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

주상절리해파랑길과 대왕암 & 불국사`석굴암

 

주상절리해파랑길과 대왕암 & 불국사`석굴암(둘쨋 날) 

 

 

경주에서 감포 바닷가로 향하는 옛길, 추령재에서 함월산(含月山))계곡길을 따라 동해로 빠지는 길은 호국행차길이라 불렀다. 문무왕의 장례행렬이 이 좁다란 산골신작로를 통해 동해바다 대왕암에 묻히고, 신문왕은 마차를 타고 아버지문무왕의 묘를 찾아가 호국의 힘을 얻은 길이었다.

 

이견대

 

신문왕 이후 여러 왕들이 성묘행차차 이 길을 지나갔을 터라 '왕의길'로 불리고도 있다. 왕의길을 택시로 질주 동해바닷길-경주해파랑 길을 걸으며 대왕암과 주상절리에 취해보기로 했다. 신문왕이 부왕의 묘인 대왕암이 잘 보이는 언덕에 지은 정자가 이견대(利見臺).

 

 

무릇 신라의 역대 임금들이 이곳에서 문무대왕릉을 참배했을 이견대 앞 모래사장에 울 부부가 발을 담그기 무섭게 하늘을 찌뿌렸다. 금방 소나기라도 쏟을 듯 먹구름이 밀려온다. 놀랐던지 시꺼먼 바다도 성난 너울로 해안바위를 할퀴고 있다.

 

문무왕의 수중대왕암

 

해파랑길은 묵호에서 부산오륙도까지의 해안산책길을 이름이다. 긍께 여긴 해파랑길20구간이라던가? 빗발이 하나씩 떨어진다. 아까 우산을 빌려준 서기사님은 읍천항포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바다는 언제라도 일상에 찌든 생채기를 확 씻어줄 것 같다.

 

부채살주상절리

 

우리가 가슴팍을 열어 재치면 말이다. 까만 바다가 몰고 온 파도는 해안가 바위들까지도 시꺼멓게 만들었다. 저만치에 문무왕의 수중묘인 대왕암(大王巖)만 하얗다.

"내가 죽으면 화장(火葬)하여 동해에 장례하라. 동해의 호국룡(護國龍)이 되어 신라를 보호하리라."

 

 

신문왕은 부왕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불교식화장을 해서 해안에서 200m쯤 떨어진 바다에 유골을 모셨다. 길이 20m의 화강암바위섬 안에 길이3.6m, 너비2.9m 두께 1m 크기의 수중(水中) 못에 안치했다는 전설 같은 얘기는 팩트다.

 

 

그 대왕암을 멀리서 봐야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해안을 걷는다. 아낸 비 쏟아지기 전에 빨리 가자고 성화지만 나는 마이동풍이라. 거칠게 밀려드는 하얀 포말이 까만 바위들을 후려친다. 해도 바윈 끄덕 않고 멍든 피부도 더더욱 새까매진다.

 

 

몸뚱이가 부서지고 닳아도 태생적 색깔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억겁년 동안 해풍과의 싸움에 상처는 골골이 패여 주상절리 기둥을 만들어 해안에 붙박여 놨다. `육각기둥 주상절리로 부채를 만들고, 주름치마와 꽃봉오리를 빚어 1.7나 늘어놓은 만물상은 파도소리와 합연한다.

 

해파랑길20. 주상절리길

 

후드득 소나기가 스콜처럼 쏟아져도 젊은 커플들한테는 옹골찬 추억창일 뿐인지 그냥 즐기고 있었다. ‘주상절리파도소리길은 읍천항에서 벽화가 빼곡이 그려져 있는 그림있는 어촌마을’1.3km에 이어진다는데 울 부부는 감은사로 향했다.

 

 

신라를 통일한 문무왕이 동해 바다의 용이 되자 아들 신문왕은 부왕의 은혜에 보은하는 기도처로 감은사를 세웠다. 몽골의 난에 소실된 감은사는 금당 앞 석탑(국보 제112) 두 개만 남아 있어 쓸쓸했다. 신문왕이 대왕암성묘행차 때마다 들렸다는 기림사를 향한다.

