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창경궁의 단풍

여행기 2020. 11. 1. 11:01

`20 창경궁의 단풍

 

춘당지

코로나19사회에서 주말나들이 할만한 곳이 얼른 떠오르질 않는다. 가볼 만하다고 생각되는 가까운 곳은 여지없이 북새통이기 십상이다. 엎어지면 코닿을 곳- 창덕궁의 단풍이 울`부부를 부르기라도 한다는 듯 아파틀 나섰다. 평소엔 시민들이 고궁나들이에 별로인지 늘 한가했었다. 근디 오늘은 예외였다. 오전10시인데 입장권이 모두 예매됐단다.

 

돈화문

꿩 대신 닭이라고 창경궁을 산책키로 했다. 자유스런 단풍구경은 되려 창경궁이 낫기 마련이다. 가이드나 안내원을 비롯한 뉘 눈치 안 보고 하루종일 뭉그적댈 수가 있고, 뭣보다도 춘당지란 커다란 호수가 있는데다 요소마다 쉴 벤치기 있다. 그래선지 창경궁도 인파가 제법이다.   

코로나19사회 엑서더스일까? 단풍맞이 상추객(爽秋客)들일까? 창경궁은 단풍이 한창이다.  구경할 만한 곳엔 성장(盛裝)한 상추객들까지 점점이 박혔으니 그 울긋불긋한 풍정이 흥겨운 정감대까지 돋운다. 지난 겨울 눈내리던 날 고적한 산보자가 됐던 나 홀로의 창경궁이 딴 세상이었던가 싶었다.

통명전뒷틀
성종태실비

창경궁은 성종이 정희,안순,소혜왕후 세 분의 대비를 위해 지은 창덕궁의 별궁이었다. 얉은 야산 구릉지에 자연스레 전각이 들어서 자연친화적인 궁궐이 됐고, 그래 역대 왕들이 경복궁이나 창덕궁보다 더 좋아 했었지 싶다. 그래설까. 이곳에 터를 잡고 처음 궁궐삽질을 한 성종을 기리려 함인지 성종의 태반을 안치한 태실비각이 있다. 

성종대왕태실비를 훑고 언덕을 내려가는 숲길은 곱디고운 단풍낙엽길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소음 없는 고즈넉한 단풍멋에 빠질 수가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다. 별천지다. 뭐니 뭐니해도 창경궁은 가을옷이 제격이다. 벤치는 상추객들이 맘 놓고 눈호강하며 속닥거리느라 기쁨바이러스가 피어나나싶고~! 

춘당지는 본래 벼농사짓는 논이었다. 궁궐에서 농삿일을 알기 위해서 창덕궁안에 춘당지란 조그만 논을 만들고 벼농사를 경작했었는데 창경궁에서 규모를 키운 셈이다. 근디 일제가 동물원을 만들면서 논을 파내서 호수를 만들었던 것이다. 궁궐이 동물원으로 탑바꿈한 것인데 지금에선 춘당지만큼은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온갖 어류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창경궁의 명소가 됐다.

▲춘당지 팔층석탑▼
관덕정
자생화단
홍화문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의 홍화(弘化)는 '덕을 행하여 백성을 위한다'는  뜻이란다. 왕이 직접 궁 밖에 나가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정조는 어머니회갑 때 홍화문 밖에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줬단다. 돈의문 위에 신문고를 설치했던 왕조는 한 발 더 나아가 왕이 직접 백성들과 대면정치를 하려함 이였다.

, 회화나무

3백살이 훨씬 넘은 일난성쌍둥이 회화나무는 노화와 별리란 아품을 삭히고 있다. 벌어진 틈새를 쇠사슬고리로 연결하고 사다리로 양쪽에서 받쳤는데 얼마나 갈지? 세월에 무궁한 실체는 없으렸다. 영원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한 때깔은 세월을 초월해 인구에 회자되서다. 

명정전
느티나무
명정전회랑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正殿)으로 국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장소다. 임난때 소실 된 걸 1616년(광해 8)에 재건하여 현존하는 조선궁궐 정전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759년(영조 35) 6월엔 66세의 영조가 손녀뻘인 15세의 정순왕후와 여기서 혼례를 치뤘다. 늙은 왕은 낯 간지러워 정전엔 어찌 나갔을꼬? 아니 뻔뻔한 왕 앞에서 신하들이 어떻게 대면했을꼬? 

숙문당
문정전

문정전은 창경궁의 편전으로 국왕이 관리들의 업무 보고를 받고 중요한 정책을 논한 집무실이었다. 느닷없는 비들기떼의 비상으로 정적이 깨졌다. 놈들은 고궁에서도 결코 반갑지 만은 않는 기피조류다. 놈들의 배설물이 궐내를 더럽히고 더는 목조건물에 치명적인 부식을 초래해서다.

함인정

함인정 앞의 쌍주목! 고고하고 아름다운 자태가 경외심을 유발 숙연케 한다. 오래오래 창경궁의 아이콘으로 서있길 염해본다

회화나무 아래로 흐르는 금천과 옥천교

 금천은 응봉산에서 발원한 명당수가 창덕궁의 존덕정을 지나 창경궁의 북쪽 춘당지를 거쳐 남쪽 한강으로 흘러간다.  '구슬과 같은 맑은 물이 흘러간다'하여 옥천이라고도 하였으며 그 위 다리를 옥천교라 했다.

350여 살 먹은 회화나무는 사도세자의 비명을 죄다 목격 기억하느라 허릴 펴지 못하고 꼬부랑나무가 됐다

 

▲단풍들의 여행이 아니 춤사위가 사뭇 기똥차다는 걸 절감한 오후였다▼
낙선재 한정당이 월담하며 인사를 한다

 

경춘전

사도세자가 경춘전에 용이 드는 용꿈을 꾸고 정조을 낳자 경춘전 동쪽 벽에 용 그림을 그렸다. 왕이 된 정조는 부왕의 용꿈을 기념해 경춘전 내부에 ‘탄생전(誕生殿)’이라 쓴 현판을 걸었으나 남아있질 않아 아쉽다.

양화당
백송
통명전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이다. 갑술환국 때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장희빈이 왕후를 저주하며 취선당에 신당을 차리고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파묻어 해꼬지를 하다 발각되어 사약을 받게 된다. 사약을 빨리 안 먹자 숙종은 어거지로 입안에 약을 퍼 부었다. 한 땐  '너 아님 못 산다(?)'고 희빈의 치마끈을 풀며 정염을 불태운 숙종이었다.

 

양화당후원
양화당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청태종한테 치욕을 당한 인조가 머문곳이 양화당이다. 그후 인조는 청나라 사신을 여기서 접견하기도 했는데 속 차릴만도 한데 용렬하긴 마찬가지였다.  또한 이곳은 '강화도령'인 25대철종의 왕비김씨가 승하한 곳이다.

성정각의 여춘문
대조전 뒷뜰길

 

대조전(大造殿)은 창덕궁 내전(內殿) 중 가장 으뜸가는 건물로 뒤뜰의 여러 단의 화계가 멋있게 조성 돼 왕비의 휴식처가 되기도 했다. 대조전은 한말 황실의 내실(內室) 모습을 볼 수가 있으며 또한 조선의 마지막 회의가 열렸던 곳이다.

 

대조전뒷뜰
희정당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낙선재뒷뜰길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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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후니74 2020.11.02 12: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고궁은 가을이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