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세한도(歲寒圖) 앞에서

‘한겨울 지나 봄 오듯 - 세한(歲寒) 평안(平安)’이란 표제를 걸고 국립중앙박물관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특별전을 열고 있다. 추사(완당 阮堂)가 제주도유배생활 4년째였던 1844년에 그린 세한도는 제자 우선,이상적(藕船,李尙迪)에게 선물한 그림이었다. 초라한 집 한 채가 고목 네 그루 사이에서 겨울한파를 견디고 있는 간결하고 스산한 그림이다.

박물관 기획전시장입구

언뜻 무명화가의 스케치 같았던 세한도를 나는 어릴 때부터 접하다가 성인이 다 되어 그림에 깃든 심오한 정감을 이해하게 됐다. 간결하고 절제된 그림의 함의(含意)와 인고의 아우라에 심취하게 됐었다. 그런 세한도 진본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반인에게 선을 뵈고 있어 벼르던 발길을 텄다. 강추위와 코로나19탓에 관람객이 많지를 않아 좋았다.

세한도

열자쯤은 될 두루마리 세한도를 펴놓은 전시대 앞의 관람객들은 좀체 자릴 뜨지 않아 정체가 심한데, 사회적 거리두기는 기다림이란 인내를 세한도의 아우라 앞에서 묵상하는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봤다. 암튼 세한도는 우측 ‘歲寒圖’글자부터 내게로 다가선다. 서예에 문외한인 나도 추사의 친필 歲寒圖에 시선을 멈췄다.

170여 년 전에 쓴 필적이 바로 얼마 전에 썼나싶게 선명하고 살아있다. '歲寒圖'와 좌측의 ‘藕船是賞 阮堂(우선 감상하시게 완당)’의 글씨가 추사의 친필이다.  완당(김정희)이 우선(이상적)에게 주는 그림임을 명기한 거다. 그리고 추사는 그림 옆에 발기문을 썼다. 추사의 친필을 눈 앞에서 직시한다는 행운이 암 때나 무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170여년 동안에 세한도를 직시한 사람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것이다.

장목의 세한도 감상글, '완당 세한도, 은재거사'

귀양살이 중인 초라한 자신에게 쏟는 이상적의 정성에 감격하여 고마움을 추사는 이렇게 긴 발기문에 썼던 것이다세한도에는 청나라문인 16인과 우리나라 문인 4인의 감상글을  이어붙여 두루마리로 꾸몄다. 시쳇말로 댓글인 셈인데  이상적이 연경에 갈때 세한도를 휴대하여 청나라문인들에게 보여주자 감탄하여 쓴 찬사였다. 두루마리는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축 바로 옆에는 歲寒圖의 감상 글을 남긴 청나라 문인 중 한 명인 은재 장목(張穆)(1805~1849)이 쓴 완당 세한도은재거사라는 제첨(題簽)이 있다.

지난해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집(大雲山房集)두 책을 부쳐주고 올해 또 <왕조경세문편(皇淸經世文編)>을 보내주었습니다이 책들은 세상에 늘 있는 책이 아니고 천만리 머나먼 곳에서 몇 해를 두고 구한 책들로 일시에 얻은 것이 아닙니다게다가 세상의 흐름은 온통 권세와 이득을 좇을 뿐입니다이 책들을 구하기 위해 이렇듯 마음을 쓰고 힘을 썼으면서도 권세가 있거나 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보내지 않고 바다 멀리 초췌하고 깡마른 유배인에게 보내 주었습니다

공자께서는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소나무와 측백나무는 본래 사계절 없이 시들지 않는 나무입니다날씨가 추워지기 이전에도 소나무와 측백나무요추위가 닥친 후에도 똑 같은 소나무와 측백나무인데성인께서는 특별히 날씨가 추워진 뒤에 칭찬하셨습니다지금 그대는 귀양 이전이라고 더해준 것이 없고귀양 후라고 덜해준 것이 없습니다성인께서 특별히 칭찬하신 것은 시들지 않은 곧은 지조와 굳센 절개 때문만이 아니니 추운계절이라는 시기에 특별히 느끼신 점이 있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완당이 우선에게 쓴 세한도 발문-

김준학의 글

세한도는 19세기후반 이상적의 제자인 역관 김병선에게 전해졌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김준학에게 전해졌다. 김준학은 세한도 앞쪽에 제목과 시를 쓰고 세한도 뒤쪽 청나라 문인들의 감상 글 사이에 두차례 시를 적어 넣었다. 김준학은 1914년 1월과 2월, 연이어 글을 쓰면서 자신이 세한도의 소장자임을 명시했다.

