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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창덕궁 후원(비원秘苑)의 설경

창덕궁 후원(비원秘苑)의 설경. 2021.02.03

간밤에 내린 눈이 세상을 눈부신 은세계로 만들었다. 배낭을 챙긴다. 고궁 - 창덕궁후원 생각이 났다. 설경은 고궁만한 데가 없다. 고목과 연지와 정자가 어우러진 공원이 그려내는 묵화는 상상을 절해 거기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창덕궁후원 - 비원의 설경이 상상 속에 펼쳐졌다.

부용지와 주합루
부용지 속의 둥근 섬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의미한다

10시부터(9시 입장인데 적설 치우느라 1시간 늦어졌나?) 입장하는 후원은 동계여선지 해설자 없이 자유관람이라 인솔자 눈치 볼 필요 없어 신이 났다. 예매 없인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십상인지라 부러 일찍 나서 첫 티켓을 살 수 있었다. 한 시간쯤의 대기시간을 창경궁설경을 감상하려 입장권을 샀다. 창경궁과 창덕궁설경 사진이 좀 많아서 따로 묶어 올릴 참이다.

주합루 어수문은 시누대로 취병(翠屛)을 삼았다 

 후원은 창덕궁 뒤 야산을 자연지형 그대로 살린 통에 언덕을 넘어야 부용지에 이르는데 눈길을 내느라 직원들이 바쁘다. 후원은 왕실의 휴식공간이었고, 왕의 입회하에 여러 행사가 열리기도 한 곳이었다. 승마와 활쏘기 등의 군사훈련, 각종연회, 특별과거시험, 영농과 양잠을 경험하던 다목적휴게소였다.

부용정; 하늘에서 보면 연꽃이 핀 모양이란다

부용지와 주합루가 소복성장을 하고 맞아준다. 부용정과 섬의 소나무, 주합루가 하얀 눈 속에 움츠러든 미이라가 됐다. 그 장면을 담느라 관람객들도 바쁘다. 아쉬운 것은 부용지가 얼지 않고 주변의 겨울풍경을 품고 있다면 아름다움은 배가 될 거란 생각을 해보게 한다. 부용지는 길이34.5m, 폭29.4m의 장방형 연못으로 가운데에는 직경 9m의 둥근 섬이 있다.연

어수문

 "물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다." 임금은 항상 백성을 생각하는 정사를 펼쳐야 한다는 정조의 민본철학이 깃든 주합루다. 어수문은 임금이, 양 옆의 작은 문은 신하들과 일반인들의 출입문이다.

사정비기각; 연못에 물길을 대는 생수터(우측)를 관리하는 전각

부용정에서는 왕이 과거 급제자에게 주연을 베풀어 축하하고, 정조는 신하들과 낚시를 즐긴 곳이다둥근 섬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동양의 세계관을 의미 한단다연못서측의 사정기비각(四井記碑閣)은 샘에서 솟아 연지로 가는 물길을 관리하는 전각이고남쪽 언덕의 3단 화계(花階)는 꽃을 심고 수석을 배치하여 정원미를 극대화 했다.

주합루옆의 서향각(좌)

서향각(書香閣)은 주합루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포쇄소였다. 포쇄(曝曬)란 책과 임금의 어진 및 어필이 습기로 좀이 슬고 삭는 걸 예방하려 햇볕에 내어놓고 말리는 걸 말한다. 사대부선비들은 햇볕 좋은 겨울철이나 이른 봄에 자신의 책과 수장품들을 마당에 내어말리는 포쇄 풍정을 즐기며 자랑(?)삼았다고 한다.

 영화당(暎花堂) 앞의 넓은 마당은 지금은 소나무군락지로 변했는데 애초엔 창경궁 춘당지까지 트인 드넓은 공간이었다. 광해는 영화당을 비롯해 임난에 소실 된 궁궐복원에 힘쓰다 인조반정의 빌미가 됐다. 영화당에 걸렸던 현판글씨 '看取淺深愁(간취천심수)' 는 선조의 어필로 ‘내 수심과 깊고 얕음 비교해 봐라.’라는 뜻이란다.

의두합의 금마문이 보인다
효명세자의 독서실인 의두합(좌)은 기오헌이라고도 한다 

기오헌(寄傲軒)은 애련지 언덕의 전각으로 북향받이 팔작기와지붕 건물로 의두합(倚斗閤)이라 불렀다. 1827년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당시 독서 공간으로 세워진 단청 없는 소박한 건물이다. 효명세자의 불운했던 일생은 음지였던 기오헌에서 많은 세월을 보낸 후유증일 거란 얘기도 있다.

