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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동백꽃 떨군 옥녀봉엘 오르면서

동백꽃 떨군 옥녀봉엘 오르면서

 

 

싱그러움이 숨어버린 아니, 긴 겨울잠에 침거했던 1월에 장산을 찾았었다. 옥녀봉에서 낙상하여 손목골절로 반여 년을 고생한 그 현장도 이참저참 찾아가보자는, 아내의 도둑놈 제발지린 듯한 심리도 한 몫 했던 산행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트라우마는 왼손에 솔찬이 남아있다.

 

장산공원호수

 

벚나무는 하얀 꽃잎 대신 연두색이파리로 치장했다. 장산입구공원은 흡사 연둣빛차일이라도 친 듯 풋풋하다. 상춘객들의 발걸음도, 표정도 신록의 푸름으로 달떴다. 연두색파스텔은 골짝에서부터 시작하여 산야를 물들이고 있다. 바야흐로 계절의 여왕 맞을 채비를 하는 성싶다.

 

 

계곡의 물길도 제법 낭창하게 재잘된다. 지난겨울추위가 엄청 모질었던 모양이다. 진홍동백꽃잎에 누런 상흔이 많다. 상처 안은 동백꽃이 숲길에 떨어져 딩굴고 있다. 아직 멀쩡한 꽃봉오리가 통째로 떨어진 걸 보면 문득 정암조광조(靜庵趙光祖)선생이 생각난다.

 

동백꽃나무 뒤로 아왜나무 숲

 

비운의 선생을 그리워하던 성균관 후학 열한 명이 고향나주에 심은 동백나무는 오늘날 천연기념물로 지정 돼 추모의 꽃동산이 됐다. 엄동설한의 붉은 동백꽃은 피었다가 그대로 낙화, 마치 선생의 꼿꼿한 절개와 기상을 상징하는 듯 해서다. 하여 선생을 흠모하는 유생들이 여기저기에 동백나무를 많이 심었단다.

 

장산엔 너덜지대가많다

1510(중종 5) 조광조는 생원시에, 1515년에 별시에 급제, 사간원 정언 등의 관직에 올라 중종의 절대신임 속에 위민정치를 시도한다. 4년 후에는 이상정치(理想政治)를 실현코자 공신세력들의 위훈삭제를 부르짖어 남곤(南袞), 심정(沈貞) 등의 반격을 자초하는 빌미가 된다.

 

 

그들은 궁궐후원에 있는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고 써서 벌레가 파먹게 한 후, 중종께 고해바친다.

(조광조)씨가 왕이 된다는 유언비어음모를 퍼뜨린 것이다. 대노한 중종은 조광조를 비롯 70여 명을 모두 감옥 또는 유배시켜 사약으로 죽였다.

 

 

능주 비봉산자락으로 유배된 정암선생은 섣달스무날 서른일곱 살에 사약을 받아 절명하며 선혈을 토했다. 개혁정치의 꿈을 접어야 했던 옥사였으니 이른바 기묘사화(己卯士禍).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을 비롯한 율곡 이이선생의 탄원도 그의 요절을 어쩔 순 없어 통탄해야 했다.

 

 

동백꽃의 검붉음은 정암선생의 못다 피운 선혈자국일지도 모른다. 이곳 부산출신 김기춘실장이 정암선생의 죽음을 귀감삼아 개혁정치를 채 받으려 했다면,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고, 부하직원들의 감옥행도 없었을 테다.

 

 

김기춘과 이명박근혜는 동백꽃 찾아 동백섬에 갔어야 했다. 동백나무 뒤로 아왜나무의 신록이 싱그럽다. 아왜나무는 불에 강해 공원조경수로 사랑 받는단다. 수분을 엄청 품고 있어 불길 속에서 보글보글 거품을 일으키며 화염과 맞서는 상록수다. 기춘이는 아왜나무 흉내라도 냈어야 했다.

 

 

너덜길에 들어섰다. 장산엔 너덜지대가 십여 군데는 될 것이다. 태초에 장산은 야금야금 파고드는 바다를 혼내주기 위해 바위를 부서서 쏟아 내렸던 모양이다. 바위 굴러 떨어지는 살벌한 전쟁터를 상상해본다. 우르르 쾅! 하는 경천동지소리에 바다는 기겁을 하며 물러섰을 테다.

 

 

그 후 부산앞바다는 다소곳이 눈치를 보며 많은 백사장을 만들었다. 부산해안에 해수욕장이 많은 건 장산의 바위벼락전술 덕일 것이다. 안부에 닿았다. 골절된 손목을 가슴팍에 붙들어 매고 하산하다 여기 안부에서 쉬고 있던 어느 산님에게 최단하산길을 물었던 곳이다.

 

옥녀봉서 조망한 해운대

 

근디 그는 시내로 향하는 가장 먼 코스를 알려줘 내 생애 가장 길었던 지긋지긋한 시간을 안겨 줬던 것이다. 엉터리 길잡이의 실수가 빚는 낭패가 어떨지를 생각해 봐야한다.

어설픈 선무당이 생사람잡는다,는 속담은 허튼말이 아니다. 무릇 겸손해야 함이라.

 

광안대교

 

근디 아내가 오늘도 옥녀봉엘 오르잔다. 깊은 상처의 트라우마는 그 비극의 현장을 되찾게 하는 주술을 부리나 보다. 상상하기도 싫다면서 아내는 옥녀봉엘 향했다. 해운대와 광안대교와 이기대길과 오륙도가 희뿌연 안개 속에 꿈꾸듯 아른댄다.

 

 

옥녀봉바위는 그대로인데 착잡한 심경은 떨칠 수가 없다. 실수는 앞날을 밝히는 지혜로 거듭난다. 내일은 동백섬을 찾아들어 정암조광조선생을 기리고 싶다. 430여 년전의 선생의 개혁정치를 오늘의 위정자들이 반추해 보면 어떨까? 

2018. 04. 22

 

 

아왜나무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