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곡산(佛谷山) - 바위만물상(萬物相)
엊그제 뿌린 봄비에 젖은 대지에 새싹이 돋는다. 타는 겨울가뭄이 좀 해갈됐을까? 양주역사를 나서 촉촉한 흙길을 밟으며 양주 불곡산자락의 양주향교 앞에 섰을 때가 오전10시반 이었다. 불곡산자락은 산수자명 하여 400여 년간 양주목사가 행정을 편 동헌과 향교가 있는데, 양주관아는 1792년9월 정조가 광릉행차길에 들러 사흘간 머물며 민정을 살펴 더 주목 받은 고을이다.
수령 약 500여년이 된 느티나무가 보초처럼 서 있는 양주향교(楊洲鄕校)는 태종 원년(1401년)에 건립된 유학과 교육의 요람이다. 한쪽 대문을 통해 경내를 일별하려는데 자물쇠 걸린 대성전 뜰악엔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향교 앞 양주 별산대(別山臺)놀이마당(중요 무형문화재 제2호)과 전수관을 훑었다. 별산대 놀이마당은 순조·헌종 때부터 양주읍에서 해마다 석가탄신일이나 단오, 한가윗날에 치러졌다.
정조가 직접 활을 쏜 것을 기념해 세운 어사대비(御射臺碑), 양주목사의 휴식처인 금화정, 임꺽정 생가터와 선유동천 쉼터로 이어진 전통문화숲길은 ‘불곡산숲길’ 트래킹코스(28km) 2구간의 일부로 소나무숲을 걷는 낭만은 불곡산등정의 몸풀기로 딱좋다. 선유동천 쉼터 갈림길에서 백화암을 향하는 빡센 오르막길은 불곡산 등정 나들길이기도 하다. 깊은 골짝의 물길은 중량천 수원지로 서울의 젖줄인 셈이다.
백화암(白華庵)까지 반시간쯤 걸리는 팍팍한 포도(鋪道)는 발아래 흐르는 물길소리마저 없으면 완전 고행길일 터다. 선유동천의 시원이기도 한 백화암약수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그 약수 한 사발을 들이키고 암자에 올라섰다. 인기척 없는 절간에 대웅전 문살을 빠져나온 독경소리가 앞마당의 500살 느티나무에 걸린다. 신라 효공왕 2년(898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불곡사(佛谷寺)는 재난과 중건을 반복하다 1956년 백화암으로 불렸다.
불곡산 이름도 애초에 절 이름에서 기인한다. 대웅전 우측 다로정(茶露井) 깊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면서 반세기 훨씬 전의 고향집 우물의 풍정을 차환하며 아련한 향수에 젖어봤다. 동구의 공동우물 말고 집안의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질 하던 집은 형편이 괜찮은 집이었다. 마애불상은 백화암 뒤 등산로에서 비켜난 흐지부지한 숲길 끝이라 그냥 지나치기 쉽다. 좁다란 계단을 숨차게 오르면 거대한 단애(斷崖)가 막아서는데 그 바위벽의 마애삼불이 압권이다.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대세지보살이 지금 막 하얀 바위를 뚫고 나오려는 듯싶다. 딱 1년 전에 처음 찾고 오늘 두 번째인데 마애불상 앞에 서면 왠지 맑은 맘에 그윽해 진다. 게다가 인적이 없어 배낭을 풀고 오만방자를 떨어도 무탈할 듯싶었다. 빠꾸하여 백화암 뒤 등산로를 탄다. 빡세고 후미진 된비알이라선지 산님을 마주친 적이 없다. 바위가 짜낸 물기에 초록 싹이 낙엽을 헤치고 있다. 봄빛은 불곡산의 모든 생명을 일깨우나 싶고 숨찬 나의 심박동소리는 응원소리가 되어 골짝을 탄다.
드뎌 능선에 올라탔다. 임꺽정봉 2km전방이다. 한북정맥이 남하하다 기암괴석을 후다닥 쏟아 부어 불곡산을 만들곤 도봉산과 북한산을 만들려 줄행랑을 쳤다. 하여 불곡산 바위는 세상의 잘 생긴 놈과 못 생긴 놈의 형상을 한테 모은 만물상 전시장이 됐다. 상봉 언저리의 펭귄은 바위를 오르다 지쳐 소나무가지 뻗쳐오기만을 고대 하는데, 소나무는 바람결 타고 춤추기에 정신 팔렸다. 수 백 년 동안 춤췄을 소나무의 몸매는 예술품이 됐다.
