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소귀천-구천계곡의 만추
우이동계곡을 거슬러 북한산우이분소에 이르는 골짝단풍은 아직도 화사했다. 흐린 날씨지만 엷은 햇살은 단풍잎의 실핏줄까지 투사하며 만추의 황홀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도선사갈림길에서 소귀천계곡을 향한다. 코로나19탓인지 마가교회도 대문빗장을 건채 단풍치장한 바깥 폼만 보여준다.
소귀천도 바싹 마른 채 희멀건 알몸뚱이를 마른 낙엽으로 치부를 가렸다. 가을의 멋진 단풍이 생각나서 찾았는데 나무들은 벌써 동면 속으로 빠져들었나 싶었다. 갈색이파리들이 이별이 무서운지 나뭇가지에 매달려 떨면서 골짝에 스산한 바람을 일으킨다.
골짝바위와 돌멩이들은 낙엽옷차림으로 호사스럽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는 발걸음소리가 적막한 소귀천골에 파장을 일으킨다. 푸른 잎은 단풍이 되고 단풍은 낙엽이 되어 골짝의 초목들 이불로써 모진겨울을 나면서 발아(發芽)란 잉태의 꿈을 꿀 것이다.
용천약수터에서 배낭을 풀었다. 플라스틱조롱박이 걸려있다. 코로나19땜에 약수터바가지는 대게 사라졌는데 소귀천은 멀쩡하다. 코로나19는 딴 세상일이라는 듯. 근데도 산님들이 없다. 물맛에 반 바가지를 들이켰다. 골짝을 파고들수록 마른 잎일망정 아직 때깔 살아있는 단풍나무가 무리지어 나타난다.
한참을 오르니 또 하나의 약수터 용담수 약수터다. 여기서부터 단풍골의 분기점인 듯 빛바랜 단풍일망정 만추의 정취를 물씬 뭉기고 있다. 산님 한 분이 배낭을 풀더니 페트병5개를 꺼내 약수를 받는다. 이 깊은 곳까지 와서? 근디 이 용담수는 ‘음용부적합’이란 팻말을 달고 있었다.
‘깊은 골 석간수가 불량?’이라니 라고, 무시하는 산님의 배짱이 옳거니 싶었다. 나도 한 모금 마셨다. 소귀천등산로는 돌`바위길이다. 그래 갈수기에도 먼지 없어 좋고, 발마사지 원 없이 해 좋다. 대동문과 진달래능선의 갈림길안부에 올라섰다. 대동문은 보수중이라고 출입금지 끄나풀로 얽어 매놨다.
그 핑계(?)로 넓은 쉼터도 출입금지다. 백운대등정도 할 수 없다는 안내판을 일찌감치 세워 놨다. ‘등산객들을 막아보자’는 지자체의 코로나19 트라우마일까?라고 설래 짚어 봤다. 암튼 나는 예정대로 구천계곡을 향한다.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로 빠지는 2km남짓의 구천계곡은 내겐 생소한 루트라 답사하고 싶었다.
구천골 능선에 들자마자 트위스트 춤추는 소나무들의 군무에 10여분쯤은 기분 째지게 좋았다. 허나 그건 험한 바위벼랑길의 유혹이었다. 급경사벼랑길은 단풍도, 물길도 말라 산님들이 기피코스여선지 한 시간 내내 마주치질 안했다. 송계별업(松溪別業)터에서 학생 한 분을 만나기 전까지-.
‘송계별업’이란 생소한 단어를 폰`검색창에서 뒤졌다. 인조의 셋째아들 인평대군 요(麟坪大君 㴭)의 호가 송계다. 그가 네 번이나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병자호란 땐 인질로 잡혀갔다가 귀국한 후 구천계곡에 세웠던 별장이란다. 그의 호를 따서 ‘송계별장’이라 했다.
그 무렵의 구천계곡은 왕실별장이 들어선 별장골이었는데 보허각(步虛閣), 영휴당(永休堂), 비홍교(飛虹橋)등이 있었단다. 뿐만 아니라 주변 바위엔 창벽(蒼壁), 송계별업(松溪別業), 한담(寒潭), 구천은폭(九天銀瀑)이란 글자가 음각돼 있으니 유명세가 대단한 계곡이었다. 송계별업 아래엔 사릉부석감역필기(思陵浮石監役畢記)라는 글씨가 있다.
사릉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의 묘를 일컬음인데 여기에 쓰인 석물채굴장이라는 뜻이다. 1699년 정월, 사릉을 조성하려 채석하는 관리와 석수의 이름도 새겨진 바위가 있단다. 이런 역사적인 장소인 구천계곡은 일제가 무분별하게 석재채취를 하면서 박살내어 폐허화됐다. 죽일 왜놈들은 별의 별짓을 다 저질렀던 거다.
그러고 보니 구천계곡의 바위가, 깊고 그윽한 풍광이 예사롭지가 않다. 하산하면서 눈이 띄는 깨진 그릇파편과 망가진 석상, 돌담흔적들이 300년 전의 구천골짝의 영화를 상상케 했다.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는 1454년 단종의 왕비가 되고 이듬해 단종이 삼촌한테 왕위를 내주자 왕대비로 강등된다.
글고 또 이듬해엔 사육신들의 단종복위운동으로 단종이 유배길에 들자 정업원(淨業院)으로 쫓겨나는 비운의 여자였다. 17살의 처녀가 16살의 총각과 결혼하자마자 아무 잘못 없이, 영문도 모른 채 신랑과 헤어져야 했던 것이다.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은 1456년 7월 24일 땡볕속에 영월유배길 오르려 창덕궁 돈화문을 나선다. 이 소식을 숭인동 안가에서 들은 정순왕후는 영동교로 뛰어나왔다.
허나 말 한마디도 못 하고 눈물로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군부인이 된 정순왕후는 매일 정업원 뒷산 동망봉(東望峰)에 올라 영월을 향해 무사안일을 기도한다. 허나 세조는 불안하여 단종을 곧장 사사하라 명한다. 그 비운의 정순왕후의 묘석을 채취한 곳이 구천골짝이다. 죽어 뼈도 삭았을 묘에 석물로 치장하면 뭐하나?
세조 같은 폭군`독재자는 현대사에도 우리 앞에 있었다. 독재자와 그에게 아부 충성한 간신들이 지금도 버젓이 실존한다. 왜놈보다 더 죄질이 나쁜 놈들인데 잘난 채 떵떵댄다. 구천계곡은 왕실용 채석장과 도요지가 있어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금표(禁標))가 세워져 있다. 그 금표를 금수(禽獸)로 바꿔 현대의 독재자와 간신들 집 앞에 세웠음 싶다.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인권을 탄압한 금수만도 못한 철면피들의 집 앞에 말이다. 인혁당사건으로 8명이 사형됐다 복원된 비극이 떠올랐다. 이준열사를 비롯한 애국자들의 묘소가 즐비한 북한산순례길에 잠시 들렀다. 치유의 숲길이다. 단풍이 마지막 열정을 사르고 있었다. 만추는 그 소슬한 기운으로 어제의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구천계곡은 만추에 산책하기 딱 좋은 융숭한 힐링처다.
2020.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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