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금정산 & 범어사
금샘
이틀간 추적추적 내린 봄비가 연둣빛세상을 싱그럽게 빚었다. 범어사입구에 발 내딛는 순간 풋풋한 신록의 골짝을 울리는 물소리에 나를 잊는 속탈기분을 느끼게 된다. 반시간전만해도 나는 도시의 공룡전차 속에서 사람들로 부대꼈다. 산사(山寺)는 아니 4월의 신록은 마술같이 나를 온통 연푸르게 했다.
범어사골짝
사람이 자연에 동화된다는 게 이리 쉬운 건 조춘과 만추때일 것이다. 수령이 100년을 넘었다는 등나무를 비롯 450여 그루가 얽히고설킨 ‘등운곡(藤雲谷)’에 몸을 들여놨다. 지금 막 연보라수술을 치렁치렁 늘어뜨려 짙은 향 내뿜으며 딴 나무에 기생서방 열중인 등나무군락이 별천지를 이뤘다.
등나무
스킨십에 도통한 넝쿨식물등나무는 옆에 뉘 있으면 비비꼬며 엉키는 통에 뿌리치질 못한다. 갈등(葛藤)이 얼마나 진절머리 나는 피말림인 걸 등운골에서 실감한다. 놈이 성가셔 몸 비뜰어 굽이친 소나무와 팽나무와 참나무, 하늘에 닿을 듯 솟은 키다리삼나무도 등나무의 성희롱에 몸살을 한다.
등은골 등나무의 스킨십
등나무가 사랑받는 때는 지금부터 5월까지다. 연보라꽃잎과 은은한 향기로 치명적인 유혹을 하는 땜이다. 범어사등나무들의 성희롱분탕질에 시간을 잊으며 800여m숲길을 더듬는다. 거기 꿈길 같은 등나무숲을 빠져나오면 부도밭과 성보박물관이 있다.
부도밭
범어사명물인 은행나무와 소나무가 박물관뜰 안에서 파란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범어사일주문은 여느 사찰에서 볼 수 없는 독보적인 건물이다. 광해가 세운 일주문은 숙종이 돌기둥으로, 이어 정종이 완성했단다. 보면 볼수록 기이한 독특한 건물이다.
독보적인 일주문
숙종(1718년)때 세워진 일주문의 ‘金井山梵魚寺’와 ‘禪刹大本山’이란 편액은 화엄사찰서 선종사찰로 거듭났단 걸 포고함일 터였다. 일주문을 나서면 사천왕과 불이문이, 불이문을 나서면 대웅전이 앞을 가로막는다. 석탄일제등행사를 위한 거미줄(?) 치기로 공간이 어지럽다.
대웅전의 봉축등 얼개
초파일봉축 때 금정골짝을 밝힐 불의 축제를 상상해 봤다. 신록을 태우는 불길~!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기도한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범어사는 임진왜란 때 잿더미가 돼버려 선조가 중창, 광해(1613)가 완성했단다. 해인사, 통도사와 영남의 3대 사찰로 계명암, 내원암, 청련암, 금강암 등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나한전과 산신각
범어사를 빠져나와 연둣빛신록의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장이 된 계곡에 들어섰다. 바위사이를 내달리는 물소리, 새들의 지저귐, 바람결에 속삭이는 연두이파리의 떨림에 몸뚱일 담궜다. 바윌 밟고 오르는 골짝은 끝이 없다. 시간은 더디고 더뎠다. 아내는 꿈속을 거닐고 있단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작은 얼굴 치켜들어 수줍게 인살 하고, 무리지은 철쭉이 화사하게 퍼레이드를 펼친다. 4월의 햇살이 신록사이를 애무하는 실루엣은 황홀이라! 우린 오지게 그 황홀경에 취해 시간을 더듬는다. 잔인한 4월은 잔인할 만큼 내게서 일상의 찌꺼기를 쓸어낸다.
바람에 흔들리는 연두색잎에서 물방울이 떨어질 것 만 같다. 연둣물에 홍건이 적시면 싶었다. 드뎌 북문이 나타났다. 깃발이 펄럭댄다. 하얀 성벽이 구렁이처럼 산릉을 향해 기어오른다. 그 끝머리우듬지에 바위군락 고담봉이 보인다. 우물쉼터에서 기갈을 해소했다.
북문
누런 고양이 한 마리와 까마귀 두 마리가 우릴 지켜보며 음식부스러길 노린다. 남겨놓자는 아내와 안 된다는 내가 잠시 실랑일 했다. 콧물도 없는 빈 자리에 놈들은 황당했을 테다. 금샘을 찾는다. 잔챙이 참나무들이 막 연두새싹을 밀쳐내느라 안간 힘을 쏟고, 그늘사초가 푸른 머리칼을 빗질하고 있다.
