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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1) 불암산(佛岩山) - 거암속의 사연들

1) 불암산(佛岩山) - 거암속의 사연들

천보사 코끼리바위의 마애불

수락산을 오를 때마다 마주한 불암산등정을 꿈꿨었는데 오늘 발길을 텄다. 오전10시, 상계역에서 양지관리초소를 들머리로 천병약수터를 향하는 제6등산로를 택했다. 불암산둘레길은 산책객들이 꼬리를 이으며 번잡하다. 나는 인적 뜸한 계곡길을 택했다. 등산로는 분명한데 초행인 나는 바윗길에 이정표도 없고  산님도 없어 길찾기에 몇 번이나 헤매며 그래 여간 초쵀해지기도 했다. 반 시간쯤 더듬었을까? 쪼갠 바위들이 쌓인  암벽이 나타났다. 불암산성을 쌓을 때의 채석장인가 싶었다. 

제6등산로 들머리 - 양지관리초소 호수

서울을 에두른 산들이 거의 화강암이지만, 불암산은 정상부터 아예 화강암큰 바위 - 마치 송낙을 쓴 부처의 형상이라 하여 불암산이라고 했다.  ‘천보산(天寶山)’이라고도 하는 불암산은 한강 지류인 한천(漢川)을 끼고 서쪽엔 북한산과 도봉산, 북쪽으론 수락산(水落山)과 이웃한다. 울창한 숲 속에서 희멀겋게 자웅을 들어내는 거대한 바위들은 한껏 풍류의 매력을 뽐낸다. 그들이 품고 있는 사연들을 안다면 불암산에 거적을 깔고라도 살리라. 

9부능선 암송 아래 노원구시가지

하여 불암사를 비롯한 사찰암자들이 왕실의 능침 내지 비빈(妃嬪)이나 고관대작의 제사를 지내는 원찰 노릇을 했던 왕사(王寺)였다. 산중에는 조선 중종의 비인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泰陵)과 명종의 능인 강릉(康陵)이 있다. 태릉의 유래가 여기서 명명됐을 테다. 이 거대한 바위산의 암벽과 괴이한 바위에 수많은 마애불이 탄생하고, 수도자와 중생은 죽어 그 바위 속에 부도(浮屠)가 된다.  주검은 흙이 아니라 바위가 된 거다. 

불암사 근처의 거석, 기묘한 형상에 부도(우측 면에 두 기가 보인다)까지 품은 기암괴석이다
부도는 30cm×60cm넓이쯤 될 직사각형의 음각형태다

불암산엔 거대한 부도바위들이 있다. 정으로 바위에 비문을 새기고 구멍을 뚫어 화장재[사리]를 안치하고 다시 바위로 막은 부도는 기발난 자연친화적인 장례문화다. 이름만 새긴 비명과 화장재구멍의 부도는 반에 반평(30×60cm)쯤이면 족하다. 정부에서 불암산 바위에 부도밭을 조성 임대하여 부도공원을 만들면 좋을 듯 싶다.  소풍가듯 등산을 하며 삶과 죽음이 일체란 연민에 들게 될 게다. 바위부도공원은 더럽혀지지도 망가지지도 않는 자연친화적이다. 관리비 등의 부대비용도 필요찮다.

커다란 바위와 바위를 연결한 바위길을 걸으며 부도공원을 생각해 봤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종을 이룬 숲 바닥은 상수리꼬투리가 수북이 쌓였는데 그 많은 알밤들은 어디로 갔을꼬? 주인인 산짐승들도 귀신이 곡할 노릇인지 청설모가 이따금 나타나 눈깔을 부라린다. 드뎌 능선을 타고 초록숲사이로 기웃대는 시가지를 훔치다 느닷없는 공사판에 어리둥절해 졌다.  불암산성 마루는 복원공사 중인 모양인데 볼썽사나운 임시막사와 어지럽게 널린 돌멩이가 세월 흐르는 걸 잊은 성싶었다.

불암산성복원공사(좌)와 샛길

옛 성터와 봉화대는 어디쯤이고 복원은 언제 끝날꼬? 백성들 안위와는 상관 없는, 백성들의 고혈만 빨아먹은, 있으나 마나한 산성을 꼭 복원해야 하는지?  "국민을 위해 목숨 바쳤다는 왕과 대통령은 없었다"고 추석무료공연 피날레에 고언한 가황 나훈아가 문득 생각났다.  성곽안의 왕과 고관들은 뺑소니치기에 혈안이었다.  깔딱고개를 넘어 두꺼비바위를 좇는데 천연바위를 깐 계단이 운치가 넘친다. 그 멋스러움에 눈살 찌푸리게 하는 비닐포장 움막가게는 또 뭣꼬? 계곡의 무허가가게들은 환경정화로 철거됐는데 말이다.

거북바위, 거석으로 이뤄진 산이라 왕거북이라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 등의 그림자문양이 살아 숨쉰다.

그나저나 거대한 거북이는 바위계단을 오르느라 기진맥진이다. 여기서부턴 거대한 바위산 위용을 절감케 된다. 바위의 연인 소나무들의 포퍼먼스와 그 틈새로 파노라마 치는 하얀빌딩 시가지 풍경은 빡센 바위 오름의 고행의 보상이다. 북한산과 도봉산과 수락산자락의 서울풍경은 아무리 봐도 싫지가 않다. 과히 높지도 않은 불암산이 이렇게 멋진 풍광으로 산님들의 마음을 꼬시기에 사시사철 인파는 꼬리를 잇나보다.

