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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세밑한파의 아차`용마`망우산

세밑한파의 아차`용마`망우산

고구려정에서 조망한 한강과 롯데타워

세밑 영하12도의 서울탈출을 시도한다고 삼국의 각축장이었던 아차`용마`망우산을 종주했는데, 매서운 한파는 손 시려 사진 찍기도 주저케 했다. 코로나19로 갈 곳 없는 한량들이 눈만 빼꼼히 내놓고 복면산적(?)마냥 휙휙 지나친다. 마스크는 얼음장이 돼 서걱서걱 콧잔등을 후비는 강치에 불온한 코로나19 탈출을 시도할 수 있을 청정산자락이 반시간 거리에 있는 서울시민들은 행운아들이다. 세계유수의 수도시민들이 꿈도 꿀 수 없는 자연의 은전인 땜이다.

바위산 아차산(峨嵯山)은 수많은 소나무를 키우느라 까칠까칠해졌고, 영양가 없는 바위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느라 소나무는 훼훼 꼬일 대로 꼬였다. 이 밋밋한 바위산을 차지하려고 고구려, 백제, 신라는 여차하면 코피 터져라 싸웠다. 고구려 영양왕 때의 (바보)온달장군도 여기 아차산성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화살에 맞아 전사했는데 후세 사람들이 “아차! 여기가 온달장군이 죽은 곳이지!” 라고 애석해하여 ‘아차산’이라 부르게 됐단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란 영화가 있을 만큼 유명한 온달장군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가난한 산골에서 품삯질을 하고, 땔나무를 팔아 눈먼 어머니를 봉양하던 온달은 매년 3월3일에 조정에서 치루는 사냥대회에 참가하여 1등을 했다. '바보'란 별명이 붙은 건 가난한 백성도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입지전적 인물이 구국전선에 나설 때 백성들의 기운이 욱일승천 해서 일부러 붙인 벼루였다.

현명한 장수왕은 그에게 대형(大兄)이란 벼슬을 주고 평강공주와 혼인을 시키려 했는데 온달은 고개를 살살 내저었다. “내가 홀어미님 모시고 살고 있는 산골은 여자가, 더더욱 공주가 살 수 없는 곳이다. 여우나 귀신이면 몰라도---” 라며 눈먼 어머니 생각을 하며 과분한 욕심을 부리고 싶질 않다고 사양했을 만큼 당찬 효자였다. 그러니 평강공주가 더더욱 홀딱 반해 찰싹 붙어 짝이 되었을 테다.

영양왕은 산라에 뺏긴 중량천과 왕숙천일대의 평야를 회복할 장수로 온달장군을 찍었을 만큼 그는 출중한 사내였던 것이다. 아차산 고구려정(高句麗亭)에 올라서면 한강지류와 드넓은 평야가 얼마나 욕심나는 곳이고, 그래 아차산이 엄청 중요한 요새인지를 실감케 한다. 허나 코로나19로 고구려정은 출입금지다. 매서운 칼바람이 정자를 휘돌며 승냥이소릴 낸다.

아차산4보루

한파에 울며 몸부림치는 소나무를 붙잡느라 바위는 부스러져 모래알을 날린다. 귀때기 후벼치는 바람을 뚫고 아차산정을 향한다. 아차산5보루에 올랐다. 한강 너머 하남시와 롯데월드가 솟은 강남일대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온달장군은 어디쯤에서 독전하다가 신라군의 화살을 맞고 전사했을까? 보루(堡壘)는 군사적요충지에 300m내외의 성을 쌓고 일대를 지키는 망루다.

아차산2보루 바위능선

아차산보루, 용마산보루, 망우산보루, 시루봉보루 등 몇 십 개의 보루가 능선에 띄엄띄엄 있는 이 산자락이 얼마나 중요한 요충지였는지를 말하고 있음이다. 백제의 위례성(慰禮城)을 고구려가 침략하여 한강유역을 수호하기 위해 쌓은 성곽이 보루의 효시였다. 아차산4보루를 밟고 헬기장에서 용마산(龍馬山)정을 향한다. 여기부턴 용마산보루다. 4보루와 3보루를 지나 용마정상(348m)에 섰다.

아차산4보루

태극기 휘날리는 정상에 산님 세 분이 한파와 맞서며 인증샷 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 분이 어슬렁 내게 다가와 사진촬영을 부탁하더니 내 사진도 찍어 주겠단다. 그렇게 해서 나도 복면산적으로 둔갑해 모처럼 인증샷 했다. 모두 코로나19덕이고 2020세밑 한파기념사진이다. 되짚어 망우산(忘憂山)을 향한다. 용마산5보루를 지나니 깔딱고개다. 제법 융숭 깊은 골짝이라 한참을 하강한다.

