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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설원의 두물머리 물래길에서

설원의 두물머리 물래길에서

북한강철교에서 본 북한강빙하

땅거미 짙게 내린 어제 초저녁, 수은등은 함박눈의 군무에 휩쓸려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영하12도를 밑돌 거라는 예보는 늙은이에게 길고 차가운 겨울밤을 지새우는 마중물이 됐다. 어딜 가서 눈 속에 한바탕 뒹굴까? 궁리하느라~!

설원의 연방죽

하얀 설원을 발 부릅뜨게 걷고 싶었다. 가능하담 뉘 발자국 없는 설원을 달리고 싶었다. 칠칠치 못한 발자국을 남기며 그렇게 남긴 설국의 흉터를 되돌아보는 나를 반조하고 팠다. 동이 텄다. 간밤 초저녁의 눈발은 매서운 한파로 체감온도18도를 오르내린단다.

용늪의 겨울나기 오리떼

설국 찾아 열차에 올랐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몸 섞는 두물머리를 향했다. 상상의 나래 속에 탁 트인 설원이 펼쳐진 양수리 설원의 눈밭은, 발등까지 덮은 눈을 밟는 전율이 겨울의 심장을 느끼게 했다. 뿌드득 밟히는 눈 신음소리는 내가 체감했던 잊을 수 없는 겨울추억들을 파노라마 시킨다.

배다리, 건너편 세미원은 코로나19로 임시휴원

초등학교4년 때였지 싶다. 적설량 많기로 유명한 내 고향 영광의 그해 겨울엔 하늘 똥구녕이 터져 눈 폭탄이 쏟아졌던 모양이다. 허벅지까지 차오른 설국을 나는 머슴 병용씨 등에 업혀 등교했었다. 1.5km쯤 될 등굣길은 깨끗한 설국이라 나는 신이 났었다. 힘겨웠을 병용씨 생각은 손톱만큼도 안했다.

두물머리길

그렇게 열심이었던 건 선친의 학구열 땜이었고, 그렇게 6년이 지난 졸업식장에서 난 유일하게 ‘6년정근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 선친께 효도 한 번 못한 채 지금 난 그때의 선친보다 훨씬 늙어버렸다. 450여살 됐다는 느티나무가 설원에서 앙상한 파수꾼이 된 그림으로 나를 맞는다.

두물머리 아이콘인 느티나무와 황포돛대

넓고 넓은 두물머리 호반은 꽁꽁 얼음장이 됐다. 그 얼음장위를 눈바람분패가 휩쓸어 백지의 설국을 창조했다. 이 살을 에는 강치한파에도 두물머리는 적요하다. 얼음장 아래서 북한강과 남한강은 몸을 섞느라 몸부림 칠 텐데, 그걸 지켜보는 느티나무도 뼛속까지 얼 텐데 침묵한다.

남한강쪽에서 본 두물머리

침묵은 살아있는 것들의 최후의 순수언어다. 감정이 궁극에 달하면 할 말을 잊는다. 오직 철딱서니 없는 한파의 포효소리뿐~! 깨복쟁이인 채 체감온도20도의 한파를 버텨내는 느티나무를 우두커니 서서 응시해 본다. 400여 해를 저렇게 보냈다.

설원의 쉼터

"바람에게 묻는다 /지금 그곳에는 여전히 /꽃이 피었던가 달이 떳던가

바람에게 듣는다 /내 그리운 사람 못 잊을 사람 /아직도 나를 기다리며

그곳에서 서성이고 있던가 /내게 불러줬던 노래 /아직도 혼자 부르며 울고 있던가"                                                                                           -나태주의 시 <바람에게 묻는다>-

1456년7월, 16살의 단종은 숙부 세조한테 쫓겨나 나룻배에 몸을 싣고 영월유배 길에 들어 이곳 두물머리에서 잠시 멈칫하다 이내 남한강물살을 탄다. 한 살 위인 정순왕후와 작별인사말도 못한 채였다. 어린단종은 나룻배에서 이 여정이 다시는 올수가 없는, 죽음을 향하고 있음을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순수무구한 단종으로썬 삼촌한테 왕위를 물려준 죄밖엔 없었으니 설마 죽이기야 할까? 생각했을 테다. 단종이 즉위 한 이듬해 궁중에서 3쌍의 단체미팅이 적발돼 야단법석이 났다. 심부름을 하던 궁녀 중비가 액정서에 드나들면서 별감 부귀와 눈 맞춘 스캔들이었다.