 

감은사금당과 삼층석탑

 

기림사(祇林寺)는 선덕여왕(643)때 천축국(天竺國)의 승려 광유(光有)가 창건하고 후에 원효(元曉)가 중창하였다니 고찰중의 고찰이다. 신문왕을 비롯한 역대 왕들이 대왕암참배 때마다 찾은 곳이니 자연 사찰도 융성했을 테다.

 

기림사일주문

 

일주문을 들어서면 유서 깊은 고찰의 품격을 느끼게 된다. 가람의 위세도 대단하지만 나를 붙드는 건 헌다벽화로 알려진 차()문화와 경내의 오정수(五井水, 또는 오종수(五種水))였다.

헌다벽화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벽화란다.

 

 

벽화는 사라수왕이 물을 길어 차를 우려낸 뒤 광유성인에게 바치는 모습이다. 광유성인은 인도 범마라국스님으로 1500여 년 전에 함월산에 들어와 임정사란 절을 짓고 그린 벽화다.

 

기림사범종

 

오종수로 차를 다려 공양하는 급수봉다와 오종수로 오색화를 키운 급수양화를 수행법으로 삼아 불교에 정진했단 내용의 그림인 것이다.

 

 

그 오종수란 신비의 약수가 기림사에 있고, 오종수로 빚은 차가 우리나라 차문화의 효시란 점을 오늘 처음 알게 돼서다. 오종수로 재배한 나무에 다섯 가지 색의 꽃이 피는 오색화가 기림사를 가득했다고 기림사사적기에 전하고 있다.

 

오정수

 

오종수는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과 같은 물로 차를 끓여 마시면 차맛이 으뜸이라는 북암의 감로수(甘露水), 그냥 마셔도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후원의 화정수(和精水), 마시면 기개가 커지고 신체가 웅장해져 장군이 된다는 나한전 삼층석탑 아래의 장군수(將軍水), 마시기만 하면 눈이 맑아진다는 천왕문 앞의 명안수(明眼水), 물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동편 산마루의 오탁수(烏啄水)가 다섯 우물에서 솟아났던 다섯 가지의 기능과 맛을 가진 오종수다.”

 

헌다벽화

 

오종수는 탁월한 효능을 가진 신비의 약수인 것이다. 그 오정수의 물맛을 본 후 매월당김시습의 사당엘 들렸다. 떠돌이 생육신 매월당영가를 수습 제향을 뫼신 사당엔 시(주련) 한 수도 적혀있었다. 마음을 때려 여기 옮겨본다.

 

매월당김시습사당

 

문득 갰다 비오고 비오다 도로 개고/ 하늘 이치도 이렇거늘 사람들 마음이랴

나를 기리는 말이 헐뜯는 말 되고/ 명성 피하는 게 명성 구하는 일 되지

꽃이 피건 지건 봄한테 무슨 상관인가/ 구름이 가건 오건 산은 다투지 않네

세상 사람들아 내말 기억하시게/ 평생 기뻐할 일 어디에도 없다오.“

 

 

아까 주상절리길을 밟을 땐 소나기 퍼붓더니 기림사의 하늘은 청명하여 매월당의 시가 더 심금을 울렸다. 인생 욕심내 아등바등 살 필요 없다. 자연에 맡겨 안분지족한 삶을 누리라는 뜻일까?

 

 

유명한 오정수(五井水) 중 장군수(將軍水)는 마시면 힘이 용솟음친다 하여 조선시대 이곳에서 역적모의를 하다가 발각된 뒤 나라에서 샘을 메워버렸단다. 나한전 앞쪽 탑 샘, 절 입구의 샘이 사라지고 현재는 큰방 옆과 아랫마을에만 있고, 천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약초가 있었다는데---.