남서쪽으로 북한산과 도봉산이 병풍인냥 휘둘렀다

불암산의 거암들은 천태만상으로 발길을 붙잡는데 풍화작용만으로 생길 수 없는 애초부터 자연의 오묘한 걸작일 것 같다. 벌레들이 파먹은 듯한 다양한 구멍들, 그릇모양의 거친 홈, 치마 주름살, 일렁이는 밭고랑, 동물의 아가리와 몸뚱이들이 억겁의 시간을 잇는다. 어떤 거대한 바윈 바위처마를 만들어 햇살과 비를 가리고, 커다란 굴을 만들어 호랑이 아지트가 됐다. 그런 바위들을 포개고 쌓아 우듬지를 솔 가사를 쓴 부처형상을 만들었지 싶다.

뎈계단이 없었을 때 풍화로 패인 낙수자국은 동아줄과 함께 식겁할 등로가 됐을 테다

“천불산(千佛山) 높푸르러 겹쳐졌는데/ 발자국 미끄러워 칡을 잡는다

구름이 노목을 덮어 매 집이 높고/ 물이 샘에 흘러와 용이 숨었다

손님은 시를 쓰려 석탑(石塔)을 쓸고/ 스님은 예불(禮佛)하며 종을 울린다

올라가 임해 보니 동남쪽이 모두 보인다/ 건곤(乾坤)을 굽어보니 가슴 시원하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양주군불우(佛宇)조에 보면 누군가가 읊은 시다.

- 불암산 석천암 마애미륵불 앞에서, 표운 -

석천암 대웅전뒤처마와 마애불상

1950년, 북괴의 기습공격으로 서울이 위태할때  육사생도대가 6/28일부터 9/21일까지 내촌-태릉전투에서 밀려 후퇴하여 "이 곳에 남아 끝까지 싸우자"며 불암산에 은거 유격활동 한다. 서울시민들과 아군이 철수할 시간을 벌기 위해 적의 후방을 교란할 목적이였다. 그들은 후퇴하라는 명령도 아랑곳 없이 불암산에서 모두 장렬이 전사한다.  그들의 용맹하고 숭고한 영혼을 '호랑이 유격대(Tiger-guerrilla unit of Bulam mountain)'라 지칭했다.

호랑이 유격대의 은신처인 '제1.2호랑이 굴'(우측1, 좌측2)

조선조에 오위제란 병역제도가 있었는데 1882년에 고종이 개편, 해체된다.  오위장(五衛將) 이장군(李將軍)이 석천암 옛터에 암자를 짓고 수도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긍께 불암산은 승군(僧軍)을 모집 훈련시킨 무예도장이기도 했다. 그 승군들이 호국불사의 역군이 되고 전쟁땐 호국장병이 된 게다. 그 호국의 혼이 지금의 육사생도에 전수 됨이다.

그래 매년 6월6일 불암사에서 호랑이 유격대원들의 영가를 천도하는 위령재를 지내고,  그들의 아지트 곳곳에 안내판을 세웠는데 석천암부근에 산재해 있다. 화랑대와 육사가 불암산자락에 웅지를 튼 소이일 것이다. 숭고한 혼백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불의 산’을 예명으로 쓴 배우 최불암씨는 노원구자연공원에 있는 시비(詩碑)에 이렇게 적었다.

태극기 휘날리는 불암산정상

“내가 광대의 길을 들어서서 염치없이 사용한/ 죄스러움의 세월, 영욕의 세월

그 웅장함과 은둔을 감히 모른 채/ 그 그늘에 몸을 붙여 살아왔습니다.”

불암산은 이래저래 사랑받고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명산이라. 산정에 태극기 휘날리는 산이 몇이나 된가? 석장봉쪽으로 하산 폭포약수터를 들러 당고개역을 잇는 제3등산로를 하산길로 택했다.

9부능선 쉼터바위에서 조망한 서울남부, 멀리 남산타워가 작대기마냥 꽂아졌다

근디 닳고 헐은 마사토등산로는 정비가 안된데다 오살맞게 급경사를 이뤄 신경 날서게 했다. 불암산에 이런 육산 비슷한 데가 있다니? 이 길이 외면 받을 까닭을 알만 했다. 하산 한 시간여 동안 조우한 산님이 없었다. 약수터부터 당고개역까진 수풀 우거진 골짝이라 볼거리도 없었다. 그래도 오늘 산행은 멋있고 감칠맛 나는 행복감이 충만한 시간이였다.

2020. 10. 07

우주선(비행접시)바위
부도바위
양지관리초소 호수를 들머리로~
8부능선의 움막은 불암산성과 등상로정비 인부들의 쉼터 겸 식당
아까 지나온 불암산성과 봉화봉과 서울
뎈 계단용 철재를 지게에 지고 8부능선을 오르는 인부들이 있어 산님들은 편한 산행을 할 수 있음이라
▲이 거암들도 부도바위로 조성하면 어떨까? 명당자리나 묘지가 필요 없고, 영묘원의 닭장 같은 신세와 유지비도 면할 테다 ▼
불암산정 오르는 뎈계단, 전망이 좋아 힘겹지가 않다 ▼
서쪽시가지와 북한산
정상에 태극기 휘날리는 곳이 몇군데?
롯데타워도 얼굴을 내밀고
석장봉에서 - 필자▼
수락산이 잡힐 듯 - 연계산행꾼도 많다
약수터쪽 당고개등산로는 급경사에 정비가 안된데다 마사토여서 여간 고역이였다
제3등산로에서 한 시간 내내 첨으로 조우한 홀로 여산님,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