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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어릴 적 스승님 전에

새어릴 적 스승님 전에

고향 동구의 정자와 당산(팽)나무. 지금은 낙뢰로 없어져 사진 더 찍어놓을 걸 하는 아쉬움이 사무친다

≪ 선생님                                                                                                          정교석선생님 전에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기쁩니다.                         선생님, 하면 저한테 떠오르는 모습은 선생님의 열정입니다. 6학년 때 선생님께선 김병수선생님 댁에서 하숙생활 하시면서도 저를 옆에 두고 반년 남짓 대면과외수업을 해주셨던 정성입니다. 밤11시에 취침하여 새벽4시에 기상하셔 대면수업을 해주신 정황은 제게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광주서중학교 입학’이란 소기의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저에겐 실로 많은 각성을 안겨준 열공의 시간이었지요. 선생님의 그런 음덕에 저는 지금 딸 셋을 둔 평범한 가장으로써 심신이 건강한 행복한 삶을 즐기고 있지 싶습니다. 더 바랄나위 없는 뿌듯한 노년을 수놓고 있지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더는 언제 뵐 수 있기를 고대해 보고요.                         2021. 08. 01                                                                                                  제자, 강대화 올림 ≫

# 위 글은 내가 선생님께 보내드린 산행에세이 <숲길의 기쁨을 좇는 행복> 속에 첨부한 편지다.

▲방마산 칠부능선 등잔거리의 부모님 산소▼

며칠 전 조카 경숙이와 통화 중 정교석 선생님의 소식을 알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던지! 초등졸업 후 선생님을 뵌 게 15년 전쯤의 초등학교동창회자리였다. 고향 불갑사근처 식당이었는데 어찌하여 전화번홀 분실하곤 오늘에 이른 무성의한 나였다. 6학년담임이셨던 선생님은 실력파 총각선생으로 송정마을에 사시는 김병수선생님 댁에서 하숙생활을 하고 계셨다. 내가 어떻게 하숙하시는 선생님과 동숙하며 대면과외를 하게 된지는 잘 모른다.

애들이 결혼30주년기념 선물한 동판시계와 장인님이 선사한 사슴목각
내가 설계 신축했던 익산 3층안가의 응접실, 십 여년 전에 매도했다 

아마 선비 이셨던 선친께서 당시 학교사친회임원이시라 선생님과 이따끔 대면하는 자리에서 나의 중학교진학 상담이 논의됐지 싶은 게다. 나의 수업성적이 최상위축인데다 그때까지 불갑초등학교 출신이 광주서중학교에 진학한 선례가 없어 도전시켜보자고 선생님과 선친이 뜻을 같이 했으리라 추측하는 게다. 암튼 나는 방과 후엔 선생님하숙생활에 기생하여 밤11시에 취침하여 새벽4시에 기상, 선생님과의 대면과외수업을 받는 일과를 반년 남짓 했다.

▲불갑저수지원경▼

울`집과 하숙집의 거리는 1km쯤 됐을 테지만 추석 때 이틀만 빼곤 부모님과 생이별한 최초의 유학생활(?)인 셈이었다. 그래 모든 게 어설프고 불편했지만 제일 견디기 힘든 건 새벽4시에 기상하여 후딱 세수하고 선생님의 대면수업을 받는 일이었다. 밀려오는 졸음 탓에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선생님이 무서워 억지로 실눈 뜨고 그냥 건성으로 수업하는 꼴 이였지만 선생님은 ‘합격할거다’라고 자신만만 격려해 줬다. 그렇게 열공(熱功)하여 광주서중입학시험에 응시했는데 낙방했다.

▲불갑사저수지 단풍▼

낙방한 까닭은 나의 실력보다는 서중학교입학의 편파적인 모순과 수험 이틀째 날은 내가 아파서 아버지등에 업혀 실기시험을 치러야 했다는 불운이라고 합리화했다. 당시 서중학교 입학생선발은 모집생도 480명 중에서 300명은 광주시내학교출신중 우수생을 무시험 선발하고, 180명만 시골학생을 수험 치러 뽑은 불공정한 입학제도였다. 설상가상으로 수험 이튿날엔 나는 몸살을 앓으며 체육과 음악실기시험을 봤다.

▲불갑사천왕문과 꽃무릇▼

음악실기시험은 서중학교 강당에서 피아노연주를 들으며 답을 써야했는데 내가 시골학교에서 익혔던 풍금소리와는 차이가 있어 얼른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찌됐던 나는 낙방했고 아버님 등에 업혀 끙끙 앓으며 귀가 후기시험에 대비해야 했었다. 낙방 후 정교석 선생님을 뵌 기억은 졸업식 때만 기억난다. 내가 그때의 과외수업이후 깨달은 건 공부시간은 컨디션이 최적일 때 집중해야 효과적이라는 사실 이였다.

불갑사저수지의 데칼코마니

하기 싫은데 누군가를 의식하여 건성으로 하는 척하는 시늉은 시간과 체력낭비라는 걸 통감했다. 하여 나는 결혼 후 나의 애들에게 억지공부를 강요하진 안했다. 아내에게 여건만 조성해주도록 조언했다. 피아노소리에 멍청이가 됐던 아픔을 애들에게 전수할까 싶어 큰애가 5살 되던 해 당시엔 거금(?)을 들여 피아노를 생일선물 했다. 또한 전축과 LP판을 구입 클래식에 귀 트이게 해주며 엄한 분위기에서 자율성을 키우도록 애써줬다. 다행히 애들은 잘 따라줬고 감수성 강한 지성인으로 성장해 줬다.

불갑사 수다라&성보관
불갑사부도밭

선생님의 열정과 선친님의 혜안이 나의 심지를 어루만져 건강하고 맑은 정신을 심어줬고, 그런 자양분이 울`집의 맑은 가풍이 됐지 싶다. 두 분의 훌륭한 어른이 내 어릴 때에 나침반이 되어 주셨음은 더 할 수 없는 행운이라. 감히 나는 선생님께 작년에 출간한 책얘길 여쭸다. 나의 하찮은 넋두리나마 책으로 엮은 산행에세이 <숲길의 기쁨을 좇는 행복>을 선생님께 드리고 싶다고. 그래 기꺼이 읽어주시겠다는 응답에 뿌듯함을 느낀다. 정교석 선생님, 감사합니다.

▲불갑사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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