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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감악산 빙화(氷花)속의 내숭들?

감악산 빙화(氷花)속의 내숭들?

장군봉의 빙화

집(서울)문밖 나선지 세 시간 만인 정오쯤에 법륜사입구에 닿았다. 감악산 들머리이기도 한 법륜사입구는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진풍경을 연출하며 나를 반기는 듯싶었다. 하얀 산록의 앙상한 잡목들은 수묵화처럼 골짝을 휘둘렀고 그 가파른 골짝엔 하늘로 향하는 다리가 놓였다. 눈 덮인 감악산에 하늘로 향하는 출렁다리라니!

임꺽정봉의 빙화

귓구멍이 좁은 내가 감악산 출렁다리소식을 접하지 못한 탓이다. 어제 오전까지도 적설 탓에 출렁다리출입을 폐쇄했다니 행운인 셈인데, 쨍한 햇볕에 쌓인 눈이 물 반이 되고 있어 아쉽다. 출렁다리가 내가 버거운지 요동친다. 놈을 사뿐히 밟으며 진정시키면서 하늘을 향한다. 천길 발아랜 골짝길이 뱀처럼 계곡으로 숨어들고, 산마루에 포위된 하늘은 놀래서 새파랗다,

파주쪽에서 본 감악산출렁다리

출렁다리로 파주 땅을 밟고 되돌아서니 희끗희끗 묵화로 변신한 감악산마루가 환장하게 멋있다. 오늘 저기에 올라서서 하늘길을 찾을 테다. 법륜사 밑 운계폭포에서 얼음장을 뚫는 폭포소리에 세뇌하고, 고적한 사찰경내를 훑으며 산록을 파고들었다. 계곡을 파고들수록 눈은 하얀 골짝을 만들고 바위너덜 길은 엠보싱 융단을 깔았다.

운계폭포

발자국 따라 엠보싱너덜 길을 밟는데 물러터진 적설이 여간 미끄럽다. 온통 바위너덜이라 아이젠을 걸칠 수도 없어 죽어나는 건 스틱인데 땀을 짜내는 건 내 몸뚱이다. 노 마스크가 그나마 숨통을 살린다. 앉아 쉴만한 마른자리가 없다. 선채로 바나나 두 개를 꺼내 기갈을 달래는데 느닷없는 인기척 - 근처에 사는 산님들일까?

엠보싱 눈너덜길

벌써 하산하는 두 커플이 나무늘보처럼 눈 너덜 길을 아장댄다. 글면서 정상부근은 덜 미끄럽다고 나를 격려해주며 웃는다. 수북이 쌓인 눈들의 쉼터가 된 벤치, 검정 숯 아닌 흰 숯덩이를 담고 있는 숯가마를 몇 개나 지나쳐 오후 2시쯤에 정상에 섰다. 비문이 닳고 닳아 문드러진 몰자비(沒字碑)는 살짝 기우러져 빗돌대왕비라고도 부른다. 더는 설인귀(薛仁貴)사적비 또는 광개토대왕비라고도 한다나.

감악산정상, 갓 쓴 몰자비(설인귀비)가 부인들한테 인기가 시들해졌다

허나 젤 흥미 돋는 건 빗돌대왕비에 갓을 씌우면 아들을 낳는다고 1960대까지 부인들의 기도처로 성황댔다는 얘기다. 요즘은 딸을 선호해선지 아낙들 발걸음이 뜸하단다. 그 기도처가 거창한 구조물설치 공사판으로 어수선하다. 산정에 어떤 명분이던 커다란 구조물설치는 어설프고 기인(奇人)들의 기행(奇行)을 수없이 품은 감악산은 더욱 못마땅할 것이다.