 

 

산사 앞 식당에서 산채비빕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불국사와 석굴암을 향했다. 주살절리해안을 음습하던 먹구름빗발은 씻은 듯 청명하다. 해맑은 가을이 토함산불국사에 내려앉고 있었다. 진초록 숲은 불국사를 찾는 이들의 세심(洗心)숲이라. 맑은 마음으로 정토에 발 내딛는다.

 

 

일주문을 통과 사대천왕(四天王門)품안에 든다. 이윽고 다보탑과 석가탑이 고즈넉한 품격으로 단아하게 울 내욀 맞는다. 아름다운 다보탑(국보 제20)은 볼수록 정교하다. 다보에 비해 간결 중후한 석가탑(국보 제21)은 본명은석가여래상주설법탑이라고 했다.

 

 

이 두 탑이 어쩜 불국사의 아이콘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게 한다.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로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제22)의 미적기교와 섬세함에 할 말을 잊게 한다.

 

 

1,500년 전에 정과 망치로 다듬고 끼워 맞춘 석축기술에 감탄할 뿐이다. 영상과 그림으로만 봐온 잉카문명의 신비 마추비추의 정교한 석축문화가 연상된다. 신라 경덕왕 때 불국사를 중수한 재상 김대성이란 건축가는 정말 위대한 장인이었던가 보다.

 

 

돌을 석고 주무르듯 했을 신의 손’! 그의 섬세한 손재주DNA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유전 돼 세계적인 건축기술의 산실이 됐나싶은 게다. 아쉽게도 저 계단다리를 오를 순 없다. 에둘러 대웅전(보물 제1744)으로 갔다.

 

관음전

 

대웅전은 석가모니부처를 모신 법당이며, 대웅(大雄)은 석가모니불의 큰 덕을 이르는 덕호(德號). 대웅전 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무설전(無說殿)이라. 불교궁극의 자리는 말글로 표현할 수 없는 자리 언어도단 (言語道斷)경지임을 표현하려 함이다.

 

 

그 옆의 관음전은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이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소리를 눈으로 보고 들으며 구원해준데서 우리들이 젤 많이 찾는 법당이다. 역시 북새통이었다.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의 극락전, 작은 소라모양의 머리칼이 있는 붙금동비로자나불 좌상을 모신 비로전을 훑었다.

 

무설전에 오르는 가파른 계단

 

글고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전으로 통하는 중문인 안양문(극락)을 바라본다. 부처님의 제자 상을 모신 16나한전을 들여다보고 범종각으로 내려와 석가`다보탑 앞의 당간지주와 마주쳤다. 범종은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시각을 알리며 공양과 예배시간을 알리는는 도구다.

 

관음전서 본 경내, 멀리 다보탑이 보인다

 

구름을 마시고 토한다는 토함산(吐含山745m)중턱에 자리한 불국사는 우리나라사찰을 대표하는 대찰이지만 그다지 넓지 않은 경내에 많은 건물을 탐방하는 동선이 짧아 좋다. 석굴암을 찾아간다.

 

당간지주

 

불국사에서 석굴암으로 오르는 9km도로는 울창한 숲을 뚫는 천상의 드라이브코스다. 글고 석굴암주차장에서 석굴암본전까지의 산책길1km는 천상의 힐링코스다. 새모래황톳길을 걸으며 숲의 정령을 오감으로 느끼는 것 만으로도 불토에 입정(入定)함이라. 기실 석굴암불상은 친근할 수 없어서다. 

 

 

석굴암은 불상보존을 위해 접근을 차단하여 포도시 여래좌상의 본존불만 2m앞에서 볼 수가 있기에 그 아쉬움을 산책길에서의 힐링으로 보상받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중학수학여행 왔을 땐 본존불 뒤로 돌면서 벽에 조각된 38체의 선불(仙佛)입상을 만지며 볼 수가 있었다.

 

석굴암 오르는 계단

 

그땐 불국사인근 여관에서 잠자고 일찍 일어나 불국사구경 후 산길을 한 시간쯤 걸어 석굴암에 닿았지 싶다. 아련한 기억속의 그때가 좋았다. 이후로는 두어 번 왔지만 본존불도 1m쯤 떨어져 마주해야 해 실망하곤 했는데 또 왔다.

