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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불암산(佛岩山)의 가을빛세례

불암산(佛岩山)의 가을빛세례

기상청은 주말에 비를 뿌려 영하권추위가 온다고 예보한다. 수도권에서 마지막 만추를 체감할 찬스일까 싶어 불암산을 찾았다. 상계역사를 나서 청암약수터 숲길에 들자 단풍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예쁜이파리가 미세한 바람에도 생명의 끄나풀을 놓아버린다. 낙엽은 온 산골을 갈색수의(囚衣)로 덧씌우면서 꿈을 잉태시키나 싶다. 죽음은 생명의 씨앗이다.

청암약수터길
청암바위능선서 본 박무 속의 불암산정, 태극기가 어렵푸시 보인다

불암산은 바위산이다. 1억6천만 년 전 쥐라기 때 마그마분출로 형성된 한반도에서 수도권의 산들은 화강암체를 이루고 불암산은 그런 바위전시장이라도 된 듯싶단다. 끄트머리가 안 보이는 완만한 바위능선은 깊게 패인 주름 속에 소나무를 건사시키고 있다. 허나 여느 산처럼 소나무에 대한 끈끈한 연정보다는 갈 테면 가라는 듯싶은 무뚝뚝한 바위 그 얼굴로 말이다.

▲청암사에서 정상을 오르는 코스는 대부분 바위등을 탄다.▼

집체만한 바위들은 소나무보단 사람들 품기에 골몰했는지 모른다. 산꼭대기부터 부처님인 산세는 열혈애국심에 불탄 젊은이들을 품어 안느라 가슴팍을 비밀스럽게 비워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포천`태릉전투에서 구사일생한 육사생도 13명을 거두어들이고, 포천전투에서 회생한 9연대병사들 7명을 품어 이십여 명이 유격대를 조직 전공을 울리며 납북시민들을 구출하고, 공산군의 서울침략을 지연시킨 곳이 불암산이다. 그 유격대원들의 은신처인 바위굴이 생생하다.

정상에 오르는 산님을 주시하는 곰

유격대원들의 발자국이 수 없이 찍혔을 바위능선에 산님들을 위한 쇠침이 박혀있다. 그 쇠침에 서서 확 트인 세상을 품는다. 서울이 아름답고 거대한 도시로 거듭나는 자양분으로 산화했을 유격대원들을 그려본다. 그렇게 바위등걸에서 관조하는 상상의 나래는 일상탈출 속에 자성(自省)에 이르게 한다. 불암산정에 섰다. 송낙을 쓴 부처 같다는 바위산정을 오르기 위해 산님들은 밧줄에 몸을 맡겨 달라붙는다.

정상에 서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붙잡고 개선장군처럼 활개를 편다. 사통오달(四通五達)로 다가오는 세상을 깡그리 품을 수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렇게 정상에 선 나를 발부리에선 곰 한 마리가 우러러보고, 튼실한 낙락장송은 시원한 그늘쉼터를 제공한다. 거대한 바위정상-불암산만이 베푸는 뿌듯한 희열이지 싶다. 석천암을 들려 불암사를 향하는 하산코스를 택했다. 석천암-불암사를 잇는 계곡엔 집체만한 바위들의 전시장 같다.

석천암벽불상과 삼성각
석천암마애불상

석천암의 마애불은 아래 바위굴에서 호국정신으로 산화한 젊은이들의 짧고 굵은 일생을 죄다 기억하고 있을 듯싶었다.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의 숭고한 넋을 체 받으려 육사생도들은 바위계곡에서 필수 기초훈련을 한다. 그렇게 화랑정신을 전수한단다. 계곡을 더듬는 바람결에 나무들은 단풍잎을 흔들다 한 잎씩 허공에 띄워 보낸다. 이소(離巢)한 낙엽들이 군무를 추다 온 골짝을 꽃비가 되어 낙화한다. 바위에 걸터앉아 만추의 향연에 빠져들었다.

억겁을 풍우에 씻겨 만든 주름바위, 거대한 위용에 놀란다

낙엽들의 춤사위소리와 바위골짝을 구르는 소리는 석천암 풍경소리의 맥놀이일까 싶었다. 거암과 돌계단은 낙하하는 낙엽들로 두터운 낙엽장삼(落葉長衫)을 걸쳤다. 고요가 팽배한 계곡에서 낙엽들의 맥놀이소리를 좇다 불암사에 닿았다. 절간 후문의 거암은 인간의 사후(死後)뒤안길을 안내한다. 주검을 자연친화적이고 반영구적으로 산자와 공유하는 방법론을 밝혀준다. 만허당상균지부도탑과 안진호대선사 석연지부도탑이 표본처럼 실증을 하고 있다.

만허당상균지부도탑(좌)과 안진호대선사 석연지부도탑(우) 등 십여 기를 품고 있는 거암

우리들의 주검을 현명하게 관리하며 공감할 수 있는 주검의 길 안내 부도석이라 생각됐다. 불암사대웅전 마당의 홍단풍은 화톳불처럼 타오르고 이글거리는 불꽃이파리들이 마당에 떨어져 핏빛마당을 일궜다. 불암산만추는 그렇게 불암사에서 마지막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마애불 앞에서 국화분이 대웅전 핏빛만추를 릴레이 하는 황홀한 늦가을은 나를 풍요롭게 하는 거였다. 불암산은 바위산이면서도 언제든 우릴 포근하게 품어 안는다.                     2021. 11. 20

불암사마애불상 앞의 국화를 들러리한 12지상
불암사일주문
추사의 세한도를 연상시키는 소나무
불암산암벽등반코스는 쇠침이 많다. 덱계단 아닌 자연친화적이라 좋다
쥐바위
정상을 향하는 된비알 덱계단
정상의 곰과 왕성한 거송의 알박이도 일품이다
거암이 부도밭으로 사랑받는 장례문화를 상상해 봤다
▲소나무의 퍼포먼스는 힘든 산행의 사이다!▼
범고래
정상과 석천암 사이의 을씨년스런 휴게소, 폐소하려면 깔끔하게 정리했슴 싶었다
호랑이 유격대의 아지트 - 석굴
쓸어진 거암의 뒷덜미, 등판에 나의 부도탑을 만들었음 싶었다
석천암 마애불상들
석천암맷돌, 곡식을 빻았던 거대한 맷돌은 위짝이 없어 아쉽다고 스님이 독백하듯 했다. 빻은 곡식가루를 받는 밑의 항아리돌까지~!
두터운 낙엽이불을 덮은 바위들 속의 천연굴은 유격대원들의 은거지로 사용됐을 터
▲불암산에 수 없이 산재한 거암들은 멋과 품위를 뽑낼 부도석으로 딱이다. 불암산을 국립 천연부도밭으로 조성하면 어떨까▼
만허당상균(좌),안석연대선사(우)부도탑. 바위에 사각구멍을 뚫어 화장재나 사리를 넣고 사각덮개 돌로 입구를 막은 부도탑은 자연친화적이며 반영구적인 장례문화의 전형이라. 관리비도 없을 부도석은 국토의 효율적운영에 이바지할 테다. 하여 불암산을 '국립장지공원'화 하여 관리하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불암산은 산세가 멋지고 교통이 좋아 접근성도 뛰어나다
불암사종루
약사전
장경각
대웅전(한석봉의 글씨)과 삼층석탑
불암사마애삼존불, 여인의 헌등기도가 숙연했다
송림 쉼터
2021가을을 사르는 단풍불길
호랑이 유격대 알림판
상계역에서 태릉까지 보라색 선이 필자의 산행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