년에 복원되어 전국에서 수집해온 장독들이 있다. ▼
▲장고담장의 산수유가 빨간 눈꽃을 피워 환장하게 이쁜 설경을 이뤘다▼
태원정 담장 너머의 북악산
경회루에서 본 인왕산. 치마바위가 보인다
경회루솔밭
경회루 옆 금천의 송림
신무문, 뒤로 청와대정문과 위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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