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단풍 속으로

 

불타오르는 소요산(逍遙山, 587m)단풍은 오색의 향연이다. 일주문에 들어서기까지 불 지핀 단풍은 초록과 노랑빛깔이 듬뿍듬뿍 묻어나지만, 속리교를 건널 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까지 색의 잔치를 열며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골짝에선 물소리 대신 바람타고 딍구는 낙엽 부스럭대는 소리가 정겹다.

원효폭포는 찔금찔금 물길이 이어지고 원효대 앞엔 낙엽이 가랑비처럼 흩날린다. 언제 해탈문이 금강문으로 해탈했는지 모르되 이전의 아취형해탈문이 운치가 있었던 것 같고, 데크길 보단 울퉁불퉁한 암반골짝을 걷는 게 소요산책에 딱일 터여서 아쉽다. 사리탑을 지나 높은 담장을 치마처럼 휘두른 백운암을 곁눈질하다 자재암 바위문턱을 넘는다.

자재암

원효가 움막을 짓고 정진하다 폭풍우 치던 날밤 불현 듯이 나타난 묘령의 여인에게 색안(色眼)을 끼었다 혼쭐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 든 혼돈의 밤을 생각해봤다. 움막을 뛰쳐나와 청량폭포에 뛰어들자 여인마저 뒤따랐던 알탕의 소(沼)를 내려다본다. 갈수기라 사타구니는커녕 벌목도 못 갈릴 웅덩이다. 두 나신의 부자연스런 조화를 그려봤다.

청량(옥류)폭포

굴법당은 나한전이다. 눈을 부릅뜬 금강역사가 문지기 선 굴법당의 나한전에 얼굴을 드밀었다. 16나한 앞에 석가모니불이 불손한 나를 지켜보나 싶었다. 도둑처럼 사진 한 장 찍고나와 옆의 원효약수로 목을 축였다. 원효스님이 머물자 바윈 물을 뿜었단다. 차갑지도 않고 물맛도 없다. 하긴 순수천연수는 무맛이라지 않던가!

나한전

“차가운 물이 젖처럼 맛있다”라고 물맛예찬을 한 시인 이규보를 그려봤다. 원효가 굴에서 선정할 때 솟았다는 약수는 그 물맛 보러 소요객이 늘고, 이래저래 유명세를 탄다. 108계단을 오른다. 말이 108계단이지 지금은 하백운대까지 이어진 360계단도 넘을 것 같았다. 빡센 계단은 숨을 턱까지 차오르게 한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는다. 마스크를 벗었다.

나한전동굴 앞 약수와 108계단 입구

계단난간에 기대 파란하늘을 호흡할라치면 눈부신 가을햇살에 갈참나무이파리들이 간지럼 타면서 뒤척거리는 풍정에 빠져들게 한다. 가을햇살에 부대껴 고엽이 된 잎은 이소(離巢)를 꿈꾸고, 바람등을 탄 낙엽은 허공에 그림을 그리며 여행길에 드는 거였다. 여행은 미지를 향한 도전이다. 그 미답지를 향한 발길이 새로움의 시작이고 행복을 찾아가는 길목일 테다.

落葉不可掃 (낙엽을 그냥 쓸어서는 안 되네)

偏宜淸夜聞 (맑은 밤 그 소리 듣기가 좋아서 라네)

風來聲慽慽 (바람 불면 우수수 소리 내고)

月上影紛紛 (달 떠오르면 그림자 어지러워요)

                                                – 매월당의 한시<落葉>의 일부 -

낙엽을 별 생각 없이 쓸일이 아니다. 빡센 오름에서의 소요의 기쁨 찾기가 이곳만한 데가 드물어 이규보와 서화담, 양샤언과 이이, 매월당 같은 선지자들이 소요하기를 즐겨 자주 찾았던가 싶다. 하백운대서부턴 소나무들의 기똥찬 춤사위가 벌어진다. 그 솔 춤 사이로 스치는 나한대와 의상대, 공주봉이 지척이다. 연봉들은 고깔 옷으로 성장하여 소요객들의 맘을 훔치려 드니 어찌 소요산을 찾지 않겠는가!

