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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금정산 & 범어사

금정산(金井山) & 범어사(梵魚寺)

정상에서의 필자

오전11시, 범어사산문에 들어섰다. 넓은 돌너덜지대에 바위사이를 흐르는 물길이 산사의 아리아를 연주하고 온갖 형상의 거목들이 춤판을 벌려 스산한 초겨울을 쫓아내나 싶다. 등운곡(藤雲谷)에 잠시 들렀다. 늙은 활엽수들이 알몸인 채 헤지고 찢어진 등나무 옷을 치렁치렁 걸치고 넝마 춤을 추고 있다.

일주문

100살 남짓 살았다는 등나무 450여 그루가 나목들에 엉켜 거미줄 치듯 늘어진 풍경은 괴이하기까지 했다. 등나무는 죽은 듯이 겨울을 나서 봄엔 다시 활엽수와 소나무에 짓궂게 달라붙어 갈등을 키울 테다. 누군가에 기생하며 고사시키는 갈등의 삶이 등나무의 일생이다. 부도 밭을 훑고 당간지주를 훔치다 일주문에 들어섰다.

청련암,내원암 가는 길

엄청 큰 돌기둥 넷 위에 짧은 나무기둥을 얹은 일직선상의 대문은 파격적이라 사랑받는다. 자고로 혁신이 인류문명을 꽃피웠다. 사천왕문을 통과하여 불이문에 들면 보제루를 머리에 얹어야 대웅전과 마주치게 된다. 대웅전 앞의 금고(金鼓)를 보고 싶었다. 1862년(철종 13)때 만들었다는 대형 금고는 지름이 90㎝다. 하산하면서 사찰경내를 일별하기로 하고 종각옆길을 빠져 내원암과 청련암을 거쳐 장군봉 능선을 타고 고단봉에 오를 참이다. 초행길이라 서둘렀다.

대웅전과 금고

내원암 길에도 등나무의 넝마 춤이 어지럽다. 갈등의 어원이 된 등나무의 삶을 생각하다 일부 목회자들의 거짓과 가식이 빚은 코로나19팬데믹 세상의 갈등을 곱씹어봤다. 2년 전에 신천지교회는 중국우환에서 코로나19를 숨겨와 팬데믹세상을 만들더니, 이번엔 목사부부가 나이지리아에서 오미크론바이러스를 품고 와 오늘까지 780여명의 밀접촉자가 검사 중이라니 어찌해야 된다?

청련암의 불상들

하느님을 파는 교역자들은 진실을 생명처럼 여겨야 함인데 거짓변명으로 혼란과 갈등을 부추긴다. 오미크론을 안고 온 목사부부는 그들이 그렇게 간구하는 하느님한테 빨리 달려가라. 분노하는 사회적 갈등과 경멸과 힐난의 눈총은 피하는 길일 것이다. 아님 백신접종률 1%에 노 마스크로 생활하는 나이지리아에 가서 영주하면 치욕스런 눈총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 

나목에 치렁치렁 붙어 겨울을 나는 등나무, 450여 그루가 지생하는 등운곡엔 '갈등(葛藤)'이란 단어를 곱씹게 한다

범어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돼 10여 년간 폐허였다 1602년(선조 35) 중건, 다시 화재를 당해 1613년(광해군 5) 여러 고승들의 협력으로 중창했다. 숙종29년(1703)에 건설된 금정산성은 성안의 승려 4백 명으로 수첩(守堞)하고, 외지 승려 수천 명이 대(隊)를 조직해 산성을 방비했다고 숙종실록에 기록됐다. 금정산성은 임진란의 혹독한 피해를 입은 동래 부민들이 난리에 대비하기 위하여 쌓은 피란 겸 항전성이다.

임진왜란 때는 서산대사가 범어사를 사령부로 삼아 승병활동을 하였고, 일제 땐 범어사에서 학생들이 만해 한용운과 함께 ‘범어사학림의거’라는 독립만세운동을 했다. 또한 전국에서 쓸 태극기를 모두 여기서 만들었다고 전한다. 우환서 코로나를 전파한 신천지교회나 나이지리아하나님한테 갔다 온 목사부부는, 임진왜란 때 왜구에 항전하면서 일제 땐 목숨까지 희생한 민초와 승려들의 애국심을 그들 교회기도문에 새겨 찬송할 일이다.

금정산 석정(金井山石井), 산정(山頂) 아래 바위에 있는 우물. 가물러도 물이 항상 가득해 햇빛을 받으면 활금색을 띈다. 예전에 금빛 고기(金色魚)가 오색 구름을 타고, 범천(梵天)에서 내려와 헤엄쳐 놀아 금정이라고도 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돼 있다

유수한 대형 교회들이 코로나 팬데믹에서 벗어날 때까지 교회를 임시 코로나치유센터로 만들고, 축적한 헌금으로 기자재를 구입하여 부족한 코로나치료병실로 선용함 어떨까? 그래 코로나가 사라지던 날 교회는 참된 목회자의 전당이 됐노라고 주님 앞에 나설 수가 있을 것이다. 교회가 코로나 숙주처란 비아냥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고-. 청련암의 다양한 불상과 불자들을 뒤로하고 장군봉을 향했다.

