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경주의 햇살 & 달빛기행 (첫 날)

 

 

오전10, 아내와 난 두시간만에 신경주역에 내렸다. 지붕처마가 가을햇살 같기도, 비상하는 날개 같기도 한 역사를 나서며 울 부부는 사뭇 달떠있었다. 허니문 즐기고 오라면서 웃으며 손 흔들었던 둘째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긋지긋했던 여름 뒤안길의 가~ㄹ바람 타고 휑하니 떠나고 싶었다. 중학때 최초의 경주수학여행은 지금도 기억의 실타레에 선연하고, 근년에 찾은 경주라야 20여년도 훨씬 지난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사그라지고 있는 고도경주여서였다.

 

 

  대릉원(大陵園)

 

대능원후문을 들어서니 배롱나무가 붉은 꽃술을 흔들어댄다. 뒤엔 초록 능()이 거대한 젖가슴마냥 솟았다. 보드라운 젖가슴은 리드미컬하게 이어져 공원을 이뤘다. 젖가슴 골의 배롱나무를 비롯한 관목은 연못에 발을 담구고 지보다 더 멋진 자태를 뽐낸다. 시인이 아니고 취객이 아니어도 그 풍정에 반할만 했다.

 

 

천마총 속으로 몸을 숨겨본다. 하늘로 승천하는 말 그림은 죽은 왕을 어찌했다는 건가? 금관과 금붙이 껍데기허물만 고스란히 남기고 사라진 왕은 천마총이란 무덤이름만 남겼다. 사람들은 참 희한한 동물이다. 선조의 무덤을 파서 구경시키며 돈 벌고 있으니 말이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왕들의 계곡의 람세스와 투탕카맨무덤 파헤쳐 보물찾기, 진시황무덤 열어 구경시키며 떼돈 버는 중국인들이 단연 불한당우두머리일 테지만 말이다.

여기엔 신라시대 왕과 왕비 왕족들 무덤 23개가 125,400평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 대능원이라 한다.

 

천마총내실, 발굴당시의 모습을 재현

 

 무덤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미추왕릉을 빼면, 대릉원은 빼곡 울창한 아름드리나무숲과 잘 다듬어진 정원수사이를 거닐며 초록젖가슴을 맘껏 더듬을 수 있는 최상의 휴식능원이다. 한나절을 어슬렁대도 좋을 무릉도원 아닌 유릉도원 힐링파크다. 미추왕릉을 보고 대능원을 나왔다.

 

대릉원연못

 

천마총입구에서

천마총에서 발굴 된 금관과 금장식품

'백화수피 천마도 말다래'를 복원하기 위해 자작나무껍질에 천연염료를 썼다

 

♠첨성대(瞻星臺)

 

첨성대를 향한다. 대평원에 별을 관측하기 위해 돌탑을 쌓은 신라인들은 참 대단하단 생각을 하게한다. 별보는 까닭은 두 가지목적이 있었단다. 별의 밝기와 현상으로 국가의 길흉을 점치는 일이고, 역법(曆法. 달력)을 만들어 생활과 농사에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함이어서였다.

 

 

우리내왼 밤에 다시 첨성대 앞에 섰다. 불빛속의 동궁과 월지, 월성교를 달빛기행(10시까지) 하려고 보문관광단지에서 택시(편도 15천여원)를 이용했는데 불빛의 첨성대는 훨신 돋보였다. 별을 관측하긴 하늘은 어두운데 인산인해였다. 계림(鷄林)을 향한다.

 

 

 

♠계림(鷄林)

 

김씨 시조((金氏 始祖) 김알지(金閼智)가 태어나 계림(鷄林)이라 부른다는 계림은 첨성대와 월성(月城)사이에 있는 숲으로 첨성대에선 10분 거리쯤일까. 허허벌판의 첨성대와는 도랑 하나로 별천지를 이룬다. 울창한 숲이라. 숲도 몇 백 년 묵은 귀목, 왕버들, 단풍나무 등의 거목들이 자웅을 겨루는 전시장이라.

 

 

천년을 넘긴 팽나무고목(古木)까지 갖은 풍상을 겪으며 울퉁불퉁 훼훼 꼬며, 꼬불꼬불 비틀다가 썩어문드러지기까지 한 거목들이 신라천년의 역사를 오롯이 말해주고 있나 싶었다. 숲 안에 조그만 제각이 있다. 문화해설사가 단체관광객들 앞에서 해설을 하고 있다.

 

김알지계림비각

서기60(탈해왕4)84일 밤, 호공(瓠公)이 월성(月城)마을을 지나가는데 서쪽시림(始林)이 환하게 밝아지며 자주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그 구름 속에 나뭇가지에 황금궤() 걸려 있었다. 마침 그 나무에는 흰 닭이 울고 있어 탈해왕(脫解王)에게 고()했다. ()이 궤()를 열자 사내아이가 일어나 이름이 알지(閼智, 아기)’라 한다.

