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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21 추석단상(秋夕斷想)

´21 추석단상(秋夕斷想)

코로나19팬데믹이 무색케 추석 아침서기는 화창하게 밀려들어왔고, 아낸 정성껏 마련한 음식으로 조촐한 차례상을 차렸다. 향을 피우고 울`부부와 둘째 - 세 식구가 차례를 지내며 음복을 했다. 근래 명절엔 해외여행을 하곤 했는데 작년추석부턴 코로나19로 집에서 차례를 올리다보니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추모의 정이 새록새록 솟아 명절기분이 뭉클했다. 명절엔 꽃 한 송이와 정수 한 잔 올려놓은 상차림일망정 식구들이 모여 차례는 지내는 게 좋다.

추석 차례상

향 타는 연기 속에서 아련한 부모님의 생전모습을 회억하고 얘기꽃을 피우는 단란한 시간은 선조의 유덕을 기리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겨가는 훈훈한 가통(家統)으로 이어갈 수가 있어서다. 큰애는 싱가포르에, 막내는 은이가 미열이 있다고 불참하는 추석이다 보니, 아니 핵가족의 시대일수록 명절은 필요한 가족잔칫날이지 싶다. 명절 핑계대고 한자리에 모두가 모일 수가 있어서다. 명절엔 금년처럼 며칠간을 법정휴일로 즐길 수가 있어 빠듯한 일과에서 해방되니 말이다.

와인잔을 마주하며 싱가포르 큰애네와 5시간여를 pc화상통화로 즐건 명절밤을 보냈다

추석다음담날 막내가 찾아왔다. 미열이 내리고 자가진단을 하여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휴일 막바지에 친정나들이를 한 게다. 그래 싱가포르 큰애와 화상통화로 피붙이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pc화상통화는 지구촌 어디까지라도 실시간을 공유할 수가 있어 참 좋은 세상이란 걸 실감케 한다. 서울과 싱가포르의 두 가정을 하나의 pc화면 속에서 오후5시~10시까지 와인 잔 부딪치며 공유`공감하는, 맘만 먹으면 명절 아닌 언제나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지구방세상(地球房世上)이 됐다.

필자

추석연휴 마지막 날 아내와 나는 인천에 사시는 처형댁을 문안차 행차했다. 아내는 몇 번 뵈었지만 나는 뵌 지가 20년도 넘겼지 싶었다. 1남2녀를 출가시키고 홀로 사시는 형수님은 무릎관절이 안 좋아 거동이 불편했는데 요즘은 알츠하이머로 손 떨림이 심해 어렵게 사신다고 하여 문안인사 드리고 싶었다. 출입문밖에서 아내가 노크하자 반가워 문턱 밖으로 나오시는 형수님의 거동은 불안했다. 내 손을 잡으며 사뭇 격양 된 목소리로 “어떤 영감이 우리 집을 다 온디야?”라고 반색을 하신다. 나의 등장과 백발이 다소 의외였던가 싶었다.

꽃무릇을 탐하는 나비

생각키보단 형수님의 얼굴은 뽀얗고 토실하여 보기 좋았으나 넘 오랫동안 찾아뵙지 않은 내 처신이 죄송했다. 방2, 주방과 화장실의 다세대주택 반지하방은 30여 년 전에 매입한 주택이라 낡긴 했지만 사실만한 구조였다. 천정 가까이 난 바깥창문은 100×50cm쯤의 크기로 유일한 통풍구이지 싶었다. 그 창문이 내 시선을 붙잡은 채 심난하게 좌불안석시켰다. 방충망에 낀 시꺼먼 때가 이끼처럼 달라붙어 있어서였다. 해충방탓에 열지도 못할 창은 통풍보단 세균걱정이 우려됐다.

거동이 불편하신 형수님은 빤히 알면서도 방치할 수밖에 없으리라 싶어 방충망을 떼어내 깨끗이 씻어야한다고 충동질하는 거였다. 다만 내가 방충망청소를 하면 형수는 어찌 생각할까? 자존심에 상처 입히는 행윈 아닐까? 라는 번민으로 한 시간여를 갈등하다 방충망을 여닫아봤다. 쉽게 떼어낼 수 있었다. 2개를 떼어내 화장실로 들고 가서 샤워기로 물을 끼얹자마자 이 무슨 낭패인가? 방충망이 샤워기물살에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엉겁결에 손을 대니 금이 쭉쭉 나가면서 쳐져 떨어져나갔다. 청소는커녕 교체할 수밖에 없게 됐다.

명절휴일에 문 연 철물점이 있을까? 나는 아내를 불렀다. “가만 놔둘 일이지---, 어쩔래요?” 방충망 뗄 때부터 말렸던 아내가 시큰둥하게 뱉었다. “철물점도 문 안 열었을 테고---. 낼 내가 와서 교체해드려야지” 멋쩍게 내가 응수하자 아낸 오지랖 떨다 잘 됐다는 식으로 비아냥댔다. 그때 형수가 들여다보더니 손사래 치면서 걱정하지 말고 빨리 나오란다. 그렇잖아도 교체하려던 참인데 잘 됐다고, 내일 연락하여 하나에 만원씩이면 해주니 안심하라고, 나를 위안하며 되려 미안해하신다.

화장실에서 나와 자리에 앉으며 형수님 눈치를 살피다가 이젠 형수님 자식들의 심사가 맘에 걸렸다. 그 애들 자존심을 건드려 불편하게 할 수도 있어서였다. 지네들이 할 일을 생뚱맞게 내가 참견했다는 불만이 맘에 걸리는 거였다. 사실 30여 년 되도록 방충망청소 한 번 안한 자식들의 무감각 내지 불효는 상처 받아 개과천선하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자각해주면 좋으련만~!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래 방충망청소 해프닝이 기쁨에 이르는 생활의 발견이길 고대해 본다. 형수님, 건강하시고 장수하세요.      2021. 09. 22

# 풍경사진은 추석연휴에 C와 '물의 정원'을 산책하며 담아 온 그림

재래시장의 추석차례상에 올릴 닭의 우수꽝스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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