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 중인 깨복쟁이 벗과 찾은 세한정(歲寒庭)

장독분수대

장맛비가 잠시 물러난 경인지방은 쾌청했다. 오전10시 용산역사 1번 플랫폼에서 친구B와 C를 접선 용문행열차에 올랐다. 코로나19생활 속 거리두기사횐데도 열차는 빈자리가 없다. 지긋지긋한 코로나불안과 후덥지근한 장마에서 탈출하려는 엑소더스일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깨복쟁이 초등친구인 B와C는 내가 서울에 잠자릴 붙인 후 소통하고 있는 지기인데 오늘은 첨으로 B와 소풍길에 나선다. 그와의 소풍은 초등시절 이후 첨이다. 우린 열차 속에서 행선지를 용문사에서 두물머리로 변경했다.

사흘 걸러 투석(透析)중인 B에게 어떤 식으로든 무리한 소풍길이어선 안될 것 같아 평탄한 두물머리 산책길로 바꿨는데 그건 탁견이었단 걸 모두가 수긍했다. B가 공직에 있을 때 나와는 교우가 단절됐었는데 그때 그 시절 B는 대단한 애주가였단다. 건강하고 공부도 썩 잘했던 B를 나는 좋아했었다. 그런 그의 수많은 장점들이 애주(愛酒)란 만용이 갉아먹었지 싶어 안타깝다.  양수역사를 빠져나오며 세미원(洗美苑)을 향하는 남한강연못호반가를 걷는다. 드넓은 연방죽엔 커튼콜을 아쉬워하는 연꽃들의 끝판 유혹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철새 대신 연꽃의 무대라!

세미원매표소에 입장객들이 줄 서 있는 이율 알만했다. 국사원 한반도정원 징검다리 도랑 건너 장독대분수는 연꽃퍼레이드에 들어서는 관광객들의 달뜬 발길을 붙잡는 분수가 시원하다. 페리기념연못, 백련지, 홍련지, 빅토리아연못은 온통 연꽃바다를 이뤄 탐스럽고 농익은 여인의 환대를 받는 듯싶다. 세미원엘 몇 차례 왔었지만 아기자기한 정원들이 죄다 연꽃천지로 둔갑할 거란 생각은 상상도 안했었다. 탁한 진흙웅덩이를 초록 연잎바다로 일궈 가늘디가는 모가지 솟구쳐 피운 연꽃은 고상한 기품을 뽐내며 우릴 감탄케 한다.

고결하고 탐스런 연꽃은 진창이 피워낸 순수라서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는지 모르겠다. 우린 열대수련원쉼터에서 나르시스소년의 자아도취경을 훔치다 세한정을 향했다. 세미원엔 수많은 테마파크가 있지만 나는 두물머리 수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세 그루 소나무의 스산함에 빠져들곤 한다. 공허하리만치 텅 빈 여적과 짙은 고독이 묻어나는 세한정을 젤 좋아한다. 눈 내린 하얀 겨울에 나는 여길 두 번 왔었다. 시리디시린 하얀 여백에 한 옹큼의 초록물감을 짙뭉개며 옹색하게 서있는 소나무의 기상은 나를 사로잡는 고독 자체였다. 그게 추사의 세한도를 옮겨놓은 풍정 같아 몽상의 나래를 한없이 펼치면서 고고한 선혈들의 풍월을 그려볼 수 있어서였다.

세한정의 소나무들

시리도록 새하얀 설원, 그 안의 휑한 집 한 채, 그리고 집밖의 세 그루의 소나무와 잣나무가 하얀 겨울의 차디찬 유배지의 고독을 홍건하게 묻어낸다. 영락없는 추사의 세한도(歲寒圖)다. 그  세한정 소풍길은 우리의 영혼을 순간적으로 반추케 한다. 마당 고사목에  공생하는 생과 사의 소나무, 담장 밖의 삐쩍 마른 세 그루의 소나무는 허허한 공간에 초록 잎 뭉치를 생존의 기상처럼 자랑한다. 그 소나무는 우선(藕船)이상적(李尙迪)이다. 우선은 추사의 제자로 열두 번이나 연경을 다녀온 출중한 역관이자 시인이었다. 그가 연경출장에서 귀국할 때마다 귀중한 서책과 정보를 구해와 위리안치 된 추사에게 선물하곤 했다. 추사는 그런 그의 정성을 의인화시켜 세한도에 담았다.