 

 

탈해왕이 알지를 태자(太子)로 삼았으나 왕위(王位)를 파사(婆娑)에게 양보했다. 알지는 금궤(金櫃)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을 김()으로 하였다. 그 후 알지의 6대손미추(未鄒)가 김씨로써는 최초로 신라왕이 되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울 부부는 하늘을 가린 태곳적 숲 벤치에 앉아 간식으로 허길 달래며 천년 숲에 얽힌 신라의 혼을 유추해봤다. 이 태곳적숲길을 걷는 산보자들이 그렇게 평안하고 여유로워보였다. 숲속의 내물왕릉(신라17대왕)의 왕은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처음 사용하였다.

 

 

또한 한자사용을 첨 했으며 김씨가 왕위를 세습한 시초였단다. 계림의 숲은 곧장 교동마을로 이어졌다. 마을엔 스님과 공주의 불꽃사랑과 만석꾼 경주최부자의 얘기가 살아 꿈틀거리는 자부심이 대단한 동네다.

 

태곳적 숲 벤치에서 천년의 숲향기를 마시는 힐링은 특별했다

천년을 산 귀목은 껍질 한 편만 남겨 계림의 전설을 대변하고 있다

 

♠월정교와 경주최부잣집 얘기

 

원효와 요석공주가 첨 만나 보듬은 다리가 있고 경주최부잣집이 있는 유서 깊은 동네다. 계림울타릴 벗어나면 깔끔한 기와집의 경주향교가 마을의 분위기를 돋운다. 마을 앞 남천을 건너는 새로 지은 월정교와 요석궁이 넘 웅장하고 사치스러워 원효대사가 마뜩잖해 외면하기 딱일 것 같음인데~?  

경주향교

 

풍상에 닳고 비딱해진 1,500년 전의 꾸끔스런 목책다리로 재현했음 싶다. 어느 날 스님이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줄 텐가? 하늘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라고 다리에서 흥얼대던 그 다리 말이다.  마침 그 노래를 태종무열왕이 듣고 스님이 아들을 낳고자함을 간파했다.

 

밤과 낮의 월정교

 

태종은 요석궁의 공주가 생각나 얼른 궁리를 보내 스님을 찾아서 요석궁으로 모셔가라고 명했다. 요석궁의 공주는 과부였다. 허겁지겁 달려오는 궁리를 본 스님이 부러 개천에 빠져 옷을 적셨다. 궁리가 물에 빠진 스님을 데리고 요석궁에 가서 옷을 말리게 했다.

 

밤의 요석궁? 스님과 공주가 재림한다면 기절초풍할 테다

 

공주가 치맛바람을 떨며 부산을 떤다. 한창 농익은 남녀는 몸뚱이가 근질근질 불꽃이 일자 냅다 보듬고 천당지옥을 왕래했다. 사흘간 천당지옥을 몇 번 왕래한 스님은 말 없이훌적 떠났다. 글고 자루 없는 도끼공주는 열 달 후에 아들을 낳으니 설총이라.

 

 

그 동구 밖 다리는 원효대사가 미친놈 행세를 냈던 시시한 나무다리다. 근디 대사가 환생해 온다면 기겁초풍 할 호화판다리라니? 잘 못 왔나싶어 도망갈까 싶다. 하긴 요석공주에게 기둥나무 꽂아놓곤 생전에 와보지 않은 스님이니 환생해도 여긴 안 올 테니 걱정 붙들어 맨다.

 

 

해서 밤에 다시 와 휘황찬란하게 불붙은 요석궁과 월정교를 보며 스님과 공주의 천당놀이를 상상해 봤다. 사랑의 불꽃을 태울 때 저렇게 비까번쩍 황홀하고 멋있었으리라. 미상불 원효대사발길은 곧 역사가 됨이다. 허나 내가 생각하기엔 원효대사는 요석공주에게 못된 남정(?)’이기도 했으리라.

 

 

 

과부 가슴팍에 불질러놓고 나 몰라라 사라진 마흔 살의 남정네가 아닌가? 동네 한 가운데 최부잣집을 찾아들었다. 대문 앞에 곳간을 열어라는 현수막을 걸은 기와집을 살폈다. 만석꾼 집치곤 그냥 동네부잣집이었다. 이 집터는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터이기도 하다.

 

경주최씨 최언경(崔彦璥)이 내남면 게무덤에 터를 잡고 정착하여 약 200년을 살다 교동여기로 이사와 5대를 만석꾼으로 뭉그적댔던 곳이다.