용마산정상의 필자

능선에선 보이지 않지만 저 아래 우측 산자락 어딘가에 쉐라톤 워커힐이 있고, 또 이승만대통령의 별장도 있을 테다. 6.25전쟁에 산화한 워커장군을 기리기 위한 워커힐과 이대통령의 별장이 자리한 한강을 낀 빼어난 명당자리로 유명한 산세다. 한강은 남과 북쪽을 잇는 수로로써, 국경방어선으로 삼국이 혈전을 벌리곤 했던 곳이다. 약수터갈림길을 지나선 망우보루와 수많은 묘역들 사이를 거닐게 된다.

한강과 하남시, 뒤에 검단산이 보인다

빈틈없이 들어선 묘지는 거의가 관리부실로 수풀이 우거져 폐묘가 됐다. 찾는 이 없는 망자에게 묘소의 의미는 뭘까? 아까운 산자락은 곰보딱지 얼굴이 됐다. 아니다. 망자들 사이를 구불구불 이은 성묘길은 산책길이 되어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1933년경부터 조성 된 ‘망우리 공동묘지’에는 한창 땐 3만기쯤의 봉분이 있었다는데 현재는 7500기정도 남아 있단다.

용마산정에서 조망한 북악`북한산

그 묘소들 사이에 독립운동가, 문화예술가 등 유명인사들의 묘역이 끼어 있는 역사와 문화의 보고(寶庫)여서 후손들이 삶의 귀감처로 삼아야할 장소가 아닐까 싶다. 그래야 선현들이 ‘근심을 잊고[忘憂]’ 잠들 수가 있잖겠나. 많은 사람들이 소풍 오듯 찾아 역사와 문화를 기리는 공원묘역이 되게끔 잘 가꾸었음 싶었다. 지금처럼 황폐화 돼가는 공동묘지여선 낯 부끄러워 씁쓸하다.

망우리공동묘지

인접한 일본도쿄 중심지의 묘역은 아름답게 꾸며진 휴게공원이라 소풍객들이 끊이질 안했다. 무연고묘는 정리하여 망우리공동묘역도 시민들의 소풍휴식처로 산뜻하게 단장하면 어떨까? 매서운 세밑한파에 봉두난발한 묘소의 수풀이 우우우~ 떨며 울고 있다. 폐허화 된 묘는 불량한 후손임을 웅변한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망우묘지공원도 세계문화유산에 충분히 등재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아차산에서 본 용마산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스웨덴 우드랜드 묘지공원과 마카오 신교도 묘지 두 군대가 등재돼 있단다. 아름다운 공동묘지는 예쁜 후예들의 얼굴이기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잘 다듬어야 하는 게 아닐까? 수 십개의 보루가 있는 드넓은 명산에 산책하기 좋은 '망우묘지공원'이라! 생각만 해도 신나는 서울의 자랑거리다. 하루 지나면 2021년 새해가 돋는다. 세밑한파가 코로나19를 동사시켰음 싶다. 2020. 12. 30

 

아차산5보루
'님의 침묵'의 만해한용운 부부묘
멀리 하남 검단산자락이 하늘을 가르고~
용마산에서 본 남산(우)방면
불암산 뒤로 수락산이 겹처 보인다
고구려정에서 조망한 강남시가지
용마산7보루 바위능선
아차산의 소나무 춤마당은 끝없이 펼쳐진다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 좌)는 총독부산림과에 근무하면서 임업발전에 기여했고, 산림과장을 지냈던 사이토 오토사쿠(1866∼1936, 우)는 식목일을 제정하고 미루나무를 들여왔으나 산림을 훼손해 미움 털이 박혀선지 묘소는 버려저 수풀이 우거졌다
화가 이중섭(1916∼1956)의 추모비(좌)는 두 아들의 모습을 새겼고, 우측은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의 가수 차중락(1942∼1968)의 묘소다. 1967년 TBC방송가요대상 신인상을 받아 단박에 스타가 된 그는 이듬해 뇌막염으로 27살에 요절했다.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은 나의 18번곡이다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1926∼1956)묘(좌)와 ‘백치 아다다’를 쓴 소설가 계용묵(1904∼1961)의 묘(우). 돌보는 자가 없는지 수풀이 우거졌다
도산 안창호선생의 묘
송촌 지석영선생의 묘
용마산에서 본 강북구시가지, 중량천이 시가지를 가른다
강남일대
망우산자락이 불암산과 수락산으로 이어진다
용마산정에서 조망한 북악산, 북한산, 도봉산(좌로부터)
 
노랑점선=산행코스(아차산역-고구려정-헬기장-망우고동묘지-망우고원묘관리사무소-약수터-헬기장-용마산-용마산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