새한정 전시관과 고사목노송

유배지에서 읽을 게 없어 목말라 한 추사를 해갈시키 주면서 신산한 삶에 의욕과 기를 돋아준 우선의 의리와 우정에 하 고마워서 그려준 그림이었다. 청(淸)의 연경(燕京)에서 유학중인 우선에게 그려 보낸 세한도는 추사가 59세 때(1844년) 그린 묵화로 연경문인들 사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집권세력이 윤상도(尹尙度)투옥 사건에 연류시켜 제주도에 위리안치 된 추사였다. 그런 눈치도 아랑곳하지 않는 우선의 정성과 기개에 감격한 나머지 그린 세한(歲寒;겨울에 홀로 푸른 소나무)도는 오늘날 권세와 부귀를 쫓아 줄서기 하는 철새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이 귀감해야 할 그림이기도 하다. 모조품 세한도라도 하나씩 걸어놓고 마음의 거울로 삼았음 싶다.

두물머리 느티나무

이상적이, 추사가 그 정황을 보면서 빙그레 웃으며 보듬어 주지 싶다. 아니 고고한 어떤 분이 세한도 한 점 그려 선사할지 모른다. 우린 세한정을 나서 배다릴 건너 두물머리 느티나무를 휘돌았다. 녹음 우거진 느티나무의 데칼코마니가 볼 품 없어선지 황포돛대도 없는 빈 배는 쓸쓸하다. 그래도 관광객은 꼬리에 꼬릴 문다. 우린 연잎찰밥으로 늦은 점심을 때웠다. 때 늦은 식당도 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손님들 모두 거리두기 없이 다닥다닥 붙어 기갈을 달랜다. 여긴 설마 코로나19에 노심초사하는 대한민국이 아닌 듯싶게~?

수면에 비친 자신에 도취 된 나르시스의 일렁대는 그림자를 조각화 했다

깨복쟁이 초딩친구 셋이 세한정에서 한참을 뭉그적댄 오늘의 소풍은 참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나는 귀로열차 속에서 B에게 <숲길의 기쁨을 좇는 행복>과 <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를 건냈다. 책값은 읽은 후에 한 권 값만 주라고 옹색한 핑계를 대면서 결코 공짜가 아니란 걸 강조하고 팠다. 그래야 B도 부담 없이 즐겁게 책을 읽을 테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선`이상적을 되새김질 해 봤다. 그는 연경에서 어렵게 구한 책들을 공짜로 추사에게 선물하지 않았던가!

아니다, 그의 그런 마음 씀이 추사의 명성에 얹혀 더더욱 인구에 회자 되는 명예의 전당에 살아있지 싶다. 추사는 그렇게 책값이상을 치뤘다고 생각된다. 깨복쟁이 벗들과 소풍! 초등학교 때의 우리들 단골 소풍처는 불갑사였는데~! 언제 우리들 불갑사 소풍도 나서보자. B야, 적당한 운동 거르지 말고, 글고 낙관적인 생활해라. 담엔 더 건강한 모습 보자구나. 오늘도 C가 베푼 정의에 더더욱 행복한 소풍이 됐다. C가 언제 양평물소리길1코스를 트레킹 하잔다. 몽양선생유적지를 답사하고 싶단다. 우린 주저 않고 입을 맞췄다.      2020. 07. 16

분수월츠곡에 행선(?)하는 B 와 C
한반도정원
세한도의 정취를 한 껏 풍기는 세한정의 소나무들
배다리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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