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동구릉(東九陵)산책

 

홍살문에서 정자각을 향하는 신도(좌)어도(우)와 양편의 갓길

 

구리역사에서 나와 왕숙천변을 따라 구리둘레길2코스를 반시간쯤 걷다보면 동구릉에 닿는다. 태조를 비롯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를 모셔놓은 신들의 정원은 울창한 숲속에 능()과 석물 앞마당에 독특한 건축물이 멋들어지게 어울려 사자(死者)의 파라다이스를 만들었다.

 

동구릉입구의 홍살문

 

죽음은 존재의 멸()이다. 죽어 없어지는 망자(亡者)가 두려운 건 세상에 아무도 자기를 기억해 주지 않을 때일 것이다. 해서 사람은 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오래도록 남기려고 평생을 열심히 사는지도 모른다.

 

 

동구릉에 묻힌 왕과 왕족들은 생전에 훌륭한 삶을 살았던 아니던 간에 몇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묘소를 찾는 이가 있어 행운아들일 것 같다. 추석에 울 부부는 고향성묘 대신 동구릉을 찾았다. 사실 42기의 능이 훼손되지 않은 채 600여 년간 전통제례를 행해오는 동구릉은 오래전부터 찾아보고 싶은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했다.

 

 

능원에 들어서면 삐딱하게 늘어선 소나무사이에 홍살문이 있다. 홍살문이 없어도 울창한 소나무 숲의 고요와 청량함은 어느새 평정심에 이은 경건한 마음에 이르게 한다. 우측에 능 관리소가 단아하다. 들창문의 대청을 텅 비운채 인기척이 없다. 당시의 능지기참봉의 위세도 대단했을 터다.

 

능참봉이 거주한 재실

 

헌종(憲宗)의 아버지 순조(純祖)(효명세자)와 어머니 선정황후를 뫼신 수릉(綏陵)이 있다. 바로 옆엔 현릉(顯陵)이 소나무울타리 친 능선에 있는데 문종(文宗)과 현덕왕후의 능이다. 송림 사이를 뚫은 세모래 흙길을 5분쯤 걸으면 정면에 건원릉(健元陵)이 나타난다. 태조(太祖)이성계의 능이다.

 

금천

 

대대로 특출한 무장가계출신 이성계는 무예가 뛰어났다. 어느 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백보(百步)앞 배나무에 배가 수십 개 매달려있자 손님들이 태조에게 활을 쏘아 떨어뜨리길 청했다. 태조가 쏜 화살은 수십 개의 배를 관통하며 엮어 떨어뜨리자 그 배를 가져와 술안주로 먹었다. 는 일화가 <태조실록>에 있다.

 

현릉

 

이성계가 명()과의 싸움에 4대불가론을 내세워 위화도회군을 단행 조선을 세우고 74(1408)에 영면하자 여기에 능침을 했다. 좌청룡 우백호에 완벽한 배산임수 지형의 하늘이 내린 명당이다. 인공적으로 만든 게 분명하다고 명나라사신이 감탄했다는 명당자리가 건원릉이란다.

 

건원릉입구의 홍살문(그림자)과 신도와 어도

 

건원릉에 들어서려면 금천(禁川) 위 돌다릴 건너야한다. 옛날엔 일반백성들은 건널 수 없는 개천이었고, 무단출입자는 태형을 받았단다. 그 금천을 건너 홍살문을 들어서니 판석을 깐 영혼이 걷는 신도(神道,어도보다 쬠 높다)’와 임금이 걷는 어도(御道)’가 있다.

 

 

그 갓길에 일반인 걷는 길이 있는데 나는 어도와 신도를 번갈아 걸어봤다. ‘어도는 태종`세종대왕을 비롯한 조선왕조의 모든 왕들이 적게는 몇 번씩은 거닐었을 길인데 감히 내가 겁 없이 까불고 있는 거다. 아내가 출입금지길인데 갓길로나마 내려서란다.

