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逍遙山) 단풍퍼레이드

소요산단풍터널의 인파

오전11시, 소요산입구는 단풍으로 빨갛게 불타오르고 인파는 단풍불길 속으로 빨려들어 불소시게가 된다. 단풍축제도 취소 됐는데 부나비처럼 모여드는 울긋불긋 치장한 사람꽃으로 단풍터널은 야단법석이 됐다. 단풍 꽃이 이렇게 멋질 수가 있을까? 라는 탄성이 절로 난다. 일주문과 속리교의 단풍은 자재암(自在庵), 선녀탕계곡을 파고들수록 언어도단의 황홀경을 연출한다.

선녀탕계곡의 단풍

수도권의 명산 중에 온 골짝마다 단풍물결 홍건한 데가 소요산에 버금할 만한 곳이 있을까? 유명한 소요산단풍축제도 코로나19탓에 작년부터 단풍난장을 쉬쉬했지만, 계곡을 불태우는 단풍길 소요는 요란하게 성장한 인파로 화톳불이 됐다. 소요산의 사계(四季)는 워낙 빼어나 김시습,서경덕,이이,양사언 같은 명사들이 무시로 찾아 산책 하는 통에 소요[逍遙산책]산이라 했다.

소요산일주문 옆

이성계도 아들 방원의 난에 심난한 마음을 달래려 소요산에 올랐고, 원효스님은 요석궁의 애욕을 빠져나와 소요산골짝에 움막을 짓고 정진하다 자재암을 창건했다. 자재암은 대대적인 보수공사로 어수선하다. 나한대 옆의 약수로 목을 축이고 365계단을 오른다. “누가 내게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 주지 않겠는가? 내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려 하네.”

선녀탕골짝의 단풍 완상객들

원효가 서라벌 골목길에서 독백하듯 시부렁대는 소리는 태종(무열왕)의 귀에 닿았다. 결혼하자마자 전쟁터에 출정한 남편을 잃은 딸 요석공주가 생각났다. 태종은 원효 수배령을 내린다. 원효는 요석궁 앞 다리에서 취객행세를 하다 붙들려 요석궁에 안치, 공주의 품을 파고들었다. 사나흘동안 천당지옥을 헤매다 보따리를 싸들고 도망하듯 찾아든 곳이 청량폭포 쏟아지는 나한대(羅漢臺) 동굴이었다.

하늘로 향하나싶은 계단은 빡세기 그지없다. 골짝에서 피어오른 옅은 안무가 공주봉을 감싸고 있다. 빗발 세차게 쏟아지던 어느 날밤, 나한대 동굴움막에서 수행 중인 스님을 찾은 묘령의 여인이 있었다. 비를 피해 들어온 여인은 엷은 옷이 빗물에 젖어 다윗 왕을 뇌살시킨 목욕하던 밧세바의 섹시함 이상이었다. 다가서는 여인과의 실랑이 끝에 원효는 움막 밖의 청량폭포에 뛰어들자 여인도 곧 뒤따른다.

자재암 나한대와 청량폭포

“나를 어쩌자는 게요?”                                                                                        “제가 스님께 뭘 어쨌는데요?”

여인은 홀연히 여명 속으로 사라졌다. 여인은 관세음보살이었다. 스님은 다시 한 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암송했다. 나한전 옆 약수터 녹슨 철판에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어진 사람은 뜻이 굳세 비방과 칭찬에도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단풍에 휩싸인 자재암

하백운대를 오르는 가파른 365계단은 누렇게 번지는 단풍을 걸친 골짝과 한 폭의 묵화가 되어 다가서는 소요산능선이 없다면 팍팍하여 죽을 맛일 것이다. 빡센 계단 오르기에 일상을 잊고 다가서는 단풍빛깔에 자연의 신비를 체감하며 감탄한다. 갈색 옷을 입은 나무는 햇살과 바람을 맞아 꿈틀댄다. 누런 이파리를 흔들며 반짝반짝 살아 숨 쉬는 게다. 생과 사를 증명하려는 듯이 낙엽을 떨구며 부르르 떤다. 