기오헌(좌)과 운경거(우측)

운경거(韻磬居)는 기오헌 동생처럼 나란히 있는 정면과 측면이 1칸인 팔작기와지붕 전각이다. 궐내에서 제일 작은 전각으로 앙증맞은 건물은 마루 밑에 다섯개의 구멍을 만들어 통풍구역할을 하게 했다. 책과 악기를 보관하는 서재로 습기와 부패를 막기 위함이었다.

애련지와 애련정

애련정(愛蓮亭)은 1692년 숙종이 애련지에 세운 전각으로 사모면지붕을 하고 있다. 이름은 송나라 주돈이 쓴 애련설에서 차용한 거란다. 숙종은 연꽃을 무척 좋아했다.

존덕정의 연지
관람정과 승재정(뒤)

관람정(觀纜亭)은 한반도 모양의 연못 - 관람지에 세운 부채꼴 선형 기와지붕의 굴도리집이다. 현판의 모양이 풀잎마냥 상당히 독특하다. 수목 울창한 골짝의 연못가 정자는 풍류를 즐기는 명소다. 

관람지는 우리나라모형의 연못으로 돼있다
관람정에서 본 펌우사
존덕정

존덕정(尊德亭)은 1644년(인조 22) 관람지 상단에 세운 육면정(六面亭) 정자다. 이층으로 된 육각지붕의 독특한 구조는 마루도 안쪽과 바깥쪽 2중구조다.  땜에 24개의 기둥이 우물정자 천정을 이루며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화려한 양식의 보개천정 중앙에는 황룡과 청룡이 장식되어 있다. 정자 안에 정조가 쓴 '만천명월주인옹'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모든 하천에 달이 뜨지만 하늘에 떠있는 달은 하나고, 그 달이 나니까 왕권은 지엄하다' 는 뜻이란다. 무릇 왕권을 다지려는 정조의 심저를 읽을 수 있는 글이라.

존덕정 안에 걸린 '만천명월주인옹'이란 정조의 어필 현판
승재정

승재정(勝在亭)은 관람지언덕배기에 있는 정면과 측면이 1칸인 사모지붕의 정자다. 아름답고 멋스러운 정자의 문짝을 활짝 열고 사방의 풍정들을 관조하고 있으면 신선이 된 기분이 될 것 같다. 

펌우사 

폄우사(砭愚榭)
존덕정 서편의 정자 폄우사는 온돌방이라 겨울에도 사용했을 테다.  폄우는 '어리석은 자에게 돌침을 놓는다'는 뜻이다. 임금이 자신을 되돌아 보고 어리석움을 깨우쳐 덕을 높인다,는 의미를 조선의 임금들은 몇 분이나 다짐하며 선정을 배풀었을까? 아니 '폄우사'현판을 청와대현관에 걸어 대통령이 좌우명 삼았음 싶다. 

▲애련지▼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   

숙종이 연꽃을 좋아하여 연못과 정자에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붙인 연유다. 1692년 숙종은 연못 중앙에 섬을 만들어 정자를 세웠다는 데 누가 언제 옮겼는지? 

애련지와 불로문(누군가 늙지 않으려 지금 통과 중이다 )

불노문(不老門)은 '이 문을 통과하면 늙지 않는다' 라는 장생을 의미하는 출입문이다. 거대한 통돌을 'ㄷ'자로 파서 거꾸로 세웠다. 나는 후원에 올때마다 통과했으니 늙지 않을까?

농수정

농수정(濃繡亭)
선향재 뒤에 장대석 기단을 쌓고 세운 정면과 측면이 1칸인 사모지붕집 전각이다. 연경당 젤 높은 언덕배기에 있는 멋들어진 정자인데 출입금지다. 1886년 고종황제가 왕세자 순종을 동반하여 농수정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이 현존하고 있단다. 농수정에 오르면 창덕궁일원이 죄다 조망될 듯 싶었다.

선향재

선향재(善香齋)는 1865년 연경당을 확장하면서 지은 손님 접대실 내지 서재로 사랑채 동쪽에 있다. 경복궁의 집옥재처럼  청나라 건축양식의 건물이다. 서양식 차양 시설과 기와가 아닌 동판으로 지붕을 덮은 이국적인 건물로 독특하다. 연경단 건물이 남향인데 선향재는 동향이라 습기가 많아 서재로썬 불합격 건물이란다. 그래 나중에 온돌방을 만들었단다.

연경당(演慶堂)은 효명세자가 왕권강화를 염두에 두고 1828년 순조의 진작례를 올리려 진장각(珍藏閣)터에 세운 전각이다. 전각은 사대부가를 모방 일반 민가형식을 취했으나 상한선인 99칸을 무시하고 120칸의 규모로 지었다. 효명세자가 죽은 후 순조가 노후를 보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