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아름다운순례길, 변산문학동산

 

* 미륵산순례길 *

 

미륵사지, 멀리 동탑이 보인다 

 

익산 미륵산둘레길은 익산의 역사문화탐방길로 2009년에 길을 닦아 3년간 조성된 역사체험힐링처로  미륵산길, 함라산길, 강변포구길, 성당포구길, 무왕길, 용화산길 등 6개 코스와 연계 총연장 99km에 이른다.

 

 

 

미륵산둘레길에선 고도(古都) 익산의 역사와 숨결을 느낄수 있는데 오늘 오후 우리부부는 아름다운순레길을 더듬어보기로 했다. 그실 나는 미륵산은 뻔칠나게 오르면서 둘레길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근디 미륵산등산로가 많은 등산객들로 날로 황폐화 흙먼지길이 되면서 난 한적한 샛길을 찾게 됐고, 오늘 아내의 권유로 순례길을 탑방키로 했다.

 

냉청약수터, 생수장사들이 한참동안 냉청물을 퍼서 생수로 팔았다고도 했다

 

아름다운순례길은 복숭아길(간재선생묘소-장암마을), 정정렬명창길(장암마을-미륵산성), 기준고성길(미륵산성-구룡마을), 대나무숲길(구룡마을-미륵사지,) 간재선생길(미륵사지-간재선생 묘소) 등으로 연결되는 총 18km의 미륵산둘레길의 한 코스다. 


 

우린 미륵사지에서 시작 냉청약수터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지난 1980년부터 시작된 미륵사지 발굴조사 결과 국내 최대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됐단다. 2009년 미륵사지석탑복원공사로 출토된 사리장엄, 금동향로 등 1만 9천여 점에 이르는 귀중한 유물이 출토되어 보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냉청약수는 지금처럼 갈수기에도 암반수를 펑펑 쏟아내고 있었다. 한 때 어느생수장사가 여기 약수를 무단으로 퍼서 시중에 생수로 팔아먹은,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일확천금을 꿈꿨단 노다지터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십여 년 전만 해도 약수터는 붐볐는데 인적이 뜸해 적막하기까지 하다. 
 

 

 

약수터의 추색은 더없이 황홀했다. 습한골짝이어설까 나무잎들이 무성하고 단풍빛도 윤택하다. 쉼터에 앉아 짙어가는 만추의 농염과 고적한 샘터에서 옛날의 추억 한 토막씩을 꺼내 달래며 세월의 덧 없음에 숙연해졌다. 그땐 미륵산행 주등산로가 여기였고, 분재에 미처있던 나는 마사토채취도 근처에서 했었다.

 

 

사실 내가 산행을 시작한 계기는 분재에 빠져 소재를 구하러 산에 다니면서였다. 그당시 미륵산등산로는 있는 듯 없는 듯 했었다. 근데 지금은 많은 등산로 탓에 산이 황폐화될 정도여서 약수터길은 외면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더욱 한심한 건 지자체가 등산로정비를 구실로 황폐화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기도 하다. 

 

 

약수로 목을 추기고 소림사쪽을 향한다. 유명한 중국의 小林寺와 동명인 소이가 아리송하다. 먼 발치에서 기웃대곤 단풍터널로 들어선다. 인적끊긴 호젓한 숲길은 울 부부의 세상인데 나이 탓인지 결코 로맨틱하질 않다. 아니 몇 십년을 거슬러 젊은 날로 내닫고 싶은데 못난(?)아내는 남새스럽단다. 그건 정녕 내 탓일까?싶은 거다.

 

 

소림사를 먼빌치에서 훑고 산 잔등 하나를 넘으니 상상을 절한 안내판 하나가 쉼터를 안내한다. 아흔아홉배미 다락논이 있었다는 뚱딴지 같은 얘기다. 무성한 수풀과 칡넝쿨골짝이 다락논 99개가 있었다는 게다. 전주사람이 논 아흔아홉배미를 만들어 경작을 했는데 99란 숫자에 왕정시대의 에피소드가 있다. 

 

 

99칸을 넘는 집은 왕이 거처하는 100칸의 왕궁뿐다. 어떤 부자도 99칸을 넘는 저택을 지을 수는 없다. 당연히 전답을 만들면서도 99배미를 초과할 순 없었기에 여기 골짝에 다락논을 아흔아홉배미로 만들었을 것이다. 근디 그 아흔아홉배미 논은 1980년대 변씨가 매수 한 뒤 까닭모를 폐답이 됐단다.

 

소림사

 

이 골짝에 99개의 논배미라?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있었을까?금 여기에 아흔아홉배미 논을 다시 만들어 생태학습장 내지 다용도다락논으로 관광지화 했음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봤다. 미륵산과 미륵사지를 찾는 관광객이 많고, 지자체에서 등산로정비에 쓰는 세금을 전용하면 될 것 같아서다. 멋진 테마의 아흔아홉배미 다락논이 될 성싶다.

  

 

더구나 맨 윗논 위에 샘물이 있었는데 옻샘이라단다. 옻샘의 물로 옻 오른 사람들이 씻으면 깨끗이 치료됐단다. 아내와 난 긴 통나무의자에 앉아 상상의 날개짓을 한참동안 폈다. 약수터가 있는 아흔아홉배미 다락논의 생태학습이나 힐링처로 사랑받게 된다면 순례길은 한결 더 멋진 트레킹코스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아흔아홉배미 논을 지나면 갈림길에 간재 선생묘소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 조선 후기 성리학의 대가 간재 전우 선생은 1882년 관직에 나갔다 곧 사임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매진했다. 일제때 개화도에 정착해 세상을 떠났으며 후에  이곳 선산에 매장했다.