햇살 머금고 일렁이는 단풍물결은 나의 창시까지 씻어낸다. 단풍이 아름다운 건 나무 스스로 피운 꽃이 아닌 햇빛과 바람과 기온이 버무려 낸 자연의 신비한 빛깔이다. 그래 더 기묘한 매력을 발산하는지 모른다. 우수(憂愁)에 가위 눌린 당신은 어쩜 단풍숲을 소요하며 생기를 찾을 것이다. 거기다 소요산의 백미를 뽐내는 중백운대의 꼬부라진 노송들의 춤사위는 치유(治癒)의 극점에 달할 것이다. 바위에 걸터앉아 멋진 풍광에 취하면서 기갈을 때웠다.

하백운대 덱계단에서  조망한 나한대와 의상대 

이성계도 이 가을에 여길 올랐을까? 아들 방원의 반란(?)에 착잡한 마음 달래려 백운대에 올랐던 노정객의 모습이 떠올랐다.

“백년 뒤 나의 무덤에 표할 적에 / 꿈속에서 죽은 늙은이라 써 주게.

행여 내 마음 아는 이 있다면 / 천년 뒤에는 속마음도 알 수 있으리”

설잠스님의 ‘아생(我生)’이란 시 말미는 이성계나 우리들 심경을 대신 읊었지 싶다.

중백운대의 노송

칼바위능선을 밟는다. 무딘 칼일망정 칼날 위를 걷는다는 건 신경 곧추세워야한다. 계곡단풍에 반해 아차 하다간 설잠스님의 임종 시 ‘아생’의 경지 근방에도 못 가게 된다. 칼바위능선에서 암송의 연애질까지 완상하다보면 소요산이 ‘소금강산’이라고 하는 소이를 알듯하다. 진달래와 철쭉의 봄날의 향연, 깊은 골짝의 활엽수와 청정물길, 가을단풍, 눈 덮인 하얀 능선과 소나무들의 춤사위는 소요산의 황홀한 사계(四季)다.

나한봉을 오르는 계단도 지랄 맞게 빡세다. 펑퍼짐한 바위무더기 정상을 밟고 의상대를 올라섰다. 무르익은 햇살이 소요산계곡의 단풍물결에 파도를 일군다. 자연은 살아 꿈틀대기에 올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감동의 스펙트럼을 넓혀 찌든 마음을 치유케 한다. 선녀탕 쪽으로 하산한다. 골짝의 단풍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계곡엔 형언할 수 없는 빛깔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상백운대의 고사목의 버섯꽃

소요산단풍의 백미는 선녀탕골짝이라. 골짝 깊숙이 파고든 햇살 머금은 단풍은 고흐의 원색 붓 칠로도 타오르는 열정을 흉내 내지 못할 것이다. 빛깔의 신비를 탐하려면 소요산 선녀탕골짝에 들라! ‘환장하게 멋지다‘라는 표현 이외 유구무언이라. 돌`바위너덜길은 누런 낙엽에 덮여 단풍물길이 됐고, 낙엽융단 속을 흐르는 물길은 속삭임으로 알아챈다. 어쩌다 웅덩이에서 풍경을 담은 소(沼)엔 낙엽물고기가 노닌다. 

칼바위능선의 암송

선녀탕계곡은 단풍이 흐르고, 물길은 낙엽이 홍수를 이룬 채 물 흐르는 재잘거림이 자장가가 되어 골짝으로 스며든다. 아! 골짝을 불태우는 원색의 향연에 나를 불사른다. 한나절 온통 나를 벌겋게 태운다. 소요산계곡에 때 찌고 찌그러진 마음을 불태웠다. 자연은 그렇게 무보수로 순수성을 선물한다. 자연의 신비가 없다면 사람들은 ‘경외(敬畏)란 단어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소요할 소요산이 있어 행운이다.  2021. 11. 02

나한대
▲의상대▼
상백운대 정상의 낙엽카패트 

 

▲칼바의능선▼
▲선녀탕계곡▼
▲선녀탕골짝의 단풍▼
선녀탕 계곡에 얼굴 드민 공주봉
▲중백운대의 솔춤▼
▲중백운대의 솔춤 사이로 나한대와 의상봉이 보인다▼
▲청량폭포▼
나한대 불전
추담선사 부도
자재암 해우소
수행 요사채
일주문
태조 이성계 행궁지 비석은 주차장(공원관리사무소)에 있다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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