소나무 사이로 나한`의상봉이 갸웃거리고~

‘원효(元曉)’라는 단어는 ‘첫새벽’이란 뜻이다. 원효스님이 서라벌 요석궁에서 요석공주와 사흘간 천당지옥을 오가다 허리춤 잡는 공주를 뿌리치고 북행하다 머문 곳이 소요산이다. 결혼3일만에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공주는 분황사에서 원효스님의 설법을 듣다 반했었는데, 아빠 무열왕이 매파노릇까지 했으니 삼년이면 모를까 사흘간의 천당지옥 맛 뵈기로 어디 가당치나 했을 텐가?

그래 공주는 여기까지 찾아와 구절터에서 ‘첫새벽’ 울림소리라도 들어야 했을 테다. 사랑의 승화는 무아봉공 이었을까? 요석공주는 지금도 소요산 깊숙이서 숨쉬고 있다. 소요산은 ‘첫새벽’의 무대다. 착(着) 없는 마음으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자재무애의 경지[자재암]에서부터 수행자인 원효자신의 나한대와 공주봉, 절친 의상봉이 나란히 해서다.

칼바위능선의 여산님

칼바위능선은 등산의 묘미를 한껏 일깨우는 코스다. 칼바위 날을 딛고 신경 날 세워 밟으며 암송의 연애질까지 공감하는 아찔한 등정은 스릴까지 공감할 수가 있어서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 나한대를 밟고 빠꾸한다. 아까부터 선녀탕골짝을 분탕칠 했을 단풍황홀경이 눈에 선해서다. 골짝은 매마르지 않았을 터라 빨갛게 불타오를 단풍정이 내 뒷덜미를 잡고 늘어진 거였다. 선녀탕계곡은 내려갈 수록 황홀한 색깔의 향연이었다.

나한대에서 조망한 의상대와 공주봉

언어도단, 황홀한 오색의 무대는 자연의 신비를 새삼 절감케 한다. 그 심통 부린 듯한 너덜바위길만 아니라면 말이다. 말라버린 선녀탕 밑 단풍차일 아래 자릴 깔고 망중한에 든 어느 산님의 소요산 오후가 원효일까?라는 망상을 해 보기도 한 선녀탕골짝 이었다. 오늘의 소요산단풍 하이라이트는 선녀탕골짝이었다.

코로나19로 취소된 ‘소요산단풍축제’는 소요하러 소요산을 찾는 소요객들한텐 행운일 수 있으려니! ‘난장판 축제’가 자연을 훼손하고 혈세를 낭비하는 ‘개살구축제’라는 걸 지자체만 모른 채 하나 싶어 아쉽다. 무분별한 축제행사 이젠 막 내릴 만하다. 축제 아닌 ‘소요산단풍향연’은 소요(逍遙)의 진정한 맛과 멋을 절감케 했다. 2020. 10. 28

선녀탕 아래 단풍차일 밑에서 소요의 극치를 즐기는 산님
너덜지대와 단풍
매표소 전 후
일주문
▲원효대▼
속리교의 낙엽
필자
금강문, (옛)아취형 해탈문이 더 좋았던 듯싶었다
원효대 단애에 붙박힌 소나무, 이 암송의 연애질은 요석과 원효의 넋일까? 하는 요상한 생각을 하게 했다
부도밭
수행처-백운암
▲자재암 & 나한굴▼
하백운대서 중백운대에 길에서 펼처지는 암송의 연애질은 눈길을 뗄수가 없다
하백운대서 조망한 나한봉, 의상봉, 공주봉(좌측으로부터)
상백운대
▲칼바위능선▼
나한대를 오르는 지겨운 덱계단
나한대
▲선녀탕골짝의 단풍퍼레이드▼
어느 산님커플이 자청 찍사를 함서 이 번엔 만세!포즈를 취하란다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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