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 사랑
응접실 창엔 만개한 장미꽃 한 다발이 나를 한없이 밝게 해주고 있다.
열정 그 자체이듯 빨간 장미는 앙증맞게 작은 꽃 수십 송이를 분에 소담하게 피우길 지금 두 번째라.
지난 7월에 흐드러졌던 장미는 한 달 전 가지치기를 했었는데 새 순이 돋더니 연초록 꽃망울을 내밀곤 염천에 빨간 잎을 피우더니 어느새 화들짝 일제히 웃고 있다.
이렇게 일년에 네 번씩이나 화사한 미소로 나를, 울 집을 밝게 하는 그의 봉사는 나의 시덥잖은 측은지심에 대한 보담일까?
그니까 3년 전, 컵라면만한 플라스틱분에서나온 연약한줄기 하나에서 한 송이의 꽃을 피웠다 시들해 버림받은 장미는 누군가에 의해 우리 집 화단에 버려져있었고, 가사상태의 그를 주어와 좀 큰 분에 앉히고 물을 줘 그늘에 두었더니 기사회생했던 거다.
버려진 그를 ‘죽으면 말고’란 알량한 내 이기심이 용케 소생력이 있었던지 새순을 돋고 가지를 뻗쳐 두어 송이 꽃을 피우더니 계절 따라 세를 무성히 하여 이젠 수십 송이를 피워 창문 한쪽을 다 차지하고 있다.
생명의 신비는 사랑으로 다가서면 그 사랑만큼은 기쁨을 준다.
장미의 꽃말은 사랑이고 빨간 장미는 열정이라던가!
꽃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게 장미일 게다. 나는 기상과 함께 하루일정의 대부분을 그와 마주하며 살고 있다. 그를 사랑하지 않곤 못 배긴다 할 것이다.
좀 큰 분으로 몇 번의 이식에 제법 탐스러워졌지만 애초에 워낙 작다보니 지금도 꽃송인 앙증맞다. 그래 더 사랑스럽다. 장민 나의 사랑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진홍의 꽃을 갈수록 흐드러지게 피워댄다.
장미를 사랑한, 사랑땜에, 장미에 미처 죽으면서 자기의 무덤에 장미꽃을 뿌려달라고 유언까지 했던 안토니우스가 생각난다.
그는 장미를 사랑한 나머지 삼두정치를 맹세한 친구들을 엿 먹이고, 악티움해전까지 일으켰으나 패하고 달아나서 장미를 부르다 자결한다.
장미는 그를 패망에 이르게 한 팜므파탈 이였던 것이다.
팜므파탈은 클레오파트라였으니 클레오파트라는 장미였다. 클레오파트라는 장미를 사랑하여 그의 침실엔 장미꽃이, 몸엔 장미향이 난분분했었다. 사랑도 열정도 넘 기울면 사단이 나는 법.
오늘도 창가에서 사랑의 의미를 장미꽃에서 되새김질 해 본다.
2010. 0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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