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타 2000>을 보고
극장 안을 흥겹게 흐르던 난타 백뮤직 사운드가 멀어저가고, 스크린에 공연 개막을 알리는 자막이 서치라이트에 묻어 나오고 있었다.
‘주방장의 생일잔치’ - 오늘밤 난타 2000의 공연 태마였다.
무대 왼쪽 구석에 마련된 간이 2층 조그마한 무대에서 세 명이 토해내는 요란한 신디사이져 기타 음률이 어둠을 몰아내면서 개막 팡파르는 울렸다.
세 명의 요리사가 조리대 앞에서 신나는 난타 한 토막을 연출하자, 지배인 펭귄아저씨가 자기 조카를 동반하고 등장하여 요리사들에게 견습을 부탁하는 걸로 오늘의 메뉴를 지시한다.
요컨대 주방장의 생일을 맞아 파티를 위한 음식준비를 주문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공연은 시작되었다.
생일음식을 만들기 위한 네 명의 요리사가 펼치는 기상천외한 Non-Verbal
Performance가 난타2000이었다.
그들에겐 주방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악기였다. 도마, 칼, 양푼, 프라이팬, 접시, 물통, 페트병 등의 주방기구와 쓰레기통, 쓰레받이, 빗자루 등 뭣할 것 없이 손에 잡히는 것들은 두들겨 거기서 나오는 여러 소리의 고저와 장단을 리드미컬하게 반죽하여 내는 파열음의 하모니와 유머러스한 모션으로 관객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시끄러운 것 같으면서도 절제된 리듬, 코믹하고 빠른 몸놀림이 공연이 시작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관객들을 요리사와 한 마당으로 끌어드려 박수와 폭소 그리고 괴성으로 극장 안이 터질 것 같은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네 명의 요리사 중 여성 한분을 캐스팅하여 더욱 신선하였고, 공연 사이사이를 넘나드는 펭귄(지배인)의 시각적인 멋과 맨트도 맛있는 양념이었다.
그러나 더욱 감동적일 수 있었던 것은 주방기구들을 부딪쳐 내는 소리의 리듬이 다분히 한국적인 토속음악의 한 장르의 정체성을 되살려 내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일찍이 농악이 우리네 가슴 저변에 있는 리듬이었다면, 난타2000은 그 리듬에 연극적인 태마를 삽입시켜 보다 한 차원 높은 뮤지컬로 승화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전통 타악기가 아닌 우리네의 토속적인 생활소품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음향을 조율하고 리듬화하여 뮤지컬로 무대에 올린 버전 음악은 난타가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공연이란 게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 때 성공할 수 있다면, 난타2000은 그것 이외에도 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 있었다.
그것은 화려한 무대장치나 의상, 고가의 소품들이 아닌 것들로 이루어졌고, 출연진도 고작 8명이란 최소화가 수반시켜줄 비용절감이 수익성을 담보할 장점이라 생각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저렴한 관람료로 많은 관객을 동원할 것이며 높은 수익성은 발전적인 투자를 가능케 하여 보다 훌륭한 공연예술이 태어나게 할 것이 아니겠는가.
또 난타2000이 성공할 수 있었던 점은 비언어(Non-Verbal)뮤지컬로 소재가 단순하고 남녀노소와 계층을 초월하여 즐길 수가 있기에 국경까지 넘나들며 흥행할 수 있
었으리라.
사실 영국이나 일본에서 대성공한 이유는 우연이 아닌 그런 장점들이 가능케 했을 것이다.
‘난타’는 난타(亂打)질 한다는 말에서 비롯됐음 직하지만, 배우들의 끝없는 난타질속으로 빨려드는 관객들이 일상의 스트레스에 대한 난타질로 무대와 객석, 관객과 배우가 한 어울 마당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파안대소 하며 카타르시스를 만끽하는 놀이마당 이였다.
일상의 권태와 피로를 난타 한 마당 잔칫날에 빠져들어 털어버릴 수 있어 좋았다.
사족일지 모르지만 좀더 치밀한 연출과 고난도의 연습을 다듬어서 정진한다면 세계무대에서 빅-히트할 수 있는 새로운 Performance가 될 것임을 예감한다.
* * * * *
멀리 광주. 영광에서 상경하여 관람한 친구들의 감상은 어떤 것일까?
여덟 명이 다 만족하기를 기대할 순 없었을지라도 더는 불만을 토하는 친구도 없었다는데 나는 위안을 했었다.
그들도 오늘 비로써 흥행중인 난타2000이란 한국적인 뮤지컬을 알게 됐고, 그것이 연극과는 다른 비언어 뮤지컬이기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쉽지만은 않다는 점도 매력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난타2000은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성공한 작품이기에-.
한 달 전 모임 때, 서울 친구아들 결혼식 때 상경하면 식후에 자투리시간을 ‘난타 공연을 관람하자.’고 제안한 자가 나였기에 난 은근히 부담이 됐었다.
그건 ‘난타2000’이란 제목도 생소했던 친구가 있었기에 말이다.
나의 제안이 없었다면 그 친구는 언제까지 ‘난타’란 공연예술이 ‘변방의 굿’ 정도쯤 됐을지 모를 일이다.
2000. 1. 16
'느낌~ 그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미 & 사랑 (0) | 2010.08.28 |
---|---|
대수로움을 찾아 - 산 (0) | 2010.08.23 |
투병 중의 상사화 (0) | 2010.08.16 |
연애와 불륜의 차이 - 한국외교 (0) | 2010.08.13 |
꽃보다 좋은 향기 (0) | 2010.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