석굴암후문

 

본존불의 시선은 주상절리해변의 대왕암을 좇는단다. 석물의 위치와 방향까지 고심했음이라. 석굴암(국보 제24) 역시 재상 김대성의 작품이라. 돌 세공술을 생각하면 그의 손은 신의 손이지 싶다.

 

석굴암본존불(엑스포전시장에서)

 

신의 손을 가진 김대성이란 선조가 있어 울 내왼 불국사와 석굴암을 찾아 더할 수 없는 평안과 힐링의 산책을 즐기는 거였다. 하여 신의 손이 빚은 성물(聖物)에의 접근금지를 다행으로 받아들인다. 기쁨은 마음 씀에 달렸다.

 

석굴암에서 조망한 동해  대왕암쪽방향

 

불국사. 석굴암,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을 향했다. 서울행KTX19;50발차까진 3시간의 여유가 있는데다, 볼 수 없었던 신라의 유물들을 접할 수가 있지 싶어서였다.

 

경주국립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은 넓은 부지에 현대식 건물로 부장품이 많았으나 신라관을 일별하고 정원벤치에서 잠시 쉰다는 게 오수에 들었다. 이틀간 강행군한 내 딴엔 피곤했던 모양이다.

 

경주박물관의 신라관

 

아낸 모른 챌 했다지만 자기도 졸음 쫓느라 비몽사몽 했단다. 그나저나 오늘 6시간을 동행(10만원에 대절)하며 정성껏 안내해주신 서☆☆기사님이 고마웠다. 기림사와 감은사는 순전히 그분의 강추로 탐방함이니 넘 고마웠다.

 

감은사느티나무와 석탑

 

또 하나 수중대왕암에 묻힌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여미면서 오늘날의 우리네대통령들을 생각해 봤다. 문무왕은 죽으면서도 호국일념으로 시신까지 나라에 바쳤다. 근디 우리네 전직대통령들은 애국을 빙자한 사욕 챙기기에 노심초사한 건 아닐까? 그 많은 돈은 죽어 어디 쓸려고?

 

감은사삼층석탑

 

감옥살일 했거나 현재 하고 있는 분이 네 명이나 된다. 국민화합이 겁나 편가르기를 즐긴 못난 대통령들! 그들이 구두선처럼 씨부렸던 선진국발돋음에 속은 울들이 창피하다.진정한 애국자였던 문무왕이기에 가장 약소한 신라가 똘똘뭉쳐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걸 귀감삼아야 했다.

 

 

정치인들은 모름지기 대왕암의 호국정신을 채 받아야 함이다. ~! 편안하고 고즈넉한 고도경주에서의 이틀간을 울 부부는 황혼의 허니문이라고 추억앨범에 쓸 것이다.

2018. 09. 09

 

불국사법고

자하문 앞에서

불국사요사체

 

#, 후기

시간없어 보문호수트레킹을 못했다. 묵고있는 코모도호텔이 보문호를 정원으로 삼아(?)서 심야에 주변을 어슬렁댔다. 싱어송라이브가 열리고, 거리의 화가에 내 얼굴을 맡기며 한몸 된 커플들이 밀어를 나누는 호반은 은은한 네온빛으로 곱게곱게 추억을 쌓고 있었다. 8할은 젊은이들었다.

호텔밀집지역 중 전망 좋은 코모도호텔은 5성급답게 객실과 뷰페식단이 만족스러웠다.

이번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건 코모도호텔과 서동근택시기사님(010 2294 9339)의 친절이라. 기회 닿으면 꼭 다시 찾고픈 사람들 이였다.

국립경주박물관

거리의 싱어송 라이브

보문호데크다리의 야경

거리의 화가에 맡긴 두 소녀의 진지한 표정

호텔로비. 위 사진 10장은 코모도호텔과 보문호수 밤 풍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