 

정자각

 

정자각(丁字閣)에 이르렀다. 재실을 들여다봤다. 잿상뒷문으로 솟은 언덕의 푸른 잔디가 병풍을 쳤다. 정자각 뒤 능침은 출입불가지역 울타릴 쳤다. 먼발치에서나마 봉분을 보려고 비각(碑閣)쪽을 향했다. 봉분에 지금도 억새풀이 무성하나 궁금해서다.

 

정자각의 제상

 

방원(芳遠;태종)이 고향 함흥서 가져온 그 억새풀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억새가 봉두난발처럼 수북이 솟았다. 잔디 아닌 억새풀이 무성하면 불효자식이란 말 들을까 싶어 벌초에 고심한데 태조능침에 억새라니? 사실 태조는 고향 함흥에서 노구를 안식하고 싶었다.

 

건원릉능침엔 억새가 무성하다

 

하여 방원은 함흥서 뽑아다 심은 억새로 1408년에 능침을 조성하고, 함흥산억새밭을 따로 만들어 보수용으로 사용했으며, 인조는 매년 한식날 능침의 말라죽은 억새를 보완토록 하며 지금껏610여년을 가꿔온 억새봉분이다. 그 억새능침을 보면서 난 고향선친의 억새봉분을 생각하곤 나름 자위해 본다.

 

건원릉정자각에서 본 홍살문

 

나의선친묘역에도 언제부터 억새가 자생하기 시작하여 억새재거용 농약을 끼얹고 매년 뽑아냈지만 몇년 후면 도로아미타불이었다. 봉분잔디 살리기에 고민깨나 하는 울 내외다. 억새가 봉분을 황폐화시킨다는 단점 탓에 고심이지만 어차피 내 자식들 후론 아무도 찾지 않을 묘역이 될게 아닌가? 라는 허망한 생각을 하기 일쑤다. 

 

능침의 석상들

 

하여 이성계의 묘는 명당이라 5백여 년 왕조를 누렸고, 나의선친 묘도 명당이란 데도 한 세기 남짓 후엔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 없을 것 같아 불망씁쓸이다. 우리가 명당자리 찾아 묘역 조성하느라 훼손한 자연이 얼마며, 그동안 국가적인 폐해의 수치는 계량할 수도 없어 명당론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음 아닐까?

 

 

건원릉을 나와 숲 사이 야트막한 언덕길을 올라 목릉(穆陵)홍살문에 섰다. 선조와 의인왕후, 인목왕후릉이 드넓은 초지언덕에 서로 눈인사 나눌만한 위치에 있다. 집권초반 선정도 했다지만 임진왜란이 나자 지 혼자만 살겠다고 보따리 싸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 도망간 쪼잔한 왕이 선조 아니었던가!

 

목릉의 선조릉

 

그렇게 백성을 외면한 선조가 차지한 푸른 묘역은 골프장처럼 넓어 호사의 극치다. 의인왕후릉은 울타리가 없어 석물과 봉분을 살피 수가 있었는데 그 까닭을 모르겠다. 하루종일 뛰놀고 싶은 드넓은 초지를 벗어나 다시 건원릉 앞의 금천을 건너 휘릉(徽陵)을 향했다.

 

  목릉의 인목왕후릉

 

인조(仁祖)의 계비장렬왕후능인데 16세에 세자빈으로 간택, 26세에 인조가 죽자 자녀 하나 못 낳고 대비가 돼 효,,숙종때까지 왕실어른노릇한 과부의 일생이었다. 그 옆의 원릉(元陵)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능이다. 15살의 소녀는 66세 할아버지뻘의 영조를 신랑으로 맞아야 했다.

 

 

김한구는 딸의 행복보다 부원군이 되고픈 자신의 출세욕에 미성년딸애를 영조에게 꽃놀이패(?)한, 양반들의 횡포 더도 덜도 아닐듯 싶은 거다. 동구릉은 소나무천지다. 왕성하게 내뿜는 피톤치드는 병충해와 잡초의 서식을 막아 숲을 청량하게 하는 충정`방풍림으로 애용돼서다.