금정산은 참나무종류의 활엽수가 많아 겨울풍정이 삭막한데 늘푸른 측백나무 숲이 상쾌하게 한다

죄다 깨 홀딱 벗은 활엽수들의 난장에 측백나무 숲이 상서롭다. 찬바람 한 떼가 검푸른 측백나무 이파리를 흔들다 참나무에 달려가 간당간당한 고엽을 때어 고단봉쪽으로 떠난다. 저 고엽의 정착지는 어딜까? 제 할 일 다 끝내면 훌훌히 떠나는 나무이파리들의 여정이 부럽다. 바위무더기를 쌓아놓은 고단봉이 아스라이 다가선다. 1km남짓의 거리다.

▲금정산정, 사다리계단은 등정하기 편하게 했다▼

700m고지라선지 등산로는 이따금 서릿발을 세웠다. 바람결이 차갑다. 명명할 수 없을 거암들이 환영을 나와 홀로산행을 응원한다. 금샘(金井)을 기웃대다 고담봉엘 오른다. 수직바위에 철계단을 걸쳐놓아 801.5m정상은 쉽게 자릴 내준다. 어떤 산님이 인증 샷을 해준데서 마스크얼굴로 코로나시절을 웅변했다. 금정산정은 사위가 뻥 뚫려 호연지기의 멋과 맛에 흠뻑 젖을 수가 있다.

"돌우물 금빛고기 옛전설따라

금정산 산머리로 올라왔더니

눈앞이 아득하다 태평양물결

큰포부 가슴속에 꿈틀거린다"

'금정산'표석뒷면에 새겨진 노산 이은상의 시 <금정산>.

고담봉 턱밑의 신당의 ‘金井山山神閣 姑母堂神堂’이란 현판이 낡아 넘 초라하다. 마고할미가 성깔 내지 않고 있어 용하다. 북문을 향하는 가파른 계단은 금정산성이 동행한다. 임진왜란때 혹독한 피해를 입은 동래 부민들이 난리에 대비하기 위하여 쌓은 피란 겸 항전성인데 썩은 관리들 탓에 별무성과였다. 부민들과 스님들이 고혈만 낭비한 꼴이었다. 자고로 세계의 산성들은 대게 제 몫을 못하고 백성들만 죽여준 공사였다. 

정상 턱 밑의 마고신당. 으스스한 분위길 자아내는 신당이 관리소홀로 낡고 헐어 마고할미가 금방 쫓아나올 것만 같았다

범어사까지의 돌너덜 계곡은 태곳적분위길 느끼게 하는 멋진 힐링로드다. 돌, 바위, 나무, 물소리 어느 것도 세월의 때가 켜켜이 묻어나는 자연의 보고다. 때 묻지 않은 청정자연 속을 얼쩡대다보면 얼마간 주저앉고 싶다. 스님들의 삶이 어떤 맛일지 그려진다. 범어사 요사채 담벼락 너머의 만추풍경에 잠시 눈길을 빼앗겼다. 오후3시반이었다.        2021. 11. 03

북문. 금정산성이 멀리 고담봉을 향해 치고 오른다
정상의 석부작 소나무가 낙동강까지 안아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들었다
▲양산시가지와 경부고속도로가 조망되고-.▼
여태 더듬어 온 장군봉능선, 조우한 산님이 다섯 분도 안 됐다
▲고담봉 아래 안부의 육송들의 퍼포먼스. 쉼터로 사랑받는다▼
선돌과 족제비 문
곤룸 사촌일까?
단풍고엽이 바람이 몰려오면 신바람이 나서 오두방정을 떨었다. 마지막 여행의 설레임 탓일가~!
사각육면체 바위를 꼭대기에 올려놓은자 누군가? 아래 금샘 수호병의 방석일까?
북문에서 범어사를 휘돌아 가는 돌 너덜지대는 다양한 식생들이 살림을 차렸다. 잠시 앉아 쉴라치면 까마귀가 젤 먼저 인사를 한다
몇 백살 먹은 전나무일까? 범어사 경내의 은행나무와 자웅을 겨뤄도 꿀리지 않을 테다
상처뿐인 귀목은 저 옹두라지 상흔 탓에 산님들의 사랑을 받는다
지장암 옆의 산령각의 산신은 마당바위에 올라 신바람 일으키는 푸닥거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금강계단과 종루. 종루 옆길이 오늘 필자의 산행 들머리다
청련암으로 빠지는 길
범어사의 아이콘 은행나무
▲청련암 입구▼
이리도 많은 불상을 난전에 뫼신 절도 드물테다
내원암 둘레길의 측백나무 숲
 1994년 금정구청이 고당봉 정상에 한자로 음각한 표석을 세웠는데 2016년 8월 벼락맞아 부서졌다. 하여 10월에 부산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범어사 계곡의 선돌을 가져다 주지(鏡禪)스님이 한글로 써서 세웠다. 표석뒷면에 이은상의 시 '금정산'을 새겼다.
당간지주, 깃발 대신 꺽다리 소나무로 범어사의 위치를 알리나 싶었다
부도밭
매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