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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동백섬과 간비오 산자락의 원시림 숲길

동백섬과 간비오 산자락의 원시림 숲길

동백섬 위의 노을빛이 해운대를 붉게 물들인다

우리나라의 중추뼈대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치닫다 동`남해바다에 이르러 장산(萇山)으로 마침표를 찍으며 간비오 산릉에서 큰 바위 하나를 밀쳐내니 동백섬이다. 태초에 동백섬엔 하늘에서 떨어진 금상자가 있었는데 상자에 황금알이 있었다. 그 황금알에서 어린애가 태어나 어른이 되어 왕위에 올라 나라이름을 ‘무궁’이라 지었다. 왕은 하늘의 은혜를 입었다해서 ‘은혜왕’이라 불렀다. 허나 ‘무궁나라’의 은혜왕은 홀아비였다. 

해운대석각에서 본 해운대 마천루숲

바다건너 인어국인 ‘나란다 왕국’에 공주가 태어나자 이웃 ‘수정나라’ 대왕대비는 공주이름을 '황옥(黃玉)'이라 지었다. 황옥공주의 부왕과 왕비는 어느 날 꿈속에 신령이 나타나 공주를 바다건너 무궁나라의 은혜왕과 결혼을 시키라는 선몽을 꿨다. 하여 은혜왕과 황옥공주는 결혼하여 무궁나라를 반석에 앉히니 섬은 온통 동백꽃이 만발하여 무궁나라를 동백섬이라고도 불렀다.

황옥공주. 황금옥을 들고 있다

세월이 흘러 황옥왕비가 친정 나란다왕국이 그리워져 어느 보름날 밝은 달빛 속에서 친정할머니가 준 황옥구슬을 꺼내보자 거기에 고국의 아름다운 달밤이 나타나 화들짝 놀라면서 그리움의 눈물을 흘렀다. 그래 황옥왕비는 매달 보름달이 뜨면 황옥을 꺼내 그리움을 달래다가 옛날의 인어공주로 변신 바닷 속을 헤엄치기도 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동백섬 앞바다에 인어가 노닌다, 라고 입소문 내어 오늘 날까지 회자되는 전설이 됐다. 그 황옥공주 인어상이 동백섬바닷가에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동백섬정자에서 조망한 등대. 좌측에 '해운대석각' 조망대가 보인다

황옥공주인어상에서 흔들다리를 건너 해안절벽을 거닐다보면 등대가 나타나고, 등대 밑에는 ‘해운대석각’이 있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벼슬자릴 박차고 주유천하하며 가야산 해인사를 찾아가다 이곳에서 망중한에 들었다. 자연경관이 하도 아름다워 바위[臺]에 올라서서 바다와 하늘 사이를 흐르면서 천해(天海)의 매신저를 전하는 구름에 자신을 싣고 달빛과 동백꽃에 취했다. 심취한 고운은 암석에 '해운대(海雲臺)'란 세 글자를 음각하니 지금의 지명(地名)이다. 해운(海雲)은 고운의 또 다른 호다.

'海雲臺' 라고 음각된 바위, 풍우와 파도에 마모된 글씨는 보호할 묘책 찾기에 고심하고 있단다 

해운대석각 위 등대누리마루에 서면 동백섬을 형상화한 멋들어진 APEC건물이 파도를 안으며 한 폭의 그림이 됐다. 2005년 제2차 APEC정상회의 개최장소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숨결이 베어든 곳이다. 정원 송림 사이를 거닐면서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좇다보면 마린시티 마천루 숲은 바다 속에 데칼코마니를 이뤄 무궁나라의 최첨단을 목도하게 된다. 더 베이101선착장과 웨스턴조선호텔을 끼고도는 동백섬 환 종주 길은 동백섬전망대에서 정상을 향하는 된비알돌계단으로 이어진다.

동백섬을 형상화한 APEC의 지붕의 야경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동백, 사스레피, 후박, 팔손이 등의 사철나무숲 터널을 오르면 동백섬 허리깨를 휘도는 또 다른 환 종주 숲길과 교차한다. 이 6부능선 상록 숲길은 인적이 없고, 하늘도 가려버린 울창한 상록터널을 만들어 태곳적분위기가 물씬 난다. 짙푸른 관목숲속에서 우람하게 솟은 소나무들의 위용은 내 상상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싶다. 바위섬에 어떻게 저렇게 무지막지한 거송들이 도대체 몇 백 년을 버텨옴인가! 놈들은 최치원을 봤을까?

