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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카핑 베토벤

⎒카핑 베토벤(Copying Beethoven)⎒을 보고

-신은 베토벤의 귀를 멀게 했고, 그녀를 선물했다.-

1824년 빈. 작곡자가 되는 게 꿈인 23살의 안나 홀츠(다이엔 크루거)는 수녀원에 임시 기거하게 되였고, 어쩌다 베토벤(에드 헤리스)의 악보를 대필하게 된다.

이미 귀머거리가 된 베토벤은 그의 헝클어진 사자머리만큼이나 악필 이였고 성질도 괴팍해 졌었다. 오래전부터 구상해왔던 ‘합창’교향곡을 거의 완성해 초연날짜까지 잡아 놓았지만 악보를 정서할 사람이 없어 고심하던 차에 안나 홀츠를 면접하게 되고, 그녀 또한 존경해 마지않던 베토벤을 만남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악보를 카피하던 안나는 임의로 한 군데를 수정하였고 그걸 베토벤이 지적하게 된다.

“여기를 무엇 땜에 멋대로 고친게요?” 베토벤의 질책에

“고친 게 아닙니다. 교정한 게지요.”

“교정이라~!”

“예, 마이스트로! 가장 베토벤답게...” 안나는 베토벤을 똑바로 쳐다보며 확신에 찬 듯 대답했다. 그 부분은 사실 베토벤 자신도 수정하려던 참 이였다. 그 일로 하여 신뢰와 존경이 더욱 돈독해진 그녀는 교향곡‘합창’의 초연을 3일 놔두고 헌신적인 노력을 다하게 된다.

합창교향곡은 음악가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모든 음악의 메뉴얼를 뛰어넘는 파격이고 혁명적인 것 이였다.

이땐 이미 보청기(나팔모양으로 생겼다)로도 가느다란 공기(소리)의 파장으로 소리의 감을 느낄 뿐, 필담이나 상대의 표정으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었다. 그는 그런 자기의 귀머거리를 신이 주신, 신이 자기와의 교감을 충실하게 하기 위한 섭리라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자기의 음악은 신의 소리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악인으로썬 치명적인 귀머거리 병을 뛰어넘어(초월) 천상(신)의 소리를 전하는 음악의 화신이 되었던 것이다.

합창교향곡 연주회장(5월7일, 퀼른 토나토아극장의 초연을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가 실연했다), 초연을 본인이 직접 지휘하겠다는 고집을 어찌할 수 없어 음악의 흐름(시간)을 알려 줄 사람으로 안나를 관현악단원 속 베토벤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있기로 하였던 것이다.

지휘대에 선 베토벤, 그의 신들린 듯한 지휘는 단원 속에서 눈짓과 수신호로 알려주는 안나의 역할에 힘입어 한 치의 틈새도 없이 장내를 압도해 나간다. 자기가 만든 작품의 연주를 지휘하면서 단원들의 신명난 연주음을 들을 수 없었던 베토벤, 오직 공기의 파장과 안나의 눈빛과 표정과 손짓으로 감각의 지휘를 성난 사자처럼 혼신을 다하는 베토벤을 보면서 나는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 눈물이 볼을 타고 턱까지 흐를 때야 손수건을 꺼내 대충 훔치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음악가, 그가 연주 중에서도 가장 대단원이 연주하는 교향곡을 지휘한다는 게 가능한 일 이기나 한건가!? 아니 음악을 지휘하는 본인이 그 음악을 들을 수도 없다는 슬픔, 아니 절망, 나아가선 비극을 베토벤이 아닌 어떤 음악가가 극복하고 초월하였겠는가? 하여 ‘악성(樂聖)’이란 최상의 호칭을 음악가들은, 우리들은 헌사 했음이리라.

합창연주는 촌음의 오차(실수)도 없이 극장 안을 휘잡으며 끝난다. 끝난 게 아니라 갑작스레 정적이, 고요의 바다가 되었다. 단원들의 알 수 없는(전에 보지 못했던) 눈과 표정만이 보일 뿐, 모든 게 갑자기 박제 된, 안나까지도 미묘한 표정으로 고정된, 어디서 벌떼가 윙윙~~하는 공기의 파장만이 베토벤에게 감시(感視)되고 있었다.

그때 단원의 부측을 받고 일어선 안나가 그에게로 다가섰고, 그녀는 영문을 몰라라하는 그의 손을 이끌어 뒤돌아서 청중을 향하게 하였다. 열광하는, 기립박수를 죽어라고 치고 있는 청중을 보면서 비로써 베토벤은 자기의 연주가 대성공 이였음을 직감하게 되어 인사를 드린다. 다소곳이 사자에서 인간으로 청중과 단원들께 벅찬 감회의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여 전무후무한 불후의 교향곡 “합창 : 환희의 송가”는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고, 지금까지 인류에 가장 사랑받는 교향곡이 됨이라. 진정 신은 그런 위대한 음악을 인류에게 선사하기 위해 베토벤을 택하여 형극의 고통을 겪게 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베토벤은 말한다. “이제 음악은 영원히 바뀔 것이다.”라고.

기존의 교향곡의 형식을 깬 틀 속에서 귀머거리만이 들을 수 있는 생명의 환희의 소리-산책길 숲에서 영감 했을 대자연의 신비의 소리를-.


이후 베토벤은 안나를 더욱 신뢰하고 의지하며 사랑(가능했다면)하였고, 음악의 동반자(?)가 되어 ‘대푸가’란 작품을 직접지휘 연주하게 되지만 청중들의 냉담으로 큰 충격을 받아 쓰러지게 된다.

아직 청중들은 그의 음악의 경지에 이를 수 없었기에 그저 난해한 음의 조합으로밖엔 이해되지 않음 이였던 것이다. 후일 ‘대푸가’는 음악인들의 필수교범이 되는데도 말이다.

사실 베토벤은 일찍이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25살 때 그 유명한 ‘하이리켄슈타드의 유서’라고 말하는 편지를 친구(의사 베겔러)와 형제들에게 보냈었다.

“나의 청각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네. 사람들과 가까이할 때면 내 비참한 상태가 알려질까 봐 몹시 불안하다네. 나는 자주 절망에 빠지곤 해” 라고.

그는 그 비참한 절망을 극복하였기에 불후의 명작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난 베토벤을 생각할 땐 ‘불광불급’이란 말을 떠 올리게 된다. 신은 그를 귀까지 떼어가며 미치게 만들어 그 누구도 감히 미치지 못하는 천상의 소리에 미쳐 그 소릴 우리에게 전하게 했던 거였다.

07.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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