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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구곡빙폭 - 문배마을 - 봉화산

 

구곡빙폭((九曲氷瀑)-문배마을-봉화산

얼다가 녹기를 반복한 빙판길은 영하10도를 넘나든 새벽녘에 내린 눈에 덮여 살얼음길이 됐다. 강촌역에서 구곡폭포를 향하는 눈 덮인 자전거도로에 눈발 하나씩 흩날리고 있어, 호젓한 트레킹을 즐기고 있는데 느닷없이 미니제설차가 나타나 골짝을 진동시킨다. 괴물이 휩쓴 곳은 반들반들 비추는 빙판길을 들어낸다. 

쌓인 눈이 치워진 빙판길 걷기가 신경 곧추서게 해 산뜻했던 산책의 즐거움이 사라졌다. 매표소주차장까지의 반시간여를 그렇게 조신하게 설경을 헤쳤다. ‘물깨말구구리길’에 들었다. 산님들 몇 분이 보인다. 입구의 인공폭포는 빙벽작품이 됐다. 인공작품도 혹독한 자연이 엄습하면 상상도 못할 아름다운 구조물로 변한다.

문배마을의 생태연못

강촌은 물가마을-물깨말의 변음이고 폭포는 골짝 아홉 굽이를 돌아서야 있다. 그 구곡폭포 뒤 깔딱고개를 넘어 문배마을과 봉화산을 한 바퀴 휘도는 등산로7.26km를 ‘물깨말구구리길’이라 한다. 아홉 굽이 골짝의 물길은 빙하로 변했고 산책길도 살얼음길이 됐다. 구꼭정(九曲亭)을 통과하자 요란한 폭포의 굉음이 진동할 텐데 얼어붙은 협곡은 정적이 흐른다.

물깨말구구리길 입구의 인공폭포

바위를 뛰어넘는 청정물길소리와 폭포의 굉음이 불협화음으로 골짝을 흔들어야 살아있는 듯한 협곡의 맛깔에 취하는데, 겨울협곡은 한 폭의 묵화로 탈바꿈 해서 생동 맛이 떨어진다. 계단을 오른다. 고요가 낭창하다. 폭포는 사라지고 괴상한 50m빙벽조각품이 하늘로 치솟았다. 겨울 혹한만이 창조하는 빙폭(氷瀑)이다.

구곡폭포에 오르는 계단

빙폭의 장대함에 압도당한다. 허나 오늘은 장대함에 도전하는 사람도 없다. 코로나19탓에 빙벽을 타는 알피니스트들은 기똥찬 놀이터(?)를 잃은 셈이다. 까마귀 한 쌍이 뻥 뚫린 빙벽구멍을 통해 비상하고 있다. 된비알 깔딱고개를 오른다. 빼곡하게 들어 찬 시꺼먼 잣나무 숲이 골짝을 메웠다. 지그재그 미끄러운 눈길은 아이젠착용을 번민케 한다. 눈길이어선지 깔딱고개 넘기가 상당하다.

빙폭이 된 구곡폭포 앞의 필자

깔딱고개를 넘어서자 조붓한 산자락에 띄엄띄엄 붙박인 산촌이 얼굴을 내민다. 문배마을이다. 문폭포(구곡폭포의 옛 이름)뒷마을이라서 문배(文背)마을이라 했는데 1960년대까지도 울`나라에서 젤 행복지수가 높았던 곳이었지 싶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자동차와 기차를 못 본채 비행기만 보고 산 오지였다.

문배마을

하여 6.25전란도 까맣게 몰랐던 마을이었다. 자급자족할 만한 청정지역의 토지에서 비교우위 할 만한 게 없는 고만고만한 이웃끼리의 소박하고 분수껏 산 삶은 과욕이 없어 행복했다. 순수자연인의 행복은 문명이라는 이름의 탐욕이 하나씩 앗아간다. 오지 문배마을도 문명인(?)이 들락대면서 물욕을 퍼트려 행복감이 줄어들었을 테다.

하얀 카팻을 깐 생태연못. 구곡폭포의 수원지인 셈이다

마을의 순수미가 산님들의 발길 속에 입소문나면서 민박손님받기 경쟁이 되고, 집집마다 원색의 현수막을 명찰마냥 걸쳤다. 돈의 유혹에 경쟁하는 삶은 그들이 옛날에 구가했던 행복지수를 야금야금 갉았을 테다. 문명은 탐욕을 낳고 물욕은 불행의 씨앗이다. 명패처럼 ‘김가네’ ‘이가네’란 현수막을 두른 문배마을에 생태호수가 있다.