동백섬정상을 오르는 된비알 자연석계단. 중간쯤 오르면 허리깨를 환종주하는 숲길이 있는데 입소문 나지않아 인적이 뜸하다

오만 생각 하면서 한량 걸음으로 한 바퀴 돌면 반시간은 훌쩍 흐른다. 울`부부는 이 원시의 숲길을 산책하는 맛에 해운대를, 동백섬을 더더욱 사랑한다. 다시 된비알 돌계단을 오르면 정상이다. 넓은 산정엔 최치원동상과 비석, 해운정이 있어 동백섬과 고운의 끈끈한 인연을 실증한다. 시비에 음각된 고운의 시 <춘효(春曉)>가 발길을 잡는다.

고운 최치원의 동상, 우측은 해운정, 시비는 동상 뒤 좌측에 있다. 전에는 키큰 히말리아시다가 울타리마냥 휘둘렀는데 모두 사라졌다

叵耐東流水不廻 흘러가는 저 물은 돌아 못 오고

只催詩景腦人來 봄빛만 사람을 괴롭피누나

含情朝雨細復細 애틋한 아침 비 부슬거리고

弄艶好花開未開 꽃들은 피고 맺고 저리 곱구나

亂世風光無主者 난리 때라 좋은 경치 주인이 없고

浮生名利轉悠哉 뜬세상 명리도 쓸데없는 것

思量可恨劉伶婦 아내는 원망스레 소매 붙들고

强勤夫郞疎酒盃 구태여 이 술잔 자주 못 들게 하나

고운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에 유학, 18세에 과거합격 하여 관직에 올라「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등을 써 명성을 날리다 17년 만에 귀국했다. 42세 때 진성여왕(眞聖女王)에게 시무(時務)십조를 상신했으나 진골귀족들의 반대로 뜻을 접고 방랑길에 올랐던 참이다. 바위에 아호(雅號)나 시문(詩文)을 음각하는 석각문화는 고운이 효시였지 싶다. 이에 앞서 몇 년 전 최치원은 진성여왕을 수행하여 해운포엘 왔었다.

천여 년동안 유명세를 유지하고 있는 해운대온천

외방의 호족(豪族)들이 삐딱하게 굴자 진성왕은 그들을 무마하기 위해 군사를 대동 수영강하구의 수군과 간비오산 봉수대의 군사들을 위무한다는 핑계를 댄 행차였다. 더는 몸이 허약한 진성왕이 해운포 온천에서 치유하려 며칠 묶었던바라 최치원은 그때 해운포의 동백섬을 알았을 테다. 오늘날까지도 해운대온천수는 효험 좋기로 유명하다. 간비오산 봉수대를 향하다 해운정사(海雲精寺)에 들렸다.

도심에 있는 신흥사찰의 위세가 대단하다. 경상도 특히 부산지방 불자들의 신심이 돈독하기를 소문난 바지만 창건 된지 반세기 남짓한 사찰의 규모가 상상을 절한다. 경내를 일별하다 원통보전(圓通寶殿) 뒤 철망울타리 사립문을 통해 뒷산을 출입하는 스님을 봤다. 그렇게 시작된 해운정사 뒷산의 선도(禪道?)는 비밀스런 태곳적 산길이었다. 군부대철망울타리와 숨바꼭질하는 선도(그렇게 쓰인 부표를 두 개 봤다)는 인적 끊긴 원시숲길이었다.

불국사다보탑 모조작인 다보탑과 관음보궁

상록수림이 우거지고, 연륜께나 된 고목낙엽수들이 초록넝쿨식물로 칭칭 얽어 치장을 하여 원시 숲을 만들었다. 양치식물과 풀고사리를 비롯한 고사리과 식물들이 대나무숲과 어울리고, 귀한 호랑가시나무도 군락을 이뤘다. 특히 팔손이는 고라니들의 별식(別食)거린지 온전한 놈이 드물었다. 토끼와 고라니 배설물이 심심찮게 발견되는 초록원시림은 의시시하다. 원시숲길을 한 시간쯤 얼쩡대다 해운중학교 뒷산울타리 쪽문을 들어섰다.