최부자집의 유명한 육훈(六訓)을 생각해봤다.

 

1)과거를 보되 진사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 2)만석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3)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4)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5)주변 100리 안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6)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요석공주가 원효와 사랑의 화톳불을 피우고, 설총이 고고소릴 울리고, 만석꾼 경주최씨가 5대에 걸쳐 뭉그적댄 명당을 울 부부가 기웃거리며 밟고 있다. 최부자집의 육훈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특히 부자들이 귀감삼아야 함이라.

보문관광단지 내 코모도호텔에 체크인 하러 택시를 탔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오후3시 체크인시각이 한 시간쯤 남아 단지입구에 내려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을 들러보기로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쿠미 켄코가 설계한 공원은 황룡사9층목탑을 음각한 거대한 경주타워가 상징물이다.

 

경주문화20년을 디지털화 전시하고,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체험현장프로그램이 곳곳에 마련되었다.

 우린 경주타워82m꼭대기에 있는 구름위의 카페에 올라 엑스포공원과 보문단지풍경을 조망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4시간여의 발품관광을 휴식하는 시간은 감미로웠다. 초록숲속에 호반을 낀 보문관광단지는 현대식 건물로 채워진 멋진 전원소도시였다. 호수를 한바퀴 산책하는데도 한 시간반쯤 소요된단다. 낼 새벽에 일어나면 모를까 시간이 될랑가 모르겠다.

 

전망대서 조망한 보문호반

 

보문관광단지가 현대식신시가지라면 아까 걸었던 유적지는 천년고도의 맨얼굴이 수없이 박혀있는 보석 같은 역사집합시가지인 셈이다. 공원내를 산책했다. 각종전시물 보단 멋들어진 조경 숲을 산책하는 한가로움이 흐뭇했다. 한 시간을 그렇게 힐링`데이트한 셈이다.

 

황룡사9층탑을 동국제강이 자체연수원부지에 재현한 철재9층탑, 엑스포상징건물의 음각9층탑과 매년 혼인을 치룬단다

 

둘째 말따나 생뚱맞게 허니문여행길이람 좋을 텐데 그럴 기분 내긴 울 부부는 넘 구혼이라. 표정만 봐도 창시속이 어떤지를 훤히 꿰뚫고 있는 아내에게 뭔 쇼를 할 수 있을지? 생각이 끊긴다. 오후3시 반쯤 코모도호텔711호실에 체크인 했다.

 

황룡사9층탑을 음각한 엑스포상징물

 

♠동궁(東宮)과 월지(月池)의 달빛 기행

 

객실도 넓고 깔끔한데다 부대시설과 환경 특히 보문호반이 앞에 깔린 예상보다 좋은 5성급이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들었다. 6시에 구내 아리랑식당이 개문하자마자 입장했다. 저녁을 먹고 동궁과 월지(안압지)야경에 취하며 달빛기행을 가기위해서다. 뷔페도 알차고 맛깔스러워 울부부 입맛에 맞았다.

 

코모도호텔

 

포식을 한 후 7시쯤 호텔콜택시를 이용 동궁과 월지 달빛기행에 올랐다. 근디 경주구시가지에 들기도 전에 정체현상을 빚는다. 대로는 막혀 차량불빛이 꼬리를 물어 칠흑 속으로 이어졌다. 기사님이 샛길로 들어섰다. 월정교에서 시작하여 첨성대를 보고 동궁월지 야경을 하는 순서가 택시 잡아타고 귀가길도 효율적이란다.

 

 

교통 월정교까지 요금은 13천원이었다. 명함을 하나 달랬다. 낼 일정을 타협 하고팠다. 휘황찬란한 조명에 휩싸인 월정교는 낮의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재림해도 기절초풍할 터였다. 인파에 떠밀리는 북새통은 달빛기행의 감미로울 로망을 포기해야 할 참이었다.

 

 

계림을 휘도는 달빛 길에 들자 인파가 뜸해졌다. 어둠을 뚫는 달빛 길은 가느다랗게 첨성대를 향한다. 불빛 속의 첨성대는 색감과 음영이 살아 꿈틀대는 생동감을 자아냈다. 허나 정작 울부부를 놀라게 한건 수많은 인파였다. 어디서 어떻게 몰려왔을까?라고 울부부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문을 했다.

 

 

우리처럼 늙은 꼰대는 찾아보기 힘든 9할이 젊은 커플들인데 주책없이(?) 아니꼽다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내 말따나 늙으면 방꼭이나 할 일이지 젊은이들 속에 뒤엉킨다고 초록동색이 될 수는 없을 테다. 동궁과 월지를 향한다. 갓길의 서치라이트가 어둠의 대지를 가르는 불빛 길은 곧 달빛 길이기도 하다.