중비가 부귀에게 “붓 좀 빌려달라”고 부탁하자 부귀가 얼떨결에 “다음에 갖다 주겠다”고 했다. 근디 무소식이라 중비는 부귀에게 “보내주기로 한 붓은 어찌 됐느냐. 넓고 적막한 대궐인데 서로 만나보면 어떠냐?”는 연애편지를 또래 궁녀를 통해 보낸다.

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거간꾼 노릇한 궁녀 자금과 가지는 별감 수부이와 함로와 눈이 맞아 막 연정을 피울 찰나에 들통이 났다. 그들은 막 사춘기에 접어 든 방년 15~16살의 소년소녀였다. 깊은 구중궁궐에서 200~500명의 궁녀들이 임금 한 얼굴만 쳐다보며 산다는 건 형극이었다.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몸을 섞어 도도한 한강물이 되듯 사춘기소년소녀가 눈 맞아 몸 섞으려한 건 순리이다. 문제는 왕궁에 속한 청춘들이 연애질하면 ‘부대시(不待時;사형날짜를 기다리지 않고 즉결처형)참형’에 처한다는 <속대전>법령이다.

참수직전의 그들 6명의 소년소녀들을 살려낸 건 단종의 어명이었다. 자기 또래의 청춘들이 연애질 했다고 참수할 순 없어 지방관청에 보내 관노와 관비로 목숨 부지케 하는 걸로 스캔들을 종결시켰다. 그런 단종이 지금 아무 죄도 없는데 죽음의 행로에 들었다는 건 천부당만부당함이다. 

쉼터의 연못

세상사-삶이란 게 만남의 연속선상의 씨`날줄의 얽힘이다. 좋은 만남을 위해 서로가 얼마나 노력하고 배려하느냐에 행복한 일생이 좌우될 것이다. 두물경 설원의 광장 느티나무 아래 눈 쌓인 빈 의자가 무한한 가능성의 여백으로 누군가의 만남을 초대하고 있다. 어떤 짝쿵이 두 물길이 섞듯 할지~!

눈 쌓인 벤치에 앉아보지 않고 떠난 누군가의 발자국을 지우려는 듯 눈바람 한마장이 휩쓸어 순백을 낳고 떠난다. 만남은, 사랑은 눈빛으로 시작하여 손으로 확인하면서 ‘애정의 확신’을 다진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유치하게 다투면서 그 많은 날들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게 사람의 일생이고 인간사일 것이다.

빙하의 북한강

두물머리의 설원은 그런 담금질의 사계를 재현하고 있다. 두 물길이 만나는 정수배기를 두물머리라 하는데 그 물길은 사람(人)의 형상을 이뤘다. 북한강갓길을 더듬는다. <두물머리 물래길>이다. 빙하의 북한강이 눈 덮인 설원으로 끝없이 펼쳐졌다. 길을 걷는다는 건 행복에의 가능성을 여는 행위다.

북한강철교에 올라타 북한강을 도강하여 운길산역에서 설원의 트레킹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빙하가 된 한강, 눈부신 빙하 위를 건너면서, 매서운 한파를 헤치면서 정초의 담금질로 올 한해의 시험마중 길에 들어봤다. 빙하 밑으로 도도히 흐르고 있을 강물의 언어에 귀 기울려보면서~!      2021. 01. 07

북한강철교
신간 <숲길의 기쁨을 좇는 행복>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연결하는 배다리, (임시출임금지)
예봉산정상의 송신소
운길산
물래길
▲갈대쉼터▼
▲물래길은 빙하의 북한강을 따라 북상한다▼
북한강철교에서 본 양수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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