하산할까말까 망설이다 되돌아서 다른 산책길을 찾으려 아까 온 길을 되짚었는데 갈림길에서 딴 코스에 들었던 게 반시간쯤 소요하니 이젠 해운중학교 정문 쪽의 개구멍통로길이 아닌가? 어언 두 시간쯤 미로를 배회한 셈이다. 낭패였지만 다음기회에 미답의 숲길을 헤치기로 하고 귀가를 서둘렀다. 어느새 해질녘이 됐다. 해운정사와 해운중학교를 잇은 장지공원의 원시림 산책길-선도는 의시시한 미궁속의 미로였다.

인적 뜸한 선길은 행선하기 안선마춤일 것 같았다

거의 두 시간동안의 산행 중에 딱 한 분 노인장을 마주쳤다. 반가워 인사 들이면서 하산 길을 묻자 동네로 진입하는 길을 가르쳐 줬는데 운동기구가 있는 장지공원에서 헷갈렸던 모양이었다. 미궁을 헤치는 듯한 선도는 음흉스럽게도 해운정사스님과 해운중학선생들과 동네의 알만한 몇 사람만이 앙팡지게 소요의 쾌락을 즐기는 산책로인가 싶었다. 태곳적 냄새에 환장하며 치유의 달콤함을 음미하는 선도. 다음에 다시 선도의 미궁을 탐험하며 간비오산과 옥녀봉을 잇는 등산로를 찾을 테다. 오늘 처음 밟은 멋진 산책길은 행복한 한나절을 안겨준 행운의 날이었다.        2021. 12. 19

동백섬, 우측에 APCE와 좌측에 웨스턴조선호텔이 있다. 해운대백사장이 와우산밑 미포항까지 이어졌다
수중방파제등표(좌)와 누리마루등대. 수중방파제등표는 해운대백사장의 모래가 파도에 떠내려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바다속에 방파재를 설치했는데, 선박이 출입하여 부딪치는 사고를 예방키 위해 방파제 양쪽에 등표를 세워 가이드라인을 표시함이다. 등표는 '세계를 향해 도약하다'라는 의미란다
석양의 동백섬과 방파제등표 사이 뒤로 멀리 오륙도가 보인다
동백섬에서 본 엘시티야경, 보름달이 휘엉청하니 황옥공주가 노스탈지어에 눈물 짤까 싶다
해운대백사장과 LCT야경
동백섬 정자
해운정사 구름다리
최근에 문화재로 등록 된 삼층석탑, 일부 주민들은 문화재등록을 결사 반대한다. 문화재를 핑계로 사찰부근의 민간인 토지를 강제매입 하려는 사찰의 과욕 탓이란다. 석가나 예수는 생존당시 설법과 포교를 위해 황야나 자연동굴 등 자연적인 쉼터공간을 선용했다. 오늘날 거대한 교회나 법당을 세워 포교하는 교역자들이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코로나팬데믹에서 자유롭지 못할 교회는 특히 말이다
선도에서 본 해운정사 뒷태
해운정사 뒤 송림 숲도 마음을 앗아가고~!
두 시간쯤의 산행 중 딱 한 번 마주친 산님, 하산길을 가르처 줬는데 내가 잘 못 짚었다, 옆 철조망은 군부대시설
해운대 마천루
마린시티
꽤 오래 된 어느 정경부인의 묘소, 설마 후손한테 버림 받기야 했을꼬?
장지공원서 본 중동시가지
의시시한 태곳적 내음이 풍기는 선도
노천극장(?)은 사용 안 한지 오래 된 듯
장산과 옥녀봉이지척이다. 담엔 선도에서 장산코스를 찾아 완주할 테다
싱싱한 팔손이 꽃대(좌)와 고라니 한테 뜯겨먹힌 처참한 팔손이(우)
해운중학교 울타리 뒤 계단이 선도와 연결 된다
해운중학교
노랑 점선이 동백섬 허리깨를 환종주하는 제2숲길다. 짖궂은 산님들이 호젓한 산책길로 가물에 콩 나듯 애용했는데 작년에 공원측에서 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