감악산정상서 조망한 양구방면▲ 원주방면▼

장군봉을 향해 북벽계단을 오르는데 부서진 고드름조각이 수두룩 쌓였다. 웬 고드름인가! 하얗게 퉁퉁 부푼 나뭇가지가 눈물을 짜내며 고드름을 떨쳐내고 있었다. 상고대가 녹아 간밤에 빙화(氷花)가 됐고, 얼음 꽃이 햇살에 잘려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깝다. 좀만 더 일찍 왔더라면 나뭇가지의 빙화를 원 없이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빙화가 눈물을 짜내고 있다

아직 나무에 매달린 고드름이 햇살을 머금으며 영롱한 수정으로 찬란하게 빛내고 있었다. 얼핏 산란하는 무지갯빛이 상고대보다 더 아름답고, 그런 빙화의 덧없는 순간적인 운명이 애잔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슬픔까지 동반한다. 그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공유할 수 없단 애절함 땜일 것이다. 그 아쉬움은 문명발달의 발아(發芽)가 된다.

장군봉정상

무지개 빛깔 발하며 낙화하는 고드름은 자연의 신비여라! 자연의 순수는 그렇게 우리들 감성을 치유한다. 임꺽정봉을 오른다. 임꺽정굴을 설인귀굴 이라고도 하는데 설인귀(薛仁貴)는 애초 신라태생의 머슴신분이었다. 그는 잘 생기고 힘이 센 구척장사로 감악산에서 무술을 익혀 당나라에 귀화 고구려정벌에 나섰다.

고드름 깔린 벼랑바위를 올라야 장군봉이다

훗날 설인귀가 당나라를 위해 고구려를 친 걸 자책해 죽었단다. 하여 감악산 산신이 되어 나라를 지키라고 사람들은 추모비를 설마치(薛馬峙:지금의 雪馬峙)에 세웠다. 근디 관리부실로 비석이 망가지자 마을사람들이 야밤에 감악산정상에 옮겼다. 그 몰자비가 설인귀 추모비란다. 그 비석을 누군가는 광개토대왕비라고도 불렀다. 감악산이 신라와 고구려의 땅따먹기 싸움터여서다. 

한 폭의 묵화로 단장한 산능선이 멋지다. 신암저수지가 우리나라지도 같다 

임꺽정봉은 바위절벽 위라 올라서면 파주,원주,양구방면의 사위가 탁 트인다. 은신처로 이만한 데가 드물 터다. 의적 임꺽정은 버드나무가지로 생활세공품을 만들던 고리백정이었다. 명종때 도적떼의 우두머리가 되어 구월산을 비롯하여 감악산과 아래쪽 이천까지 활동했다.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쬠씩 나눠주는 약삭빠른 그가 은거한 데가 여기 바위굴이다.

벼랑위의 임꺽정봉을 오르는 계단이 아슬아슬하다. 모처럼 조우한 커플의 모션을 훔쳤다

감악정에서 전망대로 하산하다 미끄러져 엉덩이방아를 찧었다. 해빙눈길을 조심한다고 했는데 적설은 물 반이었다. 우측허벅지와 팔목 맛사지 하느라 한참을 쉬었다. 감악산은 조선조 초부터 덕적산(德積山)과 목멱산(木覓山)의 삼성(三聖)에 기양제(祈禳祭)를 올린 명산이었다. 세종도 1422년 감악산 산신께 제사를 지내고, 연산군은 사냥터로 지정 일반인출입을 금했단다.

감악산의 암송들 연애질은 긴장감이 솟는다

전망대와 쉼터를 밟고 선일재에 이르는 능선의 조망과 암송의 연애질은 미치도록 멋지다. 뛰어난 풍광에 취한 나는 아까 자빠져 땅겨왔던 허벅지 아픔도 사라졌다. 그나저나 김돈중(金敦中)은 어디쯤의 바위굴에 숨었다가 붙잡혀 개죽음 당했을까? 바위동굴에서 심부름 보낸 종놈을 기다리던 김돈중은 인기척에 굴밖에 나왔다가 소스라친다.

바위거인 등받이 노릇하는 소나무

정중부(鄭仲夫)가 군사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던 것이다. 군졸들이 김돈중을 끌어다 정중부 앞에 무릎을 꿇렸다. 중부가 돈중의 배때기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초죽음 된 돈중을 군졸들이 포승줄로 꽁꽁 묶어 개경으로 끌고 가서 군기감(軍器監) 앞 나무에 매달았다. 돈중의 옷을 벗겨 벌거숭이 몸뚱이에 난 털을 불태운다. 신명 난 중부와 군졸들이 사경을 헤매는 그를 사천가로 끌어다 단칼에 목을 베고 시신을 저잣거리에 매달았다.

