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느낌~ 그 여적

책문(策問)

 책문(策問) - 광해와 임숙영(任叔英)의 일화

조선시대 고급 공무원 선발시험으로 왕이 과거시험 합격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최종 면접시험으로 책문이 있었다. 응시생들은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12m가 넘는 답안지에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써서 임금께 보여주는 시험이었다. 전시(殿試)로 불리기도 한 책문은 마지막 시험으로 임금은 그 답안지에서 나라를 이끌 방책을 찾았고, 미래를 같이할 관료들의 철학과 신념을 공유했다.

최종 합격자 33명의 등수를 정하는 전시에 응시생들은 국가의 경영에 관한 현안과 비전에 대해 임금께 자신의 역사 의식, 정치철학, 인문교양을 취합 논술하는 치열한 시험이었다. 광해가 임숙영에게 묻는다.       "깊은 못과 살얼음을 건너야 하는데 건너갈 방법을 모르듯이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 

 임숙영이 다소 삐딱하게 기술한다.                                                                          "전하께서는 왜 스스로의 실책과 국가의 허물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습니까. 또한 왕비와 후궁의 권력 개입을 묵인하고, 뇌물로 벼슬자리를 사는 걸 용인하며, 임금의 허물을 비판하는 언로를 탄압합니까?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나아가 전하께서는 자기 수양에 깊이 뜻을 두시되, 자만을 심각하게 경계하십시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대답합니다." 라고 고언(苦言)도 덧붙였다.

“전시의 응제문(應製文)은 정해진 법식이 있어 도리와 욕심, 공과 사를 논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임숙영(任叔英)의 응제문을 보니, 그 답이 질문을 곡해 엉뚱하며, 나아가 방자하고 거리낌 없이 패악한 말로 별제의 답까지 썼다.” 대노(大怒)한 광해는 뿔따구가 나서 합격자명단에서 당장 임숙영의 이름을 삭제하라고 명을 내렸다. 임숙영이 아뢴다.

"임금의 잘못이 국가의 병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35살의 신참유생이 죽을 각오로 ‘문제는 임금인 네야’라고 간덩이 부은 답을 한 셈이다. '책문에서 응시자들의 철학과 소신을 기탄없이 말하라.'는 불문률에 시관(試官) 심희수는 그를 병(丙)과로 급제시켰던 것이다. 이항복(좌의정)과 이덕형(영의정)을 비롯한 대신들과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에서 삭과(削科)의 명은 부당하오니 거두시라고 진언한다.

직언(直言)과 극간(極諫)을 구하는 전시에 책문의 내용으로 왕이 합격자를 취소시키는 법은 없다고 나섰던 것이다. 이 간쟁(諫爭)사건으로 임금과 대신들의 팽팽한 대치는 4개월 동안 이어졌다. 결국 광해는       “향후 질문 요지에서 벗어난 답을 한 자는 과거에 선발하지 말라”는 교시를 내리며 슬쩍 물러섰다.         광해는 무능했지만 지혜로운 왕이었다.

임금의 책문에 망설임 없이 시대의 난맥상을 아뢴 임숙영과, 이에 대노한 임금 앞에서 법치를 따지며 임금과 대치한 대신들, 그들의 주장이 옳기에 자신의 뜻을 접한 왕 - 광해군, 모두가 참으로 멋지고 현명한 군신들이었다. 봉건왕조 조선이 500여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진정한 법치국가를 꿈꾼 조정의 대신과 지혜로운 임금이었기에 가능했을 테다. 오늘 날 우리의 대통령과 고위관료들은 어떤가?  오호통제라!  문제는 문빠에 안주하는 듯한 문재에 있다. 임숙영을 찾아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