 

 

수백 년을 살아온 소나무 숲엔 참나무, 오리나무, 백당나무, 서어나무와 밤나무 등이 자생하며 59만평에 울창한 숲을 이뤘는데 평탄하고 고운 세모래 길은 산보자의 유토피아다. 아~! 정말 진종일 뭉그적대며 노닐고 싶다. 능소 입구마다 쉼터가 있어 게으름피기 딱 좋고.

 

휘릉

 

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귀 열고, 미풍에 흔들리는 초록이파리가 그리는 푸른 하늘그림을 감상하는 한가함은 그대로 심신을 살찌운다. 며칠 후면 초록은 화려한 색깔로 물들 텐데~! 구리시민은 복 많이 받은 사람들이다. 짬나면 유토피아에 파묻혀 영혼을 살찌울 수가 있어서다.

 

  목릉의 선조(좌)의인왕후(우)릉의 원경

 

그 치유의 숲길을 파고들면 경릉(景陵)과 마주한다. 경릉은 우측에 24대헌종, 효현왕, 계비 효정왕후 능침이 나란히 있는 삼연릉으로 봉분 아래는 초계, 중계, 하계 3단으로 구획된 조선왕조 능에 유일한 형태의 묘역을 이뤘다.

 

 

노거수굴참나무가 듬성듬성 서서 도토리를 떨구고 그 사이에 낀 오리나무에는 누군가가 노랗고 빨간이파릴 듬성듬성메달아놨다. 가을전령이다. 미풍에 떨다 낙화하는, 그 낙엽이 우수수 몰려다니는 숲길의 낭만이 떠 오른다. 경종(景宗)이 세자일 때 빈이 된 단의왕후는 2년 만에 요절한 불운한 여인이었다.

 

정자각의 단청

 

빈이 죽고 2년 후 세자가 이 보위에 오르니 왕후자리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요절함이다. 그 불운의 여인이 잠든 혜릉(惠陵)이 쓸쓸했다. 고독한 여인혜릉을 뒤로하고 초록차일이파리 속을 한참 어슬렁대면 숭릉(崇陵)이다.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불모로 끌려간 효종이 청나라에서 낳은 세자가 현종이다.

 

오리나무엔 단풍이~!

 

현종(玄宗)은 부왕의 굴욕을 씻고 청을 징벌하려 북방정책에 무던히 애썼던 왕이었다. 현종의 비가 비극의 여인 명성왕후다. 숭릉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침인 것이다. 울 내왼 짐짓 양반걸음으로 신들의 정원이며 후예들의 유토피아인 동구릉을 세 시간여 산책했다.

 

경릉

 

에메랄드하늘이 가을햇살을 쏟아 붓는 녹색의 장원은 신들이 지키는 우리들의 유토피아였다. 명당이던 아니던 간에 이성계의 후덕에 우리는 아름다운 신들의 정원을 향유하게 된 셈이다. 일상에서 탈출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유토피아에서 한나절을 휴식하고 싶으면 동구릉을 찾을 일이다.

 

 

고즈넉한 고요와 청량감이 홍건이 베인 숲은 새의 노래가 있고 왕들의 진진한 스토리텔링이 넘친다. 태조를 비롯하여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얘기가 꿈틀대고 있어서다. 그실 이만한 유토피아가 서울인근에 있다는 사실은 행복이다. 울 내왼 가을, 겨울에도 아니 사시사철 신들의 정원을 찾아오자고 했다.   2018. 09. 26

 

숭릉

 

# 평소엔 능침은 금지구역인데 금년11월까지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오후2~4시까지 건원릉능침에서 동구릉역사탐방문화해설을 진행한다. 매회 20명이다. 조선왕릉 홈페이지(http://royaltombs.cha.go.kr)에서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금천교

재실

 

금천

재실내부

 

건원릉 앞 금천교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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