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밟으며
노오란 은행잎 하나가 허공을 가르며 파문을 일군다.이윽고 한 떼의 미풍이 은행나무에 앉아 살랑대면 노랑 잎들은 우수수 비상하다 창공을 유영하곤 이내 사뿐히 길섶에 주저앉는다.
이름모를 나무들은 떠나버린 황갈색 잎들은 언제부인가 오솔길을 도포했고,
후미진 곳에서는 무리 지어 모여 앉아 열심히 재잘재잘 속삭이고 있었다.
지난여름 세찬 소나기에 알몸 두들겨 맞았던 아픈 기억,
깜깜한 밤 삭풍에 휘말려 영원히 미아가 될 뻔 했던 아찔한 순간들,
나른한 몸 오수에 들라치면 극성스레 노래하던 매미들의 심술,
세상에서 가장 예쁜이파리가 되고 싶었던 내게 무단 침입했던 애벌레들과의 사투
등 수 많은 사건들을 얘기하느라 가을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딱딱한 나무 표피 틈새를 비집고 연초록 싹을 내밀어 봄의 전령사가 됐다가,
더 할 수 없는 초록 세상을 만들어 뜨거운 햇살 온 몸으로 막으며
시원한 휴식처를 제공해 주던 푸른 이파리들이,
언제부턴가 이렇게 색색이 나비가 되어 나무와 나무사이를 맴돌다
허공에서 한껏 무도회를 열곤 여기 이렇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 줌 기력마저 자식들을 위해 소진시킨 피골이 상접한 어머님의 쇠잔한 모습처럼, 마지막 남은 정열로 곱게 몸단장하여
땅위에 내려앉아 잿빛으로 썩기를 마다하지 않는 낙엽들에
경외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기가 썩어 분해 되어야 비옥한 잠자리가 되고,
명춘에 태어날 새 싹들에 진한 젓줄이 될 것임을
그들은 기꺼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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