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佛岩山)의 가을빛세례
기상청은 주말에 비를 뿌려 영하권추위가 온다고 예보한다. 수도권에서 마지막 만추를 체감할 찬스일까 싶어 불암산을 찾았다. 상계역사를 나서 청암약수터 숲길에 들자 단풍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예쁜이파리가 미세한 바람에도 생명의 끄나풀을 놓아버린다. 낙엽은 온 산골을 갈색수의(囚衣)로 덧씌우면서 꿈을 잉태시키나 싶다. 죽음은 생명의 씨앗이다.
불암산은 바위산이다. 1억6천만 년 전 쥐라기 때 마그마분출로 형성된 한반도에서 수도권의 산들은 화강암체를 이루고 불암산은 그런 바위전시장이라도 된 듯싶단다. 끄트머리가 안 보이는 완만한 바위능선은 깊게 패인 주름 속에 소나무를 건사시키고 있다. 허나 여느 산처럼 소나무에 대한 끈끈한 연정보다는 갈 테면 가라는 듯싶은 무뚝뚝한 바위 그 얼굴로 말이다.
집체만한 바위들은 소나무보단 사람들 품기에 골몰했는지 모른다. 산꼭대기부터 부처님인 산세는 열혈애국심에 불탄 젊은이들을 품어 안느라 가슴팍을 비밀스럽게 비워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포천`태릉전투에서 구사일생한 육사생도 13명을 거두어들이고, 포천전투에서 회생한 9연대병사들 7명을 품어 이십여 명이 유격대를 조직 전공을 울리며 납북시민들을 구출하고, 공산군의 서울침략을 지연시킨 곳이 불암산이다. 그 유격대원들의 은신처인 바위굴이 생생하다.
유격대원들의 발자국이 수 없이 찍혔을 바위능선에 산님들을 위한 쇠침이 박혀있다. 그 쇠침에 서서 확 트인 세상을 품는다. 서울이 아름답고 거대한 도시로 거듭나는 자양분으로 산화했을 유격대원들을 그려본다. 그렇게 바위등걸에서 관조하는 상상의 나래는 일상탈출 속에 자성(自省)에 이르게 한다. 불암산정에 섰다. 송낙을 쓴 부처 같다는 바위산정을 오르기 위해 산님들은 밧줄에 몸을 맡겨 달라붙는다.
정상에 서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붙잡고 개선장군처럼 활개를 편다. 사통오달(四通五達)로 다가오는 세상을 깡그리 품을 수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렇게 정상에 선 나를 발부리에선 곰 한 마리가 우러러보고, 튼실한 낙락장송은 시원한 그늘쉼터를 제공한다. 거대한 바위정상-불암산만이 베푸는 뿌듯한 희열이지 싶다. 석천암을 들려 불암사를 향하는 하산코스를 택했다. 석천암-불암사를 잇는 계곡엔 집체만한 바위들의 전시장 같다.
석천암의 마애불은 아래 바위굴에서 호국정신으로 산화한 젊은이들의 짧고 굵은 일생을 죄다 기억하고 있을 듯싶었다.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의 숭고한 넋을 체 받으려 육사생도들은 바위계곡에서 필수 기초훈련을 한다. 그렇게 화랑정신을 전수한단다. 계곡을 더듬는 바람결에 나무들은 단풍잎을 흔들다 한 잎씩 허공에 띄워 보낸다. 이소(離巢)한 낙엽들이 군무를 추다 온 골짝을 꽃비가 되어 낙화한다. 바위에 걸터앉아 만추의 향연에 빠져들었다.
낙엽들의 춤사위소리와 바위골짝을 구르는 소리는 석천암 풍경소리의 맥놀이일까 싶었다. 거암과 돌계단은 낙하하는 낙엽들로 두터운 낙엽장삼(落葉長衫)을 걸쳤다. 고요가 팽배한 계곡에서 낙엽들의 맥놀이소리를 좇다 불암사에 닿았다. 절간 후문의 거암은 인간의 사후(死後)뒤안길을 안내한다. 주검을 자연친화적이고 반영구적으로 산자와 공유하는 방법론을 밝혀준다. 만허당상균지부도탑과 안진호대선사 석연지부도탑이 표본처럼 실증을 하고 있다.
우리들의 주검을 현명하게 관리하며 공감할 수 있는 주검의 길 안내 부도석이라 생각됐다. 불암사대웅전 마당의 홍단풍은 화톳불처럼 타오르고 이글거리는 불꽃이파리들이 마당에 떨어져 핏빛마당을 일궜다. 불암산만추는 그렇게 불암사에서 마지막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마애불 앞에서 국화분이 대웅전 핏빛만추를 릴레이 하는 황홀한 늦가을은 나를 풍요롭게 하는 거였다. 불암산은 바위산이면서도 언제든 우릴 포근하게 품어 안는다. 2021. 11. 20
'걸어가는 길 -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정산 & 범어사 (0) | 2021.12.04 |
---|---|
장산(萇山) & 마고당(麻姑堂) (0) | 2021.12.02 |
관악산의 만추(晩秋) (0) | 2021.11.14 |
소요산(逍遙山) 단풍퍼레이드 (0) | 2021.11.03 |
청계산 만경대의 비경과 비사 (0) | 2021.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