소나무 몸매에 홀딱 반했을 펭귄 못잖게 산님들은 도처에서 놈을 보듬다 못해 옆에 끼고 주저앉았다. 상봉(468m)과 상투봉을 잇는 바위능선 길은 선계를 걷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탁 트인 조망과 불곡산의 만물상바위가 위치 따라 모습을 달리해서다. 불곡산엔 보루성이 두 개가 있는데 상투봉 밑의 보루는 성벽이 현존한다. 보루는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의 북진을 막기 위해 쌓은 성벽이다. 긍께 불곡산능선은 고구려가 만주벌판까지 통치했던 전성기의 영토였던 것이다.
보루 성은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곳에 축성한 작은 산성으로 주봉인 상봉이 6보루, 상투봉이 7보루, 임꺽정봉(445m)이 8보루라고 한다. 7보루 성벽을 만지며 고구려인들의 손길을 느껴보고 싶었다. 상투봉과 임꺽정봉의 협곡은 무척 깊고 가팔라 암벽타기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밧줄 한 가닥에, 철재가이드에 매달려 오르내리는 등반은 담대한 용기와 도전의 지혜를 습득케 한다. 그 맛과 멋이 산님들한테 입소문 퍼졌단다.
저 아랫마을 청석골 태생인 임꺽정(林巨正)은 바구니나 키 등 생활용품을 만들어 파는 유기장(柳器匠) 고리백정이었다.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뺏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줘서 의적(義賊)이라 불린 그는 홍길동·장길산과 더불어 조선의 3대도적이라 했다. 1562년 1월 관군에 체포돼 3년여 만에 죽임당한 그는 죄 없는 아내가 석 달 전에 끌려가 관비가 됐단 걸 알고 어떤 심경이었을까?
그가 1559년 황해도 구월산에서 시작한 도적질은 평안도와 강원도 경기도 산악지대를 누비며 신출귀몰 했는데 아마 어렸을 적에 불곡산의 험한 암벽을 오르내린 경험 덕이었을 테다. 조선조 제일 컸던 민란의 대도(大盜)가 백성들의 가슴속에 의적으로 풍자됐던 건 부정부패한 권력에 앙심 품은 민중들의 저항과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고픈 간절한 희망이었을 터. 그래 임꺽정은 위정자들에게 고금을 관통하는 반추의 인물일 것이다.
줄기찬 암벽타기 끝에 임꺽정’봉에 올라섰다. 8보루가 있던 곳이라 제법 넓다. 양주벌판 3면이 한눈에 펼쳐진다. 벽초 홍명희의 장편소설 ‘임꺽정’의 한 구절을 떠올려 봤다.
‘삼년 피리 소리는 관산의 달/ 풀과 나무를 울리는 바람 앞에 9월의 병사처럼/
서쪽으로 기우는 가지 위 단석에 의지하고/ 천자의 깃발이 눈 안에 있다’
악어바위능선을 탄다. 만물상 중 젤 그럴듯한 놈들이 많이 웅크리고 있는 험준한 바위산악이다. 작년 이맘때 찾아들어 마음은 얼마나 긴장하고 머리는 신비경에 매몰됐었는지, 다시 찾아와야겠다고 새겼던 흥미로운 비경의 보고다. 도봉산이나 북한산 어디에도 이렇게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이 비좁은 바위협곡에 집약적으로 웅거하는 곳은 없지 싶다.
자연은 인간에게 지혜와 용기를 북돋우는 위대한 산교육의 장을 펼쳐 놨다. 만물상과 대면하며 상상하는 힐링의 순간은 바위산의 매력일 테다. 통천문에 올라섰다. 거대한 바위문을 통과하려다 승천객이 될까 두려워 되돌아섰다. 한 번쯤 물러설 줄을 알아야 한다고 통천문의 바람결은 속삭이고 있었다. 세상은 넓고 아름답다. 자연은 용기 있고 부지런한 자에게 더 삶의 지혜와 행복을 선사한다. 삼단바위가 아래서 길잡이를 해준다. 2022. 0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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