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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달맞이 길'의 벚꽃퍼레이드

'달맞이 길'의 벚꽃퍼레이드

사모곡(思母曲)

“어머니는 죽어서 달이 되었다

바람에게도 가지 않고/ 길 밖에도 가지 않고

어머니는 달이 되어/ 나와 함께 긴 밤을 같이 걸었다”                -김태준-

3개월 여만에 다시 해운대에 자릴 폈다.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아니라도 해운대의 바닷바람은 드세다. 오피스텔에 여장을 풀면서도 나는 아내에게 후딱 문텐로드(달맞이 길)로 가자고 보챘다. 시가지를 달리는 차창으로 벚꽃비가 마구 흩뿌리고 있어서였다. 바닷바람은 화사하게 단장하는 벚꽃터널을 앙칼지게 흔들어대고 있었다.  

 해운대백사장은 모처럼 한산한가 싶다. 따스한 봄날의 백사장은 해풍을 타고 온 파도가 숨차게 달려와 몸을 푸느라 뒤척이며 푸~우 푸~, 개거품을 토하는데 정작 환영인파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다. 살판 난 놈은 갈매기떼인가. 놈들은 밀려온 파도에 발이 적시면 비상할 수 없다는 듯 폴짝폴짝 장난질이 한창이다. 누군가가 '갈매기에 먹이를 주지 마세요' 라고 쓰인 팻발을 해운대백사장에 세워놨다.    

해운대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lct

달맞이 길에 늘어선 아름들이 벚꽃나무들은 하얀 꽃구름으로 하늘을 뒤덮고 벚꽃터널을 만들었다. 근디 때아닌 꽃비가 내린다. 막 갓 피운 벚꽃은 활짝 웃자마자 시샘하는 바닷바람에 볼때기 하나씩을 떼어주면서 달래주나 싶다. 바람이 더 앙칼지고 더는 비바람까지 몰고오면 1년 내내 꿈꿔 온 벚꽃세상은 아수라장이 될 테니 말이다.  

해풍이 싸아 하다. 상춘객들이 백사장 방풍림속에서 봄날처럼 나른해 졌다. 아내와 나는 서둘러 달맞이 고개를 향했다. 부산의 벚꽃축제는 '달맞이 길'이 으뜸이란데 부산을 여러차례 들락대면서도 정작 절정의 벚꽃터널을 놓쳐 아쉬움만 삼켜야 했었다. 와우산 중턱을 뚫는 달맞이 길에 들어서자 바야흐로 벚꽃은 흐드러졌다. 아~! 멋~져! 

해풍 탓일까? 벚꽃은 만개하여 꽃구름을 이뤘는데 짐짓 벌`나비는 안 보인다. 연인과의 해후를 고대하며 한 해를 잉태해 왔는데 벌`나비는 안 나타나고 쓸데 없는 사람들만 난장을 벌리니 이 무슨 변고인고? 연인이 와야 수분을 하고 씨를 맺을 텐데 훼방꾼만 득세하니 바람이 아니라도 성깔 나서 꽃잎을 떨구어버리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인간은 못된(?) 동물인가. 

한국양봉협회는 3월 초를 기준하여 전국의 양봉농가에서 사라진 월동벌은 78억 마리 이상일 거라고 한다. 원인은 '지난해 발생한 꿀벌응애류, 말벌류에 의한 폐사와 이상기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상기상은 인간이 야기시킨 지구온난화가 주범일 것이다. 우리들이 편리한 생활을 위해 쓴 무의식적인 자원낭비의 해독이리라.

5월20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벌의 날’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식량작물 4종 중 3종은 벌`나비와 조류에 의한 꽃가루 매개에 의존하여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벌은 우리의 식량 안보와 영양, 그리고 환경정화에 중요하다. 기후변화로 꿀벌이 실종되는 환경에서는 인간도 잘 살기 어렵다. 벌 실종은 지구상의 먹거리 종말로 연결되어 인간은 3년도 버틸 수가 없다고 일찍이 아인슈타인도 갈파했었다.

와우산 허리 깨를 휘도는 달맞이 길 중간쯤에 해월정(海月亭)이 있고 그 아래 해변마을이 청사포다. 고기잡이 떠난 서방님을 기다리다 죽은 아내의 혼이 깃든 망부송(望夫松)이 마을어귀에 있다. 그 300살 넘은 소나무를 해월정에 올라서서 벚꽃 사이로 가늠해 봤다. 애인 벌`나비를 기다리는 벚꽃들의 춤사위가 애잔하다. 기다림의 속 태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얀 등대와 빨간 등대가 청사포구에 연인처럼 마주보고 있다.

신라시대의 해운(海雲)최치원 선생이 경주남산을 출발하여 가야산 해인사엘 가던 길에 여기 와우산 비탈길을 밟았다. 그 땐 아마 벚꽃 대신 동백이 길섶에 각혈하듯 빨간 꽃봉오릴 떨구었을 것이다. 그런 빼어난 경관에 반한 선생은 달맞이 길을 어슬렁대다 동백섬에서 잠시 머문다는 게 그만 멍석을 깔고 가부좌를 틀었다. 글고는 자연석대에 누각을 지어 소요자방(逍遙自放)했다.   

벚꽃이 흐드러지지 않아도 달맞이 길은 사시사철 울창한 난대림으로 우거진 매력적인 산책길이다. 지금은 바로 아래에 미포항에서 구덕포와 송정까지 이어지는 해운대삼포를 잇는 블루라인 캡슐과 해안열차가 달리고 있어 관광명소가 됐다. 강과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살기 좋은 곳을 삼포지향(三抱之鄕)이라 하는데 해운대사람들이 애향심을 말할 때 즐겨 쓰는 말이다. 어쩌다 애들이 오피스텔을 마련해 심심하면 해운대풍광을 즐기면서 해운대사람 시늉을 하는 울`부부다.              2002. 04. 05

해월정
해운대해수욕장. 우측에 웨스턴조선호텔과 동백섬이 보인다
해운대백사장의 모래조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