 

* 내변산 부안댐 & 문학동네 *

 

 

어제밤 H형내외분과 우리부부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단풍나들이 얘기 끝에 찾은 곳이 내변산자락이다. H형네와 우린 30년지기로 각별한 사이다. 내가 팔목골절치료중에 서울효자동 삼계탕집서 저녁식사를 나눈지 근 달포 만인데 우리가 익산집에 오자마자 저녁식사자릴 만든 거였다.  

 

붉게 타는 메타세콰이어 열주들

 

H형은 장기간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어 거동이 불편하다.

그런 탓에 우리부부는 식사자리에서 H형내외에게 만추(晩秋)나들이를 제안했던 것이다.  H형은 지병 후 승용차도 없에버려 시외나들이가 용이칠 않다.

 

추색 짙을 내변산자락은 H형이 오래동안 공직에 근무했던 곳이라 많은 추억이 남아있지 싶어서였다. 우린 부안온천 앞에서 바지락죽으로 점심을 때우고 부안댐을 향했다.

댐 아래 문학동네공원의 단풍은 절정을 향하고 있었다. 언젠가 봄날 H형이 인근에서 지소장을 할 때였다.

 

 

우리내욀 초대해 여기 상춘객이 됐고, 난 그때 벚꽃 흐드러지게 핀 부안댐을 첨으로 접해 감탄사를 쏟았던 것이다. 젊잖고 올곧기만 했던  H형이 정년퇴임 후 장년을 즐기다마다 알츠하이머병을 얻어 투병하기 몇 년짼가? 

성실과 정직으로 살아온 사람에겐 노후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어야 밝고 희망찬 세상이 될 텐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게 운명이다.

 

 

 

불치의 지병은 실의에 빠져들게 해 삶의 의지를 기피하려는 불행에 빠지기도 한다. 현란한 단풍속의 문학동네엔 시비가 몇 군데 서 있고, 벌겋게 불 붙은 메타세콰이아수림은 파란하늘샘을 향하느라 가을 깊어가는 줄 모른다. 

  

 

나는 H형의 안내로 알게 된 부안댐절경을 나의 지인들 데리고 몇 번이나 왔었다. 특히 첩첩산중의 파란호수가 하늘을 담고 섬 하나를 품고 있는 그림은 세상에 나 말고 뉘가 알지 싶을만큼 비밀스런 풍경이다. 작년 이 맘때는 못난 불루베리새끼 닮은 정금열매를 따 먹으며 동심에 취하기 얼마나 달떴던가~! 

 

 

 

비밀스런장소의 보물처럼 아끼며 찾았던 산중의 섬, 하늘을 담은 호수에서 시간을 낚시질 했던 추억들을 씹었다.  H형은 거동이 불편하여 주차장으로 향하고 우린 무르익어가느 만추를 담느라 어슬렁거리며 소슬바람을 따라다녔다. 시간과 자연은 항상 내 편이 아니다. 나를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바지런 떨며 시간을 낚고 자연에 다가서야 한다. 

 

 

홍산사나무의 붉은 열매만 남긴 가을

 

알츠하이머병세는 몸을 망가뜨리는 혹장성도 제 각각이란다. H은 허리를 점점 펼수 없게 한 채 하체에 힘을 앗는다고 했다. H형부부는 오늘 몇 번이나 고맙다고 했던가!

지서리삼거리에서 남여치고개를 넘어 중계터널, 원광선원을 경유 중계교에서 쌍선봉에 걸가을햇살로 멱았다.

 

 

 

 

미선나무군락지에서 가을내변을 작별하고 우린 다시 어제저넉식사자리였던 행운가든에 들어섰다. H형은 청둥오리로스구이를 엄청 좋아한다. 우리가 이 집을 단골로 다닌지도 어언 15년째라고 여사장이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가 반 년만에 나타나 이틀 연속이니 반갑긴 마찬가지인 셈이다.

 

 

 

H형네는 우리가 서울서 살까봐 내심 섭한 눈치다. 지인도 새로 사귀면 되기에 편한 곳에서 살아야한다고 격려하면서도 눈치는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 채라. 나 보다 미련 많은 건 아내다. 두 여인의 살가움을 우린 꿰뚫고 있어서다. 그실 두 여인네 땜에 H형과 우린 나이를 초월한 절친이 된 거였다. 

 

 

 

 

 

아무려면 우리가 지금 익산을 떠난다는 계획은 10%도 안된다. 아내가 서울서 줄곧 머물기에 난 밥 얻어먹으러 따를 뿐이데 H형은 앞지르고 있는 거였다. 몸이 아프면 맘도 약해져 체념의 서글픔을 어쩌질 못하나 싶었다. 내 평생 난 세 분의 형님을 흠모하는데 H형이 그 중에 한 분이다.

 

새만금잼버리대회 예정 터.

 

 

인간관계에서 속살 보이며 흉금 털면서 위무를 받는 절친 한 두분은 누구나 있을 법하다. 지피지기면 지란지교를 꿈 꿔도 될 터이다,

H형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절주(切酒)한 소주컵을 몇 잔 기울였다. 아내와의 대작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는 거였다.

2017. 11

 

 

새만금잼버리대회 부지 망루에서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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