구곡폭포의 수원지이기도 한 호수는 하얀 눈에 덮여 순수의 옛 마을 정취를 잃지 않고 있음 같았다. 그 생태호수에서 봉화산행길을 묻는 여인을 조우했다. 설산을 혼자 트레킹 하는 당찬 여심을 가늠하다가 거북이걸음의 그녀를 앞서갔다. 반시간여 후, 봉화산입구 의자에 쌓인 눈을 털고 배낭을 풀어 기갈을 때웠다.

오후1시반이 지났었다. 아까 그녀가 나타났다. 어째 쬠 미안했다. 저녁밥을 맛있게 먹으려 부러 점심을 거른다는 그녀에게 빵조각과 오랜지, 육포를 나눴다. 거북이걸음의 그녀가 홀로산행을 즐기고 나아가 해외트레킹까지 나선다는 사실에 난 반신반의 하다 경험담에 솔깃하며 놀랐다.

홀로여행을 즐기는 당찬 여인

아니 그보단 홀로해외여행을 즐긴다는 그녀의 삶이 대견하고 부러웠다. 한비야씨 생각이 문득 났다. 능력이 있으면 자기가 하고픈 삶을 좇는 솔로족의 일생이 성공한 삶일 거라고 난 흠모한다. 단아한 작은 체구에 그녀의 어디서 그런 의지와 용기가 솟을까? 하고 곁눈질을 했다. 여성의 한계에 인색한 나의 옹졸한 지론이 민망했다. 봉화산정상에 섰다.

봉화산굴참나무가 표교버섯 종패를 심은 듯 기이하다

옛날 봉수대가 있어서였던지 편편한 정상에 십 여명이상의 단체 산님들이 왁자지껄했다. 개인, 단체사진 찍는 소동에 코로나바이러스는 도망쳤지 싶었다. 그래 코로나19탈출(?)환호성일까? 라고 나도 동조 하고팠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여기선 공염불일 수도 있다. 검봉, 강선봉, 삼악산준령이 묵화로 펼쳐졌다. 심호흡한다.산님이 찍어 주는 인증샷에 나는 만세를 불렀다.

필자

아이젠을 걸쳤다. 미끄러운 하산길은 조심해야 한다. 날씨가 많이 풀려 장갑을 벗었다. 봉화산입구주차장을 향하는 임도는 문배마을을 잇는 유일한 자동차산악도로다. 문배마을주민들에게 문명을 여는 길임과 동시에 불행도 숨어들은 산길인 셈이다. 근디 이 산길에도 영화칼슘을 살포했다. 더구나 염화칼슘 한 포대를 터뜨린 채 갓길에 방치해놨다. 오염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었던가? 북적대지 않는 설산트레킹은 자신을 온전히 느낄 수가 있어 좋다.

물개말구구리 협곡의 팬션

역사는 길 위에서 만들어지고, 행불행의 역사를 만드는 건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몫이다. 오늘 ‘물깨말구구리길’에서 조우한 여산님이 홀로 오붓하게 즐기는 거북이걸음의 미학과, 의연한 의지의 멋을 사랑하는 듯한 행복을 엿본 게 보너스였다. 그녀는 길위의 역사를 알차게 쓰고 있음이다. 코로나19탓에 홀로 국내여행을 즐긴다는 그녀의 행보가 줄차게 이어지길 염해 본다.            2021. 01. 30

미니 재설차가 산책길 적설을 치워 빙판길을 들어낸다. 괜한 짓거리 하나 싶었다
하얀 눈밭골짝 뒤로 검봉산이 얼굴 내밀고~
인공폭포
구곡정
돌탑 앞에서~. 오늘은 왠지 찍사쟁이 청탁이 많아 가는 곳마다 인증샷을 했다  
구곡빙폭의 위세는 협곡을 얼게해 야챠하면 쨍그렁 부서질 것 같았다 
빡센 잣나무숲길은 지그재그 기어오른다
소복성장한 바위옷
▲봉화산정의 인증샷 풍경▼코로나19는 저 세상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