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백운대(白雲臺)에서
햇살은 이미 입춘(立春)문지방을 넘었는데 산천은 아직도 동면(冬眠)중인가 싶다. 꽁꽁 얼어붙은 우이동천의 빙하 아래 물길소리가 꿈결의 자장가마냥 가냘프다. 얼음을 녹여내는 자장가에 귀기우리며 도선사 우회탐방로에 들어섰다. 10시였다. 바람결은 차가운데 등적삼은 땀이 베인다. 영봉(靈峰)이 나지들 사이로 숨바꼭질을 한다. 몇 해만에 오르는 백운대산행인가!
도선사갈림길에서 하루재 오르는 등로는 돌계단 밟는 행선의 맛도 심심찮다. 거기까지-. 하루재서 파고드는 인수봉골짝은 빙결(氷結)의 돌길이라 신경 곧추서야 하는 고행길이 됐다. 거대한 하얀 바위 돔이 앞을 막아서는 통에 인수암자에서 배낭을 풀었다. 인수(仁壽)는 ‘어진 이가 오래 산다’는 뜻이며, 인수봉은 해발810m의 돌출한 남성의 성기를 닮은 ‘불두덩’에 기원함이라고, 시인 장호(章湖)는 <한국의 명산기>에서 밝혔다.
또한 신라 때부터 부아악(負兒岳)으로 불러왔다는데 참으로 묘하게 생겼다. 응달골짝은 얼음계곡이라 파고들수록 조마조마한데 돌`바위길이라 아이젠을 꺼낼까말까 번민한다. 용암문(龍岩門)에 올라섰다. 산성에 갇혀 배회하던 바람이 승냥이처럼 몰려들어 몸 가누기도 버겁다. 백운대를 향하는 본격 바위등걸타기 곡예길에 들었다. 쇠밧줄은 백운대가 포시(布施)한 생명 줄이다.
생명줄에 의지하여 거대한 바위돔을 오르는 백운대등정의 매력은 북한산만이 베푸는 시혜(施惠)다.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 원효봉, 염초봉, 영봉 등 웅장하게 솟구친 암봉 능선이 파도치는 산록 사이로 우이계곡, 북한산성계곡, 정릉계곡, 구천계곡, 소귀천계곡 등 수십 개의 골짝을 만들었다. 그 골짝에서 솟아 흐르는 청정수는 30여 개의 사찰과 100여 개의 암자를 일궈 연평균 500만 명의 역사문화탐방객을 맞이한다.
그래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 북한산은 거대 도시 서울의 허파다. 하여 살얼음 낀 빙벽을 기꺼이 오르는 산님들의 도전정신을 헤아릴 만하다. 태극기 휘날리는 백운대에서 포효하고 인증샷 하는 고행의 환희를 공유하는 얼굴은 생불(生佛)이다. 석가모니의 일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이 또렷히 공감되는 우듬지다.
북한산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 동명성왕의 아들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에 새나라(백제)를 세우려고 한강에 도착 북쪽 한산(漢山)부아악에 올라 도읍할 만한 땅을 찾은 곳이 바로 이 산[삼각산(三角山)]이다."라고 하였다. 한산은 큰 산이라는 뜻이다. 조선개국 때 무학대사가 수도 후보지를 찾아 순례할 때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궁성터(경복궁)를 정하였던 곳도 이 삼각산 이었다.
그런 역사적인 유적지인 백운대에 일제(日帝)는 1927년 쇠난간을 설치하고 철심을 박아 민족정기를 훼손하여 해방 후 1980년에 모두 철거됐다. 백운대정상에서, 태극기 휘날리는 해빙의 바위 돔에서 나는 지퍼를 열고 봄의 서기(瑞氣)를 안았다. 저만치서 삼각산이 다가선다. 친명배청(親明排淸)사상의 명신(名臣)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병자호란 때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면서 삼각산을 읊은 시(詩)가 문득 떠오른다.
“가노라 三角山(삼각산)아 다시 보자 漢江水(한강수)야
故國山川(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時節(시절)이 하 殊常(수상)하니 올동말동하예라.”
71세의 김상헌은 주전(主戰)소신을 굽히지 않은 탓에 얼마나 많은 군졸과 백성이 죽고,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노예가 됐으며, 국토가 초토화 됐던가. 무릇 정치란 특히나 국제관계는 강경주전파들이 득세하면 비극으로 종결되기 십상이다. 오늘날도 멸공(滅共)과 주적(主敵)선제타격(先制打擊)을 주장하는 보수꼴통이 자랑스런 신념이란듯 뇌까린다. ‘공산당을 멸망시키자‘는 폭언을 중국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심히 우려스럽다. 병자호란의 주전파 김상헌이 오버랩 된다. 제1야당의 대통령후보가 할 말은 아니다.
2022. 0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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