 

 

가없을 평야에 내린 어둠을 뚫는 달빛 길은 커플들의 데이트코스였다. 젊은이들이 부나비처럼 모여들어 달빛기행을 즐기기 위해 벼르는 곳이 여길까싶었다. 반시간쯤 소요되는 달빛 길은 동궁과 월지에 닿아서는 어안이 벙벙, 내가 할 일이 고작 줄서기일 뿐이란 걸 인지하는 거였다.

 

 

매표소 앞 줄서기가 50m는 될 터인데 동궁과 월지에 입장을 해서는 갓도 끝도 없는 부나비행렬의 초라한 일원일 뿐이었다. 행렬 따라 더디게 꿈틀대는 부나비신세는 멍하니 휘황찬란한 불빛야경에 눈 팔며 감탄하는 짓거리였다. 동궁은 신라의 왕궁이었고 월지는 그 안의 연못 이였다.

 

 

신라의 석축 쌓는 기술은 독보적이라. 꺾고 휘며 곡선의 미학을 이룬 석축위에 임해전(臨海殿)이란 궁중전각을 세우고 연못을 파 못 안에 세 개의 섬을 만든 조경술의 극치를 연출했다. 몽골의 난에 소실된 궁궐 탓에 경주(신라)엔 궁궐이 없어 태자가 머문 동궁이 그나마 이란다.

 

임해전

 

근디 동궁과 월지와 그 안의 세 개의 섬들도 불타는 야경일 뿐 실체를 볼 수가 없었다. 군신들이 연회나 회의를 하고 귀빈을 접대했던 임해전은 경순왕이 태조 왕건(王建)을 초청하여 주연(酒宴)을 베풀고 신라를 통째로 헌납모의한 별궁이었다. 그 꼴을 볼 수가 없었던 마의태자는 보따리를 싸서 금강산을 향하고~!

 

 

천년의 풍상을 담은 민낯을 보려면 햇살기행을 해야 함을 절감케 한다. 연못 안의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란 전설속의 해중선산(海中仙山)도 어디에 있는지 캄캄 언저리윤곽만 보인다. 신라가 멸망하고 이곳이 폐허가 되니 오리와 기러기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치며 살아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이 안압지라 불렀다.

 

 

그래 내 또래는 교과서에서 안압지라고 배웠던 것이다. 암튼 난 인파의 장사진속에 묶인 부나비 되어 연신 카메라만 찰각되다 해산행렬에서 벗어났다. 그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그 많은 젊은 커플들은 어디로 숨어들어 휴식을 취할까?

 

 

경주지자체는 신라선조들 유적장사 못잖게 달빛기행이란 밤의 여정을 파는 이벤트장사로 톡톡한 재미를 보나싶었다. 내가 인지한 건 안압지는 꼭 햇살기행과 달빛기행을 따로 해야 함이라. 햇살하의 실체를 알아야 달빛속의 황홀이 더 아름다울 게다.

 

 

11시에 호텔에 들어섰다. 늙다리허니문이라 곧바로 잠으로의 여정에 빠졌다. 참 낼은 아까 이용했던 택시기사님과 택시투어를 하자고 아내와 입을 맞췄다. 그래 전활 넣었더니 '오케이', 아침에 호텔정문에서 미팅키로했다.  

2018. 09. 08

 

임해전

 

 

#,후기 *경주최부자와 박정희*

 

해방 직후 독립운동가이며 경주최부잣집의 고 '최준 선생'은 전 재산을 털어 대구대를 설립했다. '최고의 대학을 만들겠다'던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에게 구두로 대구대를 무상양도하였으나, 이병철은 학교에 신경도 쓰지 않은채 약속을 져버렸다.

그리고 이병철은 대구대를 박정희 정권때 최준선생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구대를 박정희에게 헌납하였다. 박정희는 대구대를 영남대로 바꾸면서 최씨 집안의 ,선산이 동시에 영남대 소유로 넘어 갔다. 박정희 일가로 넘어간 영남대는 최씨가문의 선산을 민간에 팔아 후손은 묘를 이장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라는 <201321일자 한겨례신문>기사가 있다.

 

*최준(崔浚 1884~1970. 汶坡))선생은 경주최부잣의 마지막 부자로 백산 안희제(安熙濟)와 함께 백산상회(白山商會)를 설립하여 막대한 독립자금을 제공하였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지금도 영남대 실소유주가 박근혜일가라면 국가에 헌납해야 마땅함 아닐까. 경주최씨들이 박통에게 헌납한 건 애시당초 아니었지 않나?  바다속 대왕암에 묻힌 문무왕의 호국정신이~.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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