북문 안부의 쉼터
금샘을 찾아가는 싱그러운 길섶에 바위가 보초를 서고, 구릉길은 기폭이 리드미컬해 정답기까지 했다. 바위들은 어디서 굴러와 외똘마실을 일궜을까? 금샘도 거대한 바위군락 속에 감춰졌다. 밧줄을 잡고 올라야 얼굴을 내민다. 높이 5~6m 선바위꼭대기에 깊이가 0.3m, 둘레가 3m 정도의 샘이 있다.
금샘, 노을빛 물들었 때 찾았어야 했다.
샘속의 거뭇한 바위무늬가 석양빛을 반사할 땐 흡사 황금물고기[金魚]가 헤엄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금샘[金井]이라 명명했다. ‘금정산’의 유래고 ‘범어사’라는 절 이름 어원이라.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됐다. 금샘 물은 아무리 가물러도 마르질 않는단다.
가운데 뾰쪽바위탑이 금샘, 뒤로 이어지는 장군봉
금샘에서 내려와 아까 온길을 살짝 되짚다 우측으로 200m직진하면 거대한 바위동네금정산최고봉인 고담봉이라. 802m고담봉은 화강암봉우리로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 지류와 수영강(水營江)의 분수계를 이루는 양산시가지를 조망한다. 북으로 장군봉(727m), 남쪽으로 상계봉(638m)과 백양산(642m), 그 사이로 원효봉·의상봉·미륵봉·대륙봉·파류봉·동제봉 등의 준봉이 나타난다.
고담봉에서 조감한 낙동강,경부고속도,양산시가지
또한 남쪽을 향하는 4개의 성문을 가진 둘레 17㎞의 금정산성(金井山城:사적 215)이 있는데, 숙종 29년(1703년)에 왜구의 재침을 막기 위해 산능선을 따라 축조했단다. 허나 왜구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아낸 기록은 없다. 되려 왜구의 아지트가 된 슬픈 역사의 기억뿐이다.
북문에서 조감한 금정산성과 고담봉바위군락
왜구가 침입하자 수성해야할 원균은 삼십육계치기 바빴고, 선조는 억수같이 퍼붓는 장대비 속에서 의주로 도망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왕이기에 수행하는 신료들도 쥐도새도 모르게 뿔뿔이 제 살길 찾아 뺑소니 쳤던 것이다. 심지어 호위병들은 왕이 먹을 음식까지 먹어버렸으며 백성들은 선조를 행해 경멸의 손가락질 했던 것이다.
동문을 향하는 금정산성
성을 쌓기에 앞서 왕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심신부터 애국애민의 담금질을 했어야 한다. 어린학생들 300여명이 수장 되도 침실에서 나 몰라라한 대통령(국군통수권자)을 뽑는, 그런 대통령을 싸고돈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면 안된다. 쌓은 돌멩이 수만큼 백성들의 골육을 쥐어짜낸 서글픈 원혼만 쌓여있을 금정산성에 한참 머뭇댔다.
유사 이래 지구상의 모든 성벽과 요새들은 기획 완성한 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한 채 백성들의 비극적인 원혼만 켜켜이 쌓은 애물단지가 되곤 했었다.
명분은 백성들을 위해서였지만 실은 위정자들의 사욕에 더 집착한 구조물들이 아니었을까? 금정산성에 서서 성벽 쌓느라 죽기 살기 했을 민초들의 고통을 생각해 봤다.
어제까지의 빗발로 미세먼질 쓸어낸 하늘은 푸르디푸르고 산록은 연둣빛 녹녹한 신록으로 물들었다. 4월의 예찬은 계절의 여왕5월을 초대하려 함이라. 나의 오랜만의 산행을 금정산에서 시작하길 얼마나한 풋풋함인가!
오른쪽무릎이 예전 같진 안했지만 행복한 산행이었다.
2018. 04. 25
금샘 뒤로 금정산성이 북문을 이어 동문을 향하고 있다
고답봉정상에서 인증셧하는 산님들
범어사입구의 서양인 커플
입구의 연리지
등운골등나무의 개화
동백꽃과 등나무꽃
삼나무군락
편백숲
성보박물관의 은행나무와 석탑 뒤로 계명봉
성보박물관의 반송
범어사 지붕 뒤로 연초록계명봉
연리목백일홍
천왕문을 나서 불이문으로
다리 꼬고 있는 연리지의 프로노그라픽
고담봉샘물터
금샘 길목에 그늘사초가~!
금샘길의 바위군상들
금샘에서 본 고담봉
고담봉엘 오르는 사다리
양산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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