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南漢山城) & 행궁(行宮)의 설경

눈발이 쏟아지는 정월엔 가끔 남한산성의 비극이 생각난다. 낮에 경기남부지방과 호남에 순간폭설이 내릴 거란 예보에 난 문득 남한산성이 떠올라 10시를 넘겨 배낭을 챙겼다. 싸락눈이 흩날리는 산성역사 밖에서 올라탄 남한산성행버스가 시내를 잠시 휘젓더니 눈땜에 남한산성엘 못 간다고 안내방송을 한다.

외행전, 의청문과 우측의 반토막 집 일장각(문서 보관소)

산길운행이 차단됐다는 전갈을 받았다고 버스기사님은 을지대성남캠퍼스 앞에서 하차하란다. 십여 년 전에 승용차를 이용했던 나는 초행이나 다름없어 낭패였다. 눈발 속에서 행인에게 묻고 물어 산성공원에 들어섰다. 눈 덮인 오르막길에서 하산하는 산님들 몇 분을 조우 행궁까지 한 시간쯤 걸린단 소리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시각은 이미 정오를 훨씬 넘기고 있었다.

발등을 덮을까말까 하는 산속의 눈길을 홀로 걷는다는 낭만을 실컷 즐길 수 있어 신명이 났다. 눈 내리는 설산의 남문(지화문)까지의 경사로는 빡세고 미끄러웠지만 상쾌했다. 산성보수공사로 지화문 주위는 어수선한데 눈발까지 날리고 있어 내 혼자 어슬렁대 을씨년하기도 했지만. 동서 양쪽으로 활개 치듯 산마루를 달리는 성곽이 장엄하다.

지화문(남문)

눈 범벅이 된 산성마을은 한가로워 좋다. 행궁입구 한남루에 들어섰다. 마당 한가운데 눈길을 내던 직원 한 분이 멈춰 서더니 나에게 빨리 흠 없는 설경을 찍으란다. 발자국 하나 없는 넓은 행궁경내엔 나와 눈길을 내는 직원 둘뿐이었다. 싸락눈은 바람타고 드세져 사진 찍기에 손이 시렸다. 행궁내실은 거의 문 닫아 눈과 맘속에 담는다.

이위정 앞 내행전(왕의 생활공간) 후면

짐승발자국 하나 없는 행궁경내를 내 혼자 어지럽히며 뷰 찾기에 방정을 떨었다. 후원 이위정을 휘젓다가 상궐남행각 마루에 배낭을 풀었다. 바나나와 토마토, 비스킷으로 요길 하는데 회오리바람결이 세차서 쉴 수도 없었다. 행궁을 대충 훑고 북문(전승문)을 향했다. 보수중이라 어수선한데 전승문망루에 올랐다. 눈발 속의 시계는 그냥 뿌옇다.

내행전각 앞

골짝 저만치 한강이 있을 테고 한강과 행궁, 산성마을의 생활필수품을 나르던 옛 산길도 눈 속에 사라졌다. 병자호란 때도 북문은 유일한 물자소통 길이였다. 이렇게 눈발 날리는 엄동설한에 47일간 버틴 인조는 저기쯤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머릴 처박고 치욕스런 항복을 했다. 김훈의 소설<남한산성>의 줄거리가, 그 소설을 영화한 <남한산성>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전승문(북문, 싸움엔 전부 이기라는 뜻의 전승)

척화파 예판(김상헌)과 주화파 이판(최명길)이 설전을 벌리는 말의 성찬보다 나의 심금을 울린 건 대장장이 서날쇠가 격서전달을 자임하면서 예판에게 뱉는 실토였다.

“제가 이 일을 하는 건, 주상전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전하와 사대부들이 청을 섬기든 명을 섬기든, 저와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저 같은 놈들이야 그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배를 곯지 않는 세상을 꿈꿀 뿐입니다.”라고.

또한 “나는 벼슬아치들을 믿지 않소”라고 일침을 보탠다. 죄 없는 군사들과 백성들이 기아와 추위에 얼마나 많이 죽었고 지금 죽어가고 있는가! 서날쇠는 지원군이 와야 승산이 있다는 예판의 간청에 동생의 만류를 뿌리치고 야음의 남한산성을 탈출하여 남쪽을 향하는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많은 주전파 신하들은 꽁무니를 빼는데!

굴복하고 사는 삶은 죽음과 다름없다는 예판, 죽음을 면해야 삶이 있다는 이판, 명분만 앞세운 아집으로 기습부대 300명을 사지로 내몰아 전멸케 한 영의정은 서날쇠 말따나 백성들 목숨을 파리처럼 여겼을지도 모른다. 피똥 쌀만큼 혼줄 난 인조도 병자호란 후에도 별반 달라진 게 없었고, 병사들을 도살장에 보낸 영의정도 책임감 없는 영감이었다. 다만 청에 미운 털 박힌 예판은 인질로 선양에 압송돼 4년3개월 만에 귀국한 후 좌의정벼슬을 몇 차례나 고사하며 선비의 품격을 잃지 않았을 뿐이었다.

남한산성행궁은 1626년 6월 총융사 이서의 계책에 따라 2년만(인조4년)에 완성됐다. 유사시 왕이 피난할 예비궁궐로 정무시설과 종묘사직의 위패봉안을 갖춘 남한산성행궁은 일제에 소실됐다가 2011년 상궐(上闕), 하궐(下闕), 좌전, 인화관 등 전체 320여 칸이 복원돼 자랑스런 문화유산이 됐다. 위정자들은 남한산성의 비극을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오늘 적설로 포기한 산성트레킹을 불원간 할참이다.       2021. 02. 16

부도탑
▲백련사▼
지화문
▲남문에서 북문을 향하는 성벽▼
만남의 장소
인화관
▲한남루▼
북행각(비서실기능)과 남행각(경호실기능) 앞의 정경
외행전(왕과 신하들이 업무를 보던 장소)
한남루 뒷마당 계단재설
▲좌승당▼(담장 밖의 집무용 건물로 좌승이란 ‘앉아서 이긴다’는 뜻. 반드시 이길만한 계책을 써 적을 퇴치한다는 의미

 

▲이위정(후원 정자)▼
▲영녕전과 정전▼
전승문(북문)
▲전승문누각에서 본 성곽▼
북문에서 4암문을 향하는 산성
북문에서 남문으로 향하는 성벽
짐승발자국도 없는 설국의 산성공원
영화<남한산성>포스터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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