수정 보다 더 영롱한 빙화 

1170년 8월 정중부가 구데타를 일으켜 무신정권을 세우면서 벌어진 앙갚음 이였다. 능선에서 부도골쉼터를 경유하는 청산계곡길을 타고 하산키로 했다. 남향받이 골짝의 눈이 많이 녹아 하산하기 좋지 싶어서였는데 암자부턴 바위너덜지대가 아닌 낙엽길이라 걷기 아주 좋았다. 김돈중의 아버지 김부식(金富軾)은 <삼국사기>저자로 고려조정의 막강한 문벌귀족 이였다.

그런 세도가의 김돈중이 1144년(인종22년) 섣달그믐날 문무백관이 참석한 나례(1년 액운을 털며 새해 맞는 행사)에서 무단히 황제호위병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불태웠다. 깜도 안 되는 중부가 훤칠하게 잘생겨 인종의 신임을 받는 게 배알이 뒤틀렸던 것이다. 수염 태운 수모를 당한 중부는 어금니를 갈다 구데타가 성공하자 김돈중 목에 현상금을 걸어 수배령을 내렸다. 이때 심부름 갔던 종놈이 현상금에 혹해 주인을 밀고했던 것이다.

돈중의 죽음은 부친 김부식의 부관참시까지 이르는 멸문지화를 당했다. 인간관계는 겸양과 관용과 배품으로 살아야 함을 김돈중의 수염사건이 깨우쳐준다. 세상에서 젤 무서운 무기는 말이다. 입조심해야 함이다. 요즘 우리네들, 잘 나간다는 분들의 입담이 구릴 때가 많다. 준만큼 받는다는 부메랑의 법칙은 진리다. 중부의 수염을 태운 벌로 자신의 몸뚱이 털을 불태워야했던 김돈중을 상상해 본다.

암자와 눈길

감악산은 비하인드스토리가 많은 내숭 깊은 산이다. 들머리였던 법륜사입구에 닿았을 때가 오후4시 반쯤 됐었다. 자빠지긴 했지만 참으로 기분 좋은 산행이었다. 축축이 젖은 낙엽과 물기 잔뜩 밴 적설을 밟는 전율은 별난 쾌감이라! 인적 뜸한 깊은 산골짝에서 오감을 열고 엠보싱눈길을 걷는 낭만은 아무나, 암 때나 공유할 수 없는 자연의 보시다. 겨울산행에서 얻는 맛깔난 추억을 하나 더 쌓은 오늘이었다.   2021. 03. 03

전망대서 본 감악정상, 장군봉, 임꺽정봉(좌로부티)
빙화가 낙화 돼 고드름으로 쌓인 계단 
▲양주쪽 출렁다리서 조망한 파주감악산의 운계정 ▼
운계정에서 조망한 감악산▼
법륜사입구서 올려다 본 출렁다리
운계폭포
운계폭포와 법륜사를 잇는 계단
▲법륜사경내▼
▲눈 차지가 된 쉼터의 의자와 숯 가마터▼
감악산에 숯 가마터가 많은 건 깊은 산골에 참나무종이 많이 서식해서리라
눈 침대
감악정
감악정서 조망한 장군바위와 능선
▲감악정상에서 조망한 수묵 산능선▼
장군봉과 임꺽정봉의 능선
솔잎 빙화
옹두라지 떡갈나무도 빙화를 피웠다
임꺽정봉서 조망한 악귀봉능선
임꺽정봉 오르는 벼랑계단
▲감악산 암송의 동거도 아슬아슬하다▼
바윌 뚫고 생존하느라 기형이 된 소나무의 고행이 상상을 절했다
만물상을 거느린 악귀봉이 보인다
감악산엔 토치카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정상 아래 안부의 토치카
법륜사입구-출렁다리-운계전망대-운계폭포-법륜사-묵은밭-안부-감악정-정상-장군봉-임꺽정봉-전망대-악귀봉-선일재-청산계곡길-법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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