이시영의 글

추사가 감동함은 마땅하다그러나 이는 오히려 스승과 친구친지들 간의 성패와 부침에 관한 것이다산천도 문득 변하고 물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이때 지조를 지키면서 한겨울의 절의를 대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내가 이 그림을 보니, 문득 수십년동안의 고심에 찬 삶을 겪은 여려 선열들이 떠올라서 옷소매로 눈물을 닦고 말았다.  -이시영(1869~1965)

세한도는 조선 최고의 문인화(文人畵)로 평가받는다. 문인화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합축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때문에 김정희는 가슴속에 천만권의 책을 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했다. 김정희는 세한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추위와 시련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아내에게 보낸 추사의 한글편지

제주도로 유배를 간 후 김정희는 부인 예안이씨와 한글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안타깝게도 예안이씨는 김정희가 편지를 쓴 한 달 뒤인 11월13일에 세상을 떠났다. “당신이 쾌히 나으신 소식을 밤낮으로 기다리오. 나는 갑자기 피부병이 발작하여 온몸이 아니 난 데가 없이 간지러워 밤에 잠을 못자고 고생이오”                           -제주도에서 아내에게 보낸 한글편지 1842. 10. 03-

손재형의 '해산풍정'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은 김정희의 서화 감정과 금석연구를 계승하며 글씨를 쓰고 인장을 새겼다. 오세장은 김정희가 옛 예서를 따라 쓴 작품에 제목을 쓰고 글씨의 외형이 아닌 그 정신을 닮고자 한 김정희의 임모비결을 적었다. 손재형(孫在馨 1903~1981)은 서예라는 명칭을 처음 주창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체를 확립한 인물이다. 손재형이 쓴 바닷바람이 잔잔하다는 뜻의 ‘해산풍정’은 점, 선, 획의 변화가 다양하지만 전체적인 구상은 조화롭다.

추사가 고도(孤島) 제주도에서 8년동안 유배생활을 했을 때 사신으로 연경(燕京·베이징)을 왕래하면서 귀한 서적을 구해 전해준 이상적은 물론, 차(茶)의 대가인 초의선사(草衣禪師)와 제자 화가인 소치(小癡) 허유가 제주도 귀양처를 방문하여 그를 위로해줘 감흡했다.

1786년에 태어난 추사는 24세에 호조참판인 아버지 김노경(金魯敬)이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갈 때 동행하여 연경의 학자들을 사귀었다. 34세에 대과에 급제, 동부승지에서 병조참판에 올랐으나 1840년 윤상도(尹尙度) 상소사건에 연루 당파싸움의 희생물로 제주유배 길에 들었다.

 세한도는 이상적의 제자 김병선에게 넘어갔으나 1930년대에 경성제대사학과 교수였던 일본인 후지츠카 치카시(藤塚璘)가 사들인다. 후지츠카는 1943년 귀국하면서 세한도를 비롯한 추사 서화 수천 점을 같이 갖고 갔다. 그 소식을 접한 서화가 손재형(孫在馨 ·1902~1981)이 도쿄로 후지츠카 집을 찾아가 반환을 간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손재형은 100여 일 동안 매일 찾아가 애원했고, 그 정성에 감복한 후지츠카는 무상으로 작품을 내줬다.

그렇게 세한도가 고국에 온 몇 달 뒤에 후지츠카의 서재는 미군 공습으로 폭격을 맞았으니 천재일우의 행운이었다. 세한도는 손재형의 손에서 미술품 수집가인 손세기(孫世基·1903~1983)씨에게, 그의 아들 손창근(孫昌根·1929)씨가 수장하고 있다가 2020년 국가에 기증했다. 이번 특별전은 손창근의 국가에 헌납을 기념하는, 나아가 170여년을 지켜온 문향을 일반인이 누릴 수 있게 한 뜻 깊은 행사다.

아버지는 손세기씨는 1974년 서강대에 고서화 200점을 기증했고, 아들 창근씨는 2008년에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연구기금으로 1억을 기부했었다. 2012년에는 50여 년 간 가꾼 산림 200만 평을 국가에 헌납하고, 2017년에도 50억원의 건물과 1억원을 카이스트에 기증했다. 2018년엔 아버지와 자신이 수집한 국보·보물급 유물 304점을 국가에 기증한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한 기부천사다.

아무리 많은 금화나 보물도 영원히 소유할 순 없다. 잠시 보관할 뿐이라 잘 보전하여 세상에-인류의 품에 안겨줘야 한다. 손창근씨 가족은 그 명예의 길을 선택함이라. 우리들이 귀감삼아야 할 이 시대의 교훈일 것이다. 그분들이 심혈 기우려 보관해줬기에 엊그제 그린 것 같은 세한도를 목도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이다.  2021. 01

# 장재선의 글<새한을 건너는 법>을 참고했슴

상설전시관 로비
거울못
중앙박물관입구
거울못